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이 발표되자 “누굴 위한 개혁이냐”는 비판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검찰총장 ‘타깃’ 삼아 나온 개혁안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검찰총장 권한을 분산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내놓은 것은 7월 27일이다. 이날 오후 개혁위는 법무부 정부과천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제21차 권고안을 심의, 의결했다.
개혁위가 내놓은 권고사항은 △검찰총장 구체적 수사지휘권 폐지 및 분산 △수사의 정치적 중립 보장 △법무부 장관 검사 인사 시 검찰총장 의견 청취 절차 개선 △검찰총장의 임명 다양화 등 크게 네 가지. 하지만 방향은 하나, 사실상 ‘검찰총장’을 개혁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법조계가 가장 주목한 점은 검찰총장의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없애야 한다는 권고 사안이다. 개혁위는 검찰청법 8조 등을 개정해 검찰총장의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이를 각 고검장에게 분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검장 수사지휘는 서면으로 수사검사 의견 역시 서면으로 듣도록 권고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는 검찰총장이 아닌 고검장에게 하도록 법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사실상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빼앗아 이를 각 고검장에게 분산하는 형태를 제안했다.
개혁위는 이번 개혁을 통해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수사지휘권을 분산시켜 검찰 내부 권력 상호 간 실질적인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곧바로 시작된 내부 반발
하지만 검찰총장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개혁 권고안에 검찰은 심하게 반발했다. 7월 29일 김남수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가장 먼저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렸다. 그는 법무부 개혁위 권고에 대해 ‘정치적 중립성 훼손’을 우려하며 “(개혁위) 권고안 내용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하루 만에 200명이 넘는 검사가 실명으로 “동의하고 깊이 공감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김남수 검사에 이어 박철완 부산고검 검사도 같은 취지의 글을 올리며 반발했고, 임관 4년 차인 홍영기 대구지검 경주지청 검사 역시 “검찰의 민주적 정당성, 민주적 통제 강화에 대한 답이 아니다”라며 권고안 비판에 합류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사는 “고검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넘기자고 하면 총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인데, 그럼 고검장들은 믿을 수 있는 것이냐? 대체 무엇을 위한 개혁안인지 모르겠다”며 “검찰총장을 국민 직선제로 뽑아 국민의 명령으로 총장이 수사를 하게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러면 국민도 납득하고 수사 대상자들도 납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내놓은 공개 메시지를 두고 다양한 정치적인 해석이 나오면서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갈등은 계속될 분위기다. 사진=임준선 기자
#시민단체 이어 친여권 인사도 비판
이번 검찰 개혁 권고안에 시민단체까지 반대 목소리를 보탰다. 참여연대는 7월 28일 논평을 내고 “개혁위 권고안은 생뚱맞고 권한의 분산이라는 취지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비판 대열에 합류한 가운데, 29일에는 대한변호사협회(이찬희 협회장)도 논평을 내고 개혁위의 권고안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약화한다”며 가세했다.
친 여권 인사인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도 KBS 라디오에 출연해 “1994년부터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검찰개혁을 논의했지만, 그동안 논의한 방향과 엇박자가 나는 안”이라며 비판했다.
이처럼 여권 내에서조차 ‘이건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여권 소식에 빠른 법조인은 “최근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번 개혁 권고안을 놓고 ‘조금 과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하더라”며 “윤석열 총장을 ‘혼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친 안이 나온 게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비로소 등장한 윤석열의 참전 메시지
윤석열 총장이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내놓은 공개 메시지를 두고 다양한 정치적인 해석이 나오면서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갈등은 계속될 분위기다(관련기사 ‘한동훈 vs 정진웅’ 육탄전 알고 보면 ‘윤석열 vs 추미애’ 대리전).
윤 총장은 3일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라는 자극적인 발언으로 정부·여권을 겨냥한 메시지를 냈다. 일각에서는 ‘원칙적 발언’이라고 설명하지만, 검찰 내에서조차 “윤석열 총장이 이 같은 발언을 했을 때 발생할 후폭풍을 모를 리가 없다. 사전에 의도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석열 총장이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한 발언을 두고 사실상 ‘참전 선언을 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난 7월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 당시의 기념촬영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여당은 당연히 반발했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 개혁 반대를 넘어선 사실상의 반정부 투쟁 선언”이라고 규정한 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극언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을 건드린 개혁위 권고안을 넘어 더 큰 협상력 확보를 위한 ‘참전 선언을 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윤 총장을 잘 아는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번 메시지는 일부 핵심 집권 세력들에게 보내는 확실한 반대의 목소리”라며 “그동안 불리한 상황에서 참고 견디던 윤 총장이 ‘때가 됐다’고 생각해 작정하고 발언을 한 것이다. 앞으로 추미애 장관을 필두로 한 여당과 윤 총장의 갈등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