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은 MLB 개막 첫 2경기에서 모두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시즌 MLB 평균자책점 1위(2.32)에 사이영상 투표 2위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거둔 류현진은 프리에이전트(FA) 자격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 달러의 계약을 이끌어 냈다. 그동안 믿고 쓸 만한 선발 투수 부재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토론토 구단은 팀에 승리를 안겨줄 선발투수의 합류에 뜨거운 환영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초반 류현진의 행보는 토론토 구단과 팬들에게 약간의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는 상태.
물론 이제 겨우 2경기일 뿐이고 시즌 초반이라고 위안 삼을 수 있지만 2020시즌은 코로나19로 3개월가량 시즌이 뒤늦게 시작한 터라 MLB는 팀당 60경기만 진행되는 초미니 시즌으로 치른다. 류현진이 별다른 문제없이 선발 로테이션을 지킬 경우 앞으로 정규시즌 등판은 10번 정도 남아 있는 것. 여느 해와 달리 올 시즌은 짧은 시즌을 치르기 때문에 구위를 가다듬고 구속 증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구속 저하보다 더 중요한 건…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류현진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약 88마일(약 142km) 정도에 머물렀다. 145km의 구위를 선보인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보다 더 떨어진 구속이었다. 빠른 공의 위력이 사라지자 주무기인 변화구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90마일 언저리의 패스트볼을 지켜본 상대 타자들은 78, 79마일의 체인지업을 쉽게 공략했다. 워싱턴전에서 4회 카터 키붐의 안타와 마이클A. 테일러의 2점 홈런은 모두 체인지업 상황에서 나왔다.
MBC스포츠플러스의 송재우 해설위원은 워싱턴 내셔널스전의 류현진 투구를 이렇게 설명했다.
“워싱턴 타자들이 류현진이 던지는 바깥쪽 낮은 코너의 체인지업이나 가운데 낮게 떨어진 체인지업을 모두 공략해서 안타나 홈런을 만들었다. 슬라이더, 커터, 커브가 먹히지 않을 때 류현진으로서는 체인지업을 던질 수밖에 없는데 이 공이 다 난타당한 것이다. 더욱이 류현진은 LA 다저스 시절 워싱턴 내셔널스를 상대로 통산 5경기에 등판해 2승 1패 평균자책점 1.35라는 뛰어난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즉 자신감을 갖고 상대할 수 있는 팀이었는데 불구하고 이상하게 상대 타선에 말리는 모습을 보였다.”
송재우 위원은 류현진이 이전보다 구속이 떨어지고 제구에 어려움을 겪은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했다. 그러나 다소 우려되는 건 투구 패턴이라고.
“지난 탬파베이전도 그렇고 이번 워싱턴전도 류현진이 주로 바깥쪽 공략을 많이 했다. 몸쪽 공이 잘 들어가지 않으면서 타자는 투수의 투구 패턴을 바로 인식하고 변화구가 들어오면 커트해내는 식으로 류현진을 괴롭혔다. 투구 패턴을 읽힌 게 체인지업이 난타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던 건 평소 바깥쪽과 안쪽, 위, 아래 등 보더라인을 잘 활용하는 류현진이 워싱턴전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야구 지능이 뛰어난 류현진다운 투구 패턴이 아니었다. 몸쪽 공략을 하지 못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지 궁금했을 정도다.”
류현진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경기 중 구속 저하를 느꼈지만 체력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변화구를 많이 던진 건 상대팀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경기 플랜이라고 생각해서 갖고 나온 건데 잘 맞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워싱턴전에서 주로 바깥쪽 승부를 펼친 것에 대해서도 데이터에 나온 대로 준비한 것이고 자신도 한쪽(바깥쪽)으로 많이 치우쳤다는 걸 느꼈다면서 다음 경기부터는 골고루 던지겠다고 설명했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투구에 대해 “구속이나 제구보다 투구 패턴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사진=이영미 기자
#다저스 허니컷 코치의 존재감
류현진은 다저스 시절 어깨 수술을 받은 후 마운드에 복귀했을 때 가장 큰 변화로 전력분석팀의 자료와 투수 코치인 릭 허니컷 코치의 조언에 힘입어 등판 전날 허니컷 코치 앞에서 타자들을 어떻게 상대해나갈지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수술 전까지만 해도 전력분석팀이 제공한 자료는 참고만 했는데 수술 후 허니컷 코치님의 권유에 자료와 경기 영상을 통해 상대 타자들을 직접 연구하고 발표 자료를 만들며 공부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동안 전력분석팀이 만들어준 자료들을 머릿속에 담은 것과 자신이 직접 영상을 확인하고 데이터를 통해 상대 타자의 자료를 만들어서 경기에 풀어낸 것과의 차이가 등판 결과로 이어지는 걸 확인한 후 당시 류현진은 허니컷 코치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류현진은 등판 당일에는 투수 코치, 포수와 함께 만든 게임 플랜을 암기하다시피 해서 마운드에 올랐다. 경기 중에도 이닝을 마치고 내려오면 항상 수첩을 꺼내 다음 이닝에 나올 타자들을 체크했다. 그렇다면 허니컷 코치가 없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는 어떨까.
