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SPC그룹 계열사들이 SPC삼립을 장기간 부당지원한 행위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647억 원을 부과하고 총수, 경영진 및 법인을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지난 1월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후 나온 허영인 SPC그룹 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지난 7월 29일 공정위는 SPC그룹 계열사가 SPC삼립을 7년간 부당지원한 행위와 관련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647억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부당거래 관련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는 또 허영인 회장, 조상호 전 총괄사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와 파리크라상·SPL·BR코리아 등 3개 계열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1년 4월 샤니는 SPC삼립에 판매 및 연구·개발(R&D) 부문의 무형자산(판매망)을 정상가격인 40억 6000만 원보다 낮은 28억 5000만 원에 양도했다. 상표권도 8년간 무상 제공하는 등 총 13억 원을 지원했다. 당시 양산빵 시장 점유율 및 인지도 1위는 샤니였지만, SPC삼립을 중심으로 판매망 통합을 진행했다. 이후 SPC삼립은 양산빵 시장에서 73%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1위 사업자가 됐다. SPC삼립-샤니의 수평적 통합과 함께 ‘생산계열사→SPC삼립→제빵계열사’의 수직적 계열화를 내세워 통행세 구조도 확립됐다.
2012년 12월에는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밀다원의 주식을 SPC삼립에 저가로 양도하는 방식으로 총 20억 원을 지원했다.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을 정상가격인 주당 404원보다 낮은 주당 255원에 양도함으로써 SPC삼립에 총 20억 원을 지원했다.
또 파리크라상, SPL, BR코리아 등 제빵계열사 3곳은 밀가루, 달걀, 생크림, 우유 등을 생산하는 8개 생산계열사에서 210개 품목의 원재료·완제품을 SPC삼립을 통해 공급받고 총 381억 원을 지급했다. SPC삼립은 생산계획 수립, 재고관리, 가격 결정, 영업, 주문, 물류 검수 등 중간 유통업체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꼬박꼬박 통행세를 챙겼다. 제빵계열사들은 SPC그룹의 지시에 따라 SPC삼립으로부터 생산계열사의 원재료와 완제품을 구매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이번 부정거래 배경으로 지배력 유지와 경영 승계라고 판단했지만, 이번 제재와 관련해서는 큰 연관성이 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이번 부당거래 배경으로 오너 일가의 그룹 지배력 유지와 경영 승계가 꼽힌다. SPC그룹은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총수 일가가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총수 일가 지분 100%로 구성된 지주회사격인 파리크라상이 SPC그룹의 지배구조 최정점이다. 허영인 회장이 지분의 63.4%, 아들인 허진수 부사장과 허희수 전 부사장이 각각 20.2%와 12.7%, 배우자인 이미향 씨가 3.6%를 보유했다. 파리크라상의 지분을 승계받으면 자연스럽게 SPC그룹을 지배할 수 있다.
파리크라상 지분 확대를 위해 활용된 것이 앞서 통행세의 관문 역할을 한 SPC삼립이다. 부당거래 등을 기반으로 SPC삼립의 주가를 끌어올려 해당 주식을 파리크라상의 주식으로 바꾸려 했다는 것이다. SPC삼립의 주가가 높으면 파리크라상 지분과 교환하고, 주가가 낮으면 낮은 대로 증여하는 방법을 고려했다. 실제 SPC삼립 주가는 최근 몇 년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2011년 초반 1만 원대였던 SPC삼립 주식은 2015년 8월 41만 1500원을 찍는 등 40배 넘게 상승했다. 또 올해 허영인 회장은 전날 허진수 부사장에게 SPC삼립 보통주 40만 주를 증여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총수와 경영진들이 SPC그룹 차원의 부당거래를 주도하며 법 위반 행위를 은폐하고 조작한 사례를 바탕으로 고발했다. 허영인 회장이 주간경영회의에서 △통행세 발각을 피하고자 SPC삼립의 표면적 역할 만들 것 △계열사와 비계열사의 밀가루 단가 비교하기 어렵게 내·외부 판매제품을 의도적으로 차별을 둘 것 △법인세법상 부당행위 적발을 막기 위해 SPC삼립의 계열사 판매단가를 여타 제분 업체의 판매단가보다 3~5% 높게 설정할 것 등을 결정하고 실행했다고 공정위는 지적했다.
이에 대해 SPC 관계자는 “판매망과 지분 양도는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적법 여부에 대한 자문을 거쳐 객관적으로 이뤄졌고 계열사 간 거래 역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직계열화 전략”이라며 “SPC삼립은 총수 일가 지분이 적고 상장회사이므로 승계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총수가 의사결정에 전혀 관여한 바 없다는 것을 충분히 소명했는데도 과도한 처분이 이뤄져 안타깝다. 향후 의결서를 면밀히 검토해 대응 방침을 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