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테헤란로 한국타이어 본사사옥. 사진=박정훈 기자
조양래 회장 슬하 2녀2남 중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은 최근 조 회장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다. 성년후견 신청은 나이가 많거나 질병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에 대해 후견인을 정하는 제도다. 조 회장의 의사결정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고 신격호 롯데 창업회장도 성년후견 심판을 받았었다.
현재 한국테크놀로지 지분율은 조현범 사장이 42.91%에 달한다. 7.1%만 더 확보하면 과반이다. 반면 조희경 이사장(10.82%), 조현식 부회장(19.32%)의 지분율은 합해도 30.14%에 그쳐 격차가 상당하다. 국민연금 지분 6.24%를 더한다고 해도 역부족이다.
조현범 사장은 2447억 원 규모의 이번 지분 거래를 위해 NH투자증권과 KB증권에서 각각 1700억 원, 500억 원을 주식담보로 차입했다. 자기 자금도 247억 원이 투입됐다. 지분 거래 시점도 1만 4000원대였던 주가가 코로나19 충격으로 급락한 후 1만 1000원 선으로 일부 반등한 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3월 24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가가 7400원까지 하락했다. 매입자금 부담을 덜기 위해 신속히 준비한 결과 6월께 실행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조현범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둘째 사위다. 정·재계 인맥이 상당하다. 회사 내 비중도 남매 중 단연 두드러진다. 계열사 상당수에서 형인 조현식 부회장보다 많은 지분을 가질 정도다. 표 대결이 벌어질 경우 우호지분 확보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조현범 사장이 하청업체로부터 수억 원대의 뒷돈을 받고,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상태라는 점은 걸림돌이다. 지난 4월 1심에서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는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가능성은 낮지만 2심에서 4년형이 내려진다면 집행유예가 불가능해져 법정 구속이 불가피하다.
물론 조현식 부회장도 둘째 누나인 조희원 씨를 미국 법인에 위장 취업시켜 임금을 지급한 혐의가 인정돼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은 선고받았다. 하지만 형량이 낮아 이후 상급심에서 법정구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편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이사회 구성은 조현식 부회장이 대표이사, 조현범 사장은 사내이사다. 임기는 2022년까지다. 조 사장이 구속될 경우 조 부회장이 이사회를 이끌게 된다. 이 경우 이사회를 통해 그룹 지배구조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 조 사장의 현재 지분율이 높지만 조 부회장을 강제로 끌어내릴 주총 특별결의 요건(발행주식 3분의 2)에는 한참 부족하다.
재판 변수를 제외한다면 남매간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조현범 사장으로서도 30%가량의 지분을 가진 누나와 형과 계속 대립할 경우, 경영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도 효성그룹에서 분할된 회사다. 조양래 회장의 형이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다.
다만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우 타이어 부분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사업부문이 없어 부분적인 공동경영 또는 현금보상 형태도 가능할 수 있다. 1분기말 기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자기자본이 2조 2435억 원에 달하지만 부채는 1144억 원에 불과하다. 9048억 원의 이익잉여금을 보유하고 있어 자사주 매입 여력도 충분하다.
한편 조양래 회장은 조현범 사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다시 한 번 밝혔다. 조 회장은 7월 31일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첫째 딸이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많이 당황스럽다”면서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 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왔었고, 그 동안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고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며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하여, 이미 전부터 최대주주로 점 찍어 뒀다”라고 밝혔다. 이어 “나이에 비해 건강하게 살고 있다”며 건강 이상설을 일축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