검언유착 의혹 수사팀 정진웅 부장검사(오른쪽)와 수사 대상인 한동훈 검사장이 검찰 조직 사상 초유의 몸싸움을 벌였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두 검사의 몸싸움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 ‘특수통’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이자 역시 특수통인 한동훈 검사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움직이는 ‘형사부’ 출신의 정진웅 부장검사 간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휴대전화를 뺏으려 한 검사장을 몸으로 제압한 정진웅 부장검사가 ‘잘못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 부장검사는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를 주지 않으려고 완강히 거부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랑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심의위에서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던 것이 수사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조심스레 윤석열 총장이 ‘참전’할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대검찰청도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수사에 관여하지 말라고 했지, 수사 도중 발생한 몸싸움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향후 책임론이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진웅 부장검사 병원 입원까지
7월 29일 오전 정진웅 부장검사가 이끄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한 검사장이 있는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사무실을 찾았다. 휴대전화 유심 관련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한 수사팀. 그리고 여기서부터 양측의 주장은 나뉜다.
한동훈 검사장 측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소파 건너편에 있던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이 몸을 날려 올라탔다고 주장한다. 영장에 응하기 전,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도 된다’는 수사팀의 동의를 얻고 전화를 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풀려고 하자 갑자기 정 부장검사가 몸을 날렸다는 것이다. 정 부장이 자신의 팔과 어깨를 움켜쥐고 몸 위에 올라타 팔과 어깨를 움켜쥐고 얼굴을 눌렀다는 설명이다.
정 부장검사는 의사 권고로 큰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았다며 사진도 공개했다. 사진=서울중앙지검 제공
하지만 정 부장검사 측은 “증거인멸 정황을 보여 제지하기 위해 팔을 뻗는 과정에서 함께 바닥으로 넘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도 한 검사장이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해 압수물을 확보하는 과정이었을 뿐 탁자 너머로 몸을 날리거나 밀어뜨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한 검사장 변호인이 현장에 도착한 이후 인근 정형외과를 찾아갔고, 의사 권고로 큰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았다며 사진도 공개했다.
여론전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한 검사장이다. 압수수색 대상물이 휴대전화가 아닌 유심이라며, 변호인에게 전화하기 위해 잠금을 해제한 게 증거인멸 시도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는 순간부터 모든 과정을 찍는 직원이 있었다며 “영상에는 수사팀이 사과하는 장면도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측은 “문제가 된 장면이 녹화되지 않았다”고 해명을 했다.
#독직폭행 vs 무고·명예훼손 고소전
몸싸움은 고소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먼저 고소를 한 것은 한 검사장. 정 부장검사를 독직폭행 혐의로 서울고검에 고소했다. 한 검사장의 요청으로 서울고검이 감찰에도 착수했다. 정 부장검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 검사장이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내에서는 ‘정 부장검사가 불리하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수사팀, 그중에서도 먼저 한 검사장에게 제압을 시도한 정 부장검사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검사장이 주장하는 혐의는 ‘독직폭행’. 독직폭행은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해 피의자 등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을 말하는데, 상해를 입는 치상의 경우는 1년 이상 유기징역, 사망하는 치사의 경우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실제로 수사검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사건과 관련된 물품을 압수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강제력 행사를 법적으로 보장받지는 않는다. 정 부장검사가 ‘제압’을 시도한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몸싸움은 고소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동훈 검사장은 정 부장검사를 독직폭행 혐의로 서울고검에 고소했다. 정 부장검사도 한 검사장이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정훈 기자
실제 압수수색 과정에서 수사팀은 한동훈 검사장의 유심칩에서 별다른 수사 자료를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한 검사장의 변호인인 김종필 변호사가 압수수색 현장에 도착한 오후 1시 30분께 본격적인 압수수색이 집행됐고 오후 4시쯤 휴대전화를 한 검사장 측에 돌려줬다. 만일 유심칩에서 유의미한 자료를 얻어낼 수 있었다면 빠른 반환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압수수색에 부장검사가 간다는 것도 다소 이례적인 데다, 유심 압수수색이라고 하는데 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푸는 것에 과도하게 반응했는지 모르겠다”며 “여기까지 나온 사실 관계들만 봤을 때는 정 부장검사가 과도한 의욕으로 행동하다가 실수를 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수통 vs 형사부
몸싸움에 이어 고소전까지 벌이게 된 한 검사장과 정 부장검사. 인연이 적지 않다. 사법연수원 27기인 한동훈 검사장은 29기인 정 부장검사보다 연수원 2년 선배다. 하지만 정 부장검사가 한 검사장의 서울대 법대 5년 선배다.
검찰 내에서 걸어온 길은 사뭇 다르다. 특히 한 검사장은 일찌감치 수사 능력을 인정받고 사법연수원 27기 가운데 가장 먼저 검사장이 되며 윤석열 총장의 신임을 받는 ‘특수통’의 길을 걸었다면, 정 부장검사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묵묵하게 ‘형사부’ 전문 검사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올해 2월, 정 부장검사는 윤 총장 휘하 특수통을 대거 쳐내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발 인사 때 수원지검 형사1부장에서 요직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로 임명됐다. 당시 법무부는 “우수 형사부장과 아울러서 형사부·공판부에서 묵묵히 기본 업무를 충실히 수행한 검사 등을 적극 발탁했다”고 설명했는데, 이를 대표하는 이가 정 부장검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한 검사장은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에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
추미애 장관은 이번 검찰 인사에서도 “형사, 공판부 검사들을 대거 중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며, 윤석열 총장 주변 특수통들에 대한 대거 숙청을 시사한 상황이다. 한 검사장과 정 부장검사의 몸싸움은 결국 윤석열 총장 대 추미애 장관의 갈등이자, 특수통 검사 대 형사부 검사들 간 불편한 현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앞선 검찰 간부급 인사는 “추미애 장관 취임 후 중용되기 시작한 형사, 공판부 검사들 사이에서 한동훈 검사장 등 특수통들에 대한 시선은 ‘너희만 검찰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는 게 분명히 있다”며 “정권 초 공안부 검사들이 대거 숙청됐다면, 이제 특수통 검사들이 그 대상이 된 것 같다. 이번 몸싸움 사태는 부끄러운 검찰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부장검사의 논란은 윤석열 총장과 추미애 장관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다. 사진=박은숙·최준필 기자
#윤석열 총장 참전 가능성
일단 감찰을 시작한 곳을 서울고검. 한 검사장이 감찰을 요청한 것도 있지만, 통상 서울중앙지검 내 발생하는 검사 비위는 서울고검에 감찰권이 있다. 윤 총장은 검찰 내부 갈등에 대해 현재까지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대검 측에서도 “일단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서울고검의 판단을 기다릴 것”이라는 입장이 전부다. 서울고검 측도 “검찰총장이 본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지 않기로 결정돼 서울고검이 직접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윤 총장이 이 사건을 명분 삼아 개입할 여지도 생기고 있다. 시민단체인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는 사건 발생 당일, 정 부장검사를 특수폭행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는데 사건을 어디에 배정하느냐에 따라 대검찰청 지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추 장관이 ‘총장은 개입하지 말라’고 한 사건은 ‘검언유착’에 해당할 뿐, 이번 정 부장검사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생한 ‘몸싸움’은 별개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의 간부급 인사는 “검찰 내 분위기와 여론 분위기를 고려해 윤 총장이 결정을 내리지 않겠느냐”면서도 “한동훈 검사장을 비호하는 듯한 결정을 할 경우 추 장관이 반발할 부분까지 감안해 쉽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상황은 윤 총장 측에게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