토론토의 투수 파트를 담당하는 이는 베테랑 피트 워커 코치다. 강속구가 아닌 제구와 다양한 구종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류현진으로서는 투수 코치, 포수, 전력 분석팀과의 호흡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피트 워커 코치는 평소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류현진에게 뜨거운 신뢰를 보내며 투수가 원하는 방향대로 경기를 풀어가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허니컷 코치와 경기 플랜을 세웠듯이 류현진이 워커 코치와 세밀한 분석을 통해 상대할 타자들을 연구하고 대응할 방법을 만들어서 마운드에 올라가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포수 대니 잰슨도 류현진과 많은 대화를 통해 투수의 특징을 살려 리드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가 무엇일까.
#체력 저하는 절대 아니다!
류현진의 2경기 부진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준비 부족과 체력 저하를 꼽았다. 그러나 류현진 옆에서 동고동락하고 있는 김병곤 트레이닝 코치는 “준비도 열심히 했고, 체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민훈기 SPOTV 해설위원은 코로나19로 인해 류현진의 루틴이 흔들린 부분에서 원인을 찾았다.
“뒤늦게 메이저리그 개막이 됐지만 LA 다저스 클레이튼 커쇼를 비롯해 루틴을 중요시하는 선발 투수들한테 잇달아 문제가 발생했다. 류현진도 커쇼 못지않게 루틴을 챙기는 선수인데 시즌 개막이 밀리면서 시범경기를 통해 차근차근 몸을 만들었던 흐름이 깨진 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토론토에서 자체 청백전을 통해 실전 피칭을 했지만 청백전과 시범경기와는 큰 차이가 있고, 시범경기에 계속 등판하면서 이닝 수와 투구 수를 늘리는 과정이 생략된 채 개막전에 나선 부분은 류현진에게 긍정적인 요인이 아니었을 것이다. 류현진이 보통 시범경기에서 91마일, 92마일의 구속까지 끌어 올린 다음 시즌 개막을 맞이했던 것과 달리 올 시즌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고 시즌을 맞이했던 게 현재 문제점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민훈기 해설위원은 류현진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건 구속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속을 끌어올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FA 이후 첫 시즌이라 선수 입장에서는 마음이 조급할 수도 있는데 지금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류현진이 하던 대로 자신의 루틴을 이어가면서 조금씩 구속을 되찾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본다. 조급해지면 부상 위험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토론토 블루제이스 구단은 현재 개막 이후 계속 원정 경기 중인 상태다. 토론토에서 시범경기를 치르려 보스턴으로 향했고, 원정 개막전을 위해 플로리다 탬파베이로 이동했다가 워싱턴까지 찍었다. 이후 필라델피아로 향해야 했지만 필라델피아가 선수단 전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대기 중인 상태라 토론토 구단도 워싱턴에서 대기하다 필라델피아 또는 애틀랜타로 이동한다.
이렇듯 류현진을 비롯해 토론토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정신없는 스케줄과 엄청난 이동거리를 감당해야 한다. 집에서 출퇴근하며 홈구장을 사용하는 것과 상대팀 홈구장을 빌려 사용하는 것과는 천양지차. 토론토가 임시 홈구장으로 이용할 예정인 트리플A팀의 뉴욕 버팔로 바이슨스의 살렌 필드는 여전히 홈구장 개보수 중이다.
류현진으로선 올 시즌 여러 가지 면에서 숙제를 떠안았다. 그동안 숱한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성적으로 나타낸 선수다. 다음 등판 예정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는 우리가 알던 류현진의 투구를 볼 수 있을까.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