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가 한동훈 검사장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한 검사장 측은 정 부장검사가 독직폭행을 범했다며 고소했고 이를 부인하는 정 부장검사는 무고 및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한다는 입장이다. 한 검사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부장검사가 상관인 검사장을 폭행한 하극상으로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정 부장검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상관이 허위로 하극상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관련기사 ‘한동훈 vs 정진웅’ 육탄전 알고 보면 ‘윤석열 vs 추미애’ 대리전).
2012년 11월 한상대 검찰총장(오른쪽)이 대립하던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자 집단 항명사태가 벌어졌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의 가장 대표적인 내분 및 항명사태는 2012년 11월 한상대 검찰총장이 대립하던 최재경 중앙수사부장(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자 중수부장이 즉각 반발했던 사건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사들은 한상대 총장에게 퇴진을 요구하며 큰 파문이 일었다. 결국 한 총장이 검찰 내부 혼란을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취임 1년 3개월여 만이다.
당시 대립은 한상대 검찰총장이 발표하려던 검찰 개혁안 때문이었고 그 핵심은 중수부 폐지였다. 그렇지만 검찰 개혁안 발표가 예정됐던 2012년 11월 30일 한상대 총장은 이를 취소하고 사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곧 대선이 치러졌고 2013년 4월 박근혜 정부 때 중수부가 전면 폐지됐다.
최재경 당시 중수부장은 이후 전주·대구·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을 거쳐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이 됐지만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최순실 사건의 공범, 피의자로 규정하자 민정수석으로서 책임을 느낀다며 한 달여 만에 사퇴했다.
1999년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도 상당한 화제를 양산했다. 사진=일요신문DB
1999년 심재륜 전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도 상당한 화제를 양산했다. 검찰 사상 초유의 항명사태였기 때문이다. 심 전 고검장은 대전 법조비리 사건의 핵심이었던 이종기 변호사로부터 떡값과 향응을 받았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이종기 변호사와의 대질조사를 위해 대검에 나오라는 검찰총장의 명령에 불응한 심 전 고검장은 성명서 발표를 위해 근무지를 이탈해 상경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에서 심 전 고검장은 “검찰 수뇌부가 자신들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후배 검사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며 “정치권력에 영합하는 검찰 수뇌부도 함께 퇴진하라”며 김태정 검찰총장 등 당시 검찰 수뇌부의 동반 퇴진을 요구했다. 요즘 자주 쓰이는 ‘정치 검찰’이라는 표현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결국 검찰 수뇌부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심 고검장을 파면시켰는데 그 이유는 ‘근무지 이탈’이었다. 그렇지만 이후 심 전 고검장은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냈고 대법원에서 최종 무효 소송을 받았다. 그렇게 복직돼 무보직 고검장으로 검찰로 돌아온 심 전 고검장은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물러난 임휘윤 고검장 후임으로 부산고검 검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렇지만 복직 5개월여 만에 후배들을 위한 선택이라며 자진 퇴임해 검찰을 떠났다.
물론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부장검사의 몸싸움은 아직 논란 단계로 앞서의 사례처럼 검찰조직에서 내분이나 항명사태로 규정하기는 모호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상황은 자칫 검란으로 번질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검언유착 수사를 두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공개적으로 항명했으며 검사장 회의에도 불참했다. 주례 대면보고도 서면으로 대체했다. 게다가 추미애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2005년에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이에 반발해서 김종빈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는 검란이 벌어졌었다. 윤 총장은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사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항명으로 이어졌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 검사장과 부장검사의 몸싸움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연출하고 말았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