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현 전 엑사이엔씨 대표. |
최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유상범 부장검사)는 “지난 4일 코스닥 상장사 엑사이엔씨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혐의는 횡령과 주가조작. 검찰은 LG가 방계 3세인 구본현 씨가 지난 2007년 탄소나노튜브업체인 N 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를 통해 100억여 원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구본현 씨는 지난해 회사 돈 80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이미 엑사이엔씨 임직원으로부터 구본현 씨 혐의 관련 진술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는 상태다.
구본현 씨는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막내동생인 구자극 전 LG상사 미주법인 회장(현 엑사이엔씨 회장)의 아들이다. 미국 시라큐스대학을 졸업한 구본현 씨는 지난 1998년 사무자동화 가구 업체인 예림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4년 7월 구본현 씨의 예림인터내셔널과 구 씨 부친 구자극 회장 등이 엑사이엔씨의 전신인 이림테크의 경영권을 인수했고 이후 이림테크와 예림인터내셔널이 합병, 구본현 씨가 합병법인의 최대주주가 됐다. 2004년 10월 이 회사는 엑사이엔씨로 사명을 바꿨다.
엑사이엔씨는 전자부품 제조·판매 및 환경사업을 주로 하는 업체로 구본현 씨는 이 회사 지분 18.2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아버지 구자극 회장은 지분 6.59%를 갖고 있다. 구본현 씨는 2004년 7월 구자극 회장과 함께 이 회사 공동 대표이사에 올라 경영 전면에 나섰다.
엑사이엔씨는 LG가 인사들이 인수해 경영을 맡았다는 점 외에도 여러 면에서 코스닥 시장의 관심을 끌어온 종목이다. 이 회사는 2005년 당기순이익 45억 원을 올렸지만 이듬해인 2006년 116억 원 적자를 냈다. 2007년엔 구자극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고 구본현 단독 대표 체제를 출범시키며 변화를 꾀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이후로도 2007년 122억 원, 2008년 204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해에서야 당기순이익 18억 원을 올리며 흑자법인으로 돌아선 엑사이엔씨는 올해 들어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겪는다. 구본현 씨가 지난 2월 11일 대표이사직에서 돌연 사임한 것이다. 당시 회사는 공시를 통해 ‘구자극 회장의 단독 대표이사 체제 구축 및 구본현 대표이사 일신상 사유의 사임으로 인한 대표이사 변경’을 알렸다. 부자가 공동 대표로 있다가 아들이 단독 대표가 된 지 3년 만에 다시 아들이 물러나고 아버지가 대표 자리를 꿰차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각에선 구자극-구본현 부자가 갈등을 겪는다는 풍문이 퍼지기도 했다.
구자극 회장을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경영권 문제를 둘러싼 소문 때문인지 엑사이엔씨 주가는 코스닥 시장에서 조금씩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구자극 회장은 지난 3월 31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LG전자 출신 인사들을 신규 등기임원으로 등용하면서 분위기 쇄신을 꾀했지만 큰 약발은 없었다. 올 초까지만 해도 5000~6000원대였던 엑사이엔씨 주가는 2월에 들어서면서 4000원대로 떨어지더니 4월 초부터는 3000원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엑사이엔씨는 지난 13일 모처럼 종가 4010원을 기록했지만 이날 오후 검찰의 압수수색 사실이 알려진 까닭에 이튿날인 14일 하한가(3410원)를 기록했다. 이날 엑사이엔씨는 공시를 통해 “전 대표이사 구본현 씨의 횡령 혐의와 관련해 당사 압수수색 등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며 회사 내부적으로 횡령 혐의 관련사항을 자체 파악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검찰 수사 등으로 엑사이엔씨가 뒤숭숭한 가운데 구자극 회장이 아들 구본현 씨를 상대로 법원에 재산 가압류를 신청한 사실을 <일요신문>이 단독 확인했다. 4월 28일 구자극 회장은 아들인 구본현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법원에 부동산 가압류 신청을 했다. 법원은 소장이 접수된 지 5일 만인 지난 3일 담보제공을 명령했고 지난 7일자로 구본현 씨 자택에 대한 가압류 결정을 내렸다. 등기부상엔 채권자가 구자극 회장으로, 청구금액은 10억 원으로 각각 기재돼 있다.
구본현 씨 자택은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내 위치한 고급 빌라로 연면적 230㎡(약 70평)의 2층집. 등기부엔 구 씨가 이 집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거액의 돈을 끌어다 쓴 기록이 남아 있다. 2005년 12월 21일 이 집을 매입한 구본현 씨는 8일 만인 그해 12월 29일 채권최고액을 15억 6000만 원으로 하는 근저당권 설정 계약을 맺는다. 지난해 2월 17일엔 이 집을 담보로 채권최고액 4억 8000만 원의 근저당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다. 이 두 계약의 근저당권자는 모두 하나은행. 올 2월 12일엔 근저당권자를 이 아무개 씨로 한 새로운 담보 계약이 올라 있다. 채권최고액은 7억 5000만 원. 구 씨 집에 걸려 있는 총 채권최고액은 27억 9000만 원이었다.
반면 현재 경영을 맡고 있는 구자극 회장 자택 등기부엔 담보 대출 기록이 전혀 없다. 구본현 씨가 집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했던 것은 그가 경영자 자리에 있던 때의 일로 사업 활동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구본현 씨가 구자극 회장에게 채무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구자극 회장이 구본현 씨의 채무 관계에 일절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너 방계인사 주가조작 혐의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된 LG그룹 역시 곤혹스러운 눈치다. 엑사이엔씨는 지난해 8월, 구본현 씨가 대표이사로 있을 때 LG하우시스와 개발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대해 LG그룹 측은 “(엑사이엔씨가) LG 계열사와의 거래 관계가 있더라도 그룹과 직접적 관련은 없는 곳”이라며 “구본현 씨가 LG에서 근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잘 알지도 못 한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LG ‘방계’ 기업이 기업설명회를 하면서 “대주주가 LG 오너 일가”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LG 관련 회사로 홍보되면서 논란이 일자 LG그룹 측이 해당 회사에 엄중 경고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방계가 많은 LG가의 한 단면이다. LG가 방계 3세 구본호 씨가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된 지 2년 만에 이 같은 일이 또 벌어지자 재계에서 “수많은 LG 방계 인사들이 LG 브랜드를 팔고 다니면서 잡음을 일으키는 까닭에 LG 수뇌부가 좌불안석일 것”이라 입을 모으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