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의원과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7월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여의도 밖의 대권 잠룡까지 합세한 별들의 향연장….”
여권 한 관계자가 민주당 전대 판세를 두고 언급한 말이다. 묘하다. 장외 주자까지 민주당 전대 판에 소환당하면서 차기 대권 잠룡들은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 관계를 형성했다. 이낙연 후보와 정 총리는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직과 서울 종로 지역구를 배턴 터치한 사이다. 이들은 한때 전남·북을 대표하는 여권의 주자였다. 종로에 터 잡기 전 이 후보는 전남의 구심점이었다. 정 총리는 전북의 맹주 중 맹주였다.
이 후보 측이 지난 6월 초 여의도에 파다하게 퍼졌던 ‘정·김 연대설’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이유도 잠재적 경쟁 관계인 이들의 포지션과 무관치 않다. 정 총리와 김 후보는 전략적 제휴설 제기 직후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여권 내부의 권력암투가 조기에 과열될 것을 우려한 일종의 ‘몸 사리기’로 치부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집권 4년 차 들어 대권 잠룡들이 ‘자기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일종의 레임덕(권력누수)의 전조 현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반낙 연대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지사 대법원 판결 직후에는 ‘이(이재명)·김(김부겸) 연대설’까지 덮쳤다. 이낙연 대세론을 추격하는 ‘진격의 이재명’이 민주당 전대 판까지 파고든 것이다. 김 후보도 대법원 파기환송 직후 “국민이 힘들고 답답할 때 사이다 같은 것이 매력”이라며 이 지사를 치켜세웠다.
김 후보 측 관계자는 “이 지사 지지자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김 후보는 전대 레이스 초반인 7월 27일 이 지사를 찾아 비공개 면담을 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공통점’ 찾기에 주력했다. 이 지사가 “둘 다 경북 출신인데, 경기도에서 정치를 시작한 것도 공통점”이라고 하자, 김 후보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화답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 때 경기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김 후보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경기 군포를 발판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대구·경북(TK) 출신의 비주류인 이들은 친노(친노무현) 껴안기에도 나섰다. 이 지사는 김 후보의 지역주의 타파 행보를 언급하며 “노무현의 길”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갈피를 못 잡는 친문(친문재인)계를 갈라 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김 후보가 이 지사를 만난 날 TK의 민주당 소속 지방의원 36명은 성명을 내고 “김부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7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6차 본회의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다만 이 지사는 반낙 연대설이 온종일 정치권을 흔들자, 7월 28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아무리 생각해도 도움이 될 이유가 없다”며 ‘이·김 연대설’을 일축했다. 앞서 대법원 파기환송 직후 이낙연 대세론을 위협하자, “그분이 엘리트라면, 저는 흙수저”라고 각을 세운 것과는 다른 기류다. ‘엘리트 vs 흙수저’ 구도에 “이 지사와 싸움을 붙이지 말라”던 이 후보도 반낙연대가 민주당 전대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자, 7월 30일 경기도청을 찾아 이 지사와 비공개 회동을 했다. 이 지사와 김 후보가 회동한 지 사흘 만이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반낙 연대설의 현실 가능성과 파괴력이다. 링 밖 대권 잠룡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단 민주당 전대는 ‘어대낙 vs 반낙연대’ 프레임으로 양분됐다. 정 총리와 이 지사가 공개적으로 ‘김부겸 지지’를 선언할 가능성은 낮지만, 측근들이 김 후보자를 물밑 지원하는 시나리오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경우 민주당 당권 구도는 앞서가는 이낙연 대세론과 정세균·이재명 등 후발 주자군이 미리 맞붙는 차기 대선의 예비고사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대목은 반낙연대의 트리거 역할이다. 당 안팎에선 ‘김부겸·이원욱’ 간 러닝메이트 형성을 반낙연대의 분수령으로 꼽았다. SK(정세균)계인 이원욱 의원은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했다. 현재 이들의 강한 연대 전선은 감지되고 있지 않지만, 전대 판세에 따라 손을 맞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 중 이재명계는 없다. 이 지사가 김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한 이재명·김부겸 연대설이 최전선에서 전대 판을 흔들 가능성은 극히 낮다. 가장 현실적인 반낙연대 시나리오는 전방에선 정 총리 측이 밀고 후방에선 이 지사 측이 지원하는 그림이다.
차기 대선 링에 직접 오를 가능성이 높은 이 지사가 후방 지원에 그치는 계파 포지션과는 달리, 최전선에서 언제든지 여론전을 주도할 수도 있다. 반낙연대의 파괴력도 이 지점이다. 특히 친문 분화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친문계 일부가 ‘정세균·김부겸’ 전략적 제휴설이나, ‘이재명·김부겸’ 연대설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경우 반낙연대의 파괴력은 민주당 전대를 넘어 민주당 차기 대선 구도까지 파고든다. 더구나 이번 민주당 전대 후보 중 진문(진짜 친문)은 없다. 한 의원은 민주당 전대 판세를 놓고 “갈 길 잃은 당심”이라고 표현했다.
변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여권 내부에는 열세인 김 후보 선전을 내심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부겸 견제론의 파괴력 극대화는 전대 흥행을 넘어 차기 승리 방정식과 맞물려있다. 이번 전대가 전례 없는 언택트(비대면)로 치러진다는 점을 감안해도, 당 내부에선 “흥행이 너무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제주와 강원 합동연설회 생중계 시청자는 1000명 선에 불과했다. 그러자 친노의 좌장인 이해찬 대표는 전대 흥행을 위해 8월 8일 광주전남 합동연설대회부터 직접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한 보좌관은 “전대 흥행에 실패한다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부겸 후보. 사진=이종현 기자
이 후보는 당시 부산에서 29.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경남에서는 31.3%나 올렸다. 울산 득표율은 26.7%였다. 이회창 후보의 PK 득표율은 50%대에 그쳤다.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들은 “영남권에서만큼은 김 후보가 이낙연 대세론을 위협하는 게 차기 대선에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친문계 일부가 ‘박주민 다크호스’에 힘을 보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대 흥행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가장 후발 주자인 박주민 후보가 이낙연 대세론과 김부겸 견제론을 흔들면, 결과적으로 당의 주목도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전대 결과의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반낙연대가 찻잔 속 태풍에 그치는 경우다. 예상대로 이 후보가 민주당 차기 당권을 거머쥔다면, 이낙연 대세론 위세는 한층 공고해질 전망이다. 다만 이변 없는 당권 결과로 컨벤션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체제가 40%대를 위협하는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를 반등할 유인책으로 작용할지도 미지수다.
반낙연대를 업은 김 후보가 이낙연 대세론을 꺾는다면,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진다. 여권 내부 권력 구도는 즉각 새판 짜기에 돌입된다. 최대 승자는 법원의 족쇄가 풀린 이후 20% 지지도를 돌파한 이 지사가 될 전망이다. 경우에 따라 이재명 대안론이 이낙연 대세론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여의도 한 분석가는 “이 지사의 높은 선호도에는 반문(반문재인) 중도층 일부가 옮겨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부겸 견제론의 파괴력에 따라 당 외연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박주민 후보가 20%대 득표율로 선전하는 경우에는 수면 아래에 있던 친문 팬덤이 ‘포스트 문재인’ 찾기에 가속페달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여권 권력구도의 시작과 끝은 ‘어대낙이냐, 반낙이냐’다. 이 구도에서 여권의 미래권력은 판가름 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