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핑클 시절부터 2020년 싹쓰리까지 이효리의 변천사. 사진=MBC, 임준선 기자, 연합뉴스, ‘놀면 뭐하니’ 인스타그램
#1990·2000·2010·2020년대 1위 등극 유일 가수
유행은 변한다. 그것도 아주 쉽게 변한다. 대중은 싫증을 잘 낸다. 그래서 스타의 인기는 성냥불과 같다. 하지만 이효리만은 예외였다. 그는 세기말이라 불린 1998년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딘 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음악 방송 1위곡을 배출했다. 대한민국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어떤 가수도 일구지 못한 성과다.
핑클 시절에는 ‘내 남자친구에게’ ‘영원한 사랑’ ‘화이트’ ‘나우’ ‘루비’ 등 발표곡마다 정상을 밟았다. 이효리는 메인 보컬도, 메인 댄서도 아니었지만 핑클의 맏언니이자 진정한 ‘메인’이었다.
2003년 솔로로 전향 후 그의 영향력은 배가됐다. 10분 안에 모든 남자를 유혹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텐 미닛(10 minutes)’은 이효리 아니면 도전하기조차 힘든 노래였다. 당연히 1위 트로피는 그의 품에 안착했다. 이후 ‘유고걸(U-Go-Girl)’과 ‘헤이 미스터 빅(Hey Mr.BiG)’ 등도 정상에 올랐다.
그의 커리어 상 가장 주춤했다는 평가를 받는 2010년대에도 이효리는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치티치티 뱅뱅(Chitty Chitty Bang Bang)’으로 경쟁자들을 물리쳤고, 2013년 발매한 앨범에 수록된 ‘배드걸(Bad Girls)’과 ‘미스코리아’가 1위를 놓고 집안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결혼과 함께 잠시 제주도로 떠났던 그는 JTBC ‘효리네 민박’을 거치며 워밍업을 마친 후 싹쓰리를 만나 다시 색조화장을 시작했다. 제주도의 소박한 ‘소길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여기저기서 ‘역시 이효리’라는 찬사가 터져 나왔고, 싹쓰리는 2020년 여름 가요계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7월 30일 케이블채널 Mnet ‘엠 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수상한 이효리가 “여보, 나 1위 했어. 너무 보고 싶어”라며 ‘다시 여기 바닷가’를 만든 남편이자 작곡가 이상순에게 소감을 전한 모습 역시 ‘이효리답다’는 평이었다.
이를 두고 불공정 거래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효리를 주축으로 유재석, 비 등이 뭉치자 후배들의 설 자리가 줄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들이 등장하기 전, K-팝 아이돌에 밀려 기성 가수들의 설 자리 역시 없었다. 게다가 싹쓰리가 이 같은 성공을 거둘 것이란 보장 또한 없었다. 결국 이효리는 베팅을 한 것이고, 위너가 됐을 뿐이다. 역시 이효리는 승부사다.
7월 30일 Mnet ‘엠 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수상한 이효리가 “여보, 나 1위했어”라며 ‘다시 여기 바닷가’ 작곡가이자 남편 이상순에게 소감을 전했다. 사진=‘놀면 뭐하니’ 인스타그램
#왜 여전히 이효리인가
이효리는 2017년 가수 활동을 잠시 재개하며 유재석이 MC를 맡고 있는 KBS 2TV ‘해피투게더’에 출연했다. 당시 함께 출연한 방송인 김수용은 이효리에게 “공백 기간 동안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하냐”고 물었고, 이효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금 제 생활비 걱정하시는 거냐”며 “저 이효리예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효리다움이다.
그가 가진 인기 요인을 분석하며 ‘외모’를 빼놓을 수 없다. 태닝한 듯한 건강미 넘치는 그의 모습은 ‘청순가련’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단박에 부숴버렸다. 볼륨 있는 몸매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고, 여성들에게는 워너비 스타로 군림했다. 이런 그가 오랜 기간 ‘CF퀸’ 자리를 유지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5년간 9번의 재계약을 맺은 이효리표 소주 광고는 지금도 ‘레전드’라 불린다.
거침없는 ‘입담’도 그의 매력이다. 당대 최고의 MC인 유재석조차 “(이)효리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할 정도로 이효리는 직설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남을 공격하는 식도 아니다. 어느덧 40대에 접어든 그는 몸매 이야기가 나오면 “다 사라졌다”(?)고 털털하게 스스로를 저격하며 웃음을 이끌어낸다. 이효리가 유재석과 함께 ‘2009 SBS 연예대상’을 수상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그가 출연하면 시청률이 껑충 뛰고, 관련 기사가 쏟아진다.
이효리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남다른 ‘행보’다. 그는 항상 남이 걷지 않는 길을 걸었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제주도에서 이상순과 조용히 결혼식을 치르며 ‘스몰 웨딩’ 붐을 일으켰다. ‘효리네 민박’을 통해 보여준 그의 삶의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았던 이효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삶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이 무렵 그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CF 출연도 일절 중단했다. 쉽게 납득되지 않지만, 그의 소신 있는 행보에 대중은 박수를 보내며 지지했다.
여전히 이효리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대중이 그를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포스트 이효리’라 할 만한 이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