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세계 대회에서 이런 교감이 사라졌다. 프로기사도 바둑돌 대신 마우스를 잡아야 한다. 더는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가 없다. 초일류 기사들이 대형 모니터 앞에서 면벽수행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반전무인(盤前無人)이 된다. 온라인 대국은 실력 외의 변수가 많이 줄어든다. 대국장 환경이나 대국 상대의 영향을 덜 받는다. 오히려 예상 못한 연승을 거두거나 무명 기사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춘란배 8강에 오른 신진서. 사진=한국기원 제공
현재 세계 대회가 열리는 온라인 대국장은 두 곳이다. LG배, 농심배 등 한국 주최 대회는 사이버오로(=중국 시나바둑=일본 유겐노마) 대회 서버를 통해 진행한다. 춘란배, 응씨배 등 중국 주최 대회는 중국 예후(野狐)바둑이 창구가 된다. 대회 진행방식은 거의 같다. 한·중·일 3개국 기원에 마련된 인터넷 대국실에서 접속한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각국 심판이 감독한다.
온라인 세계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 성적은 괜찮은 편이다. 중국으로 가서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대국하는 것보다 심리적 안정감이 있다. 제13회 춘란배 본선도 인터넷대국으로 열렸다. 7월 29일 24강, 31일 16강을 치렀다. 결과는 중국 선수 네 명, 한국 선수 세 명, 대만 선수 한 명이 8강에 올랐다. 본선에 한국은 여섯 명이 출사표를 던졌는데 박정환은 24강에서 롄샤오에게 패했고, 신민준은 16강에서 탕웨이싱에게 막혔다. 강동윤도 16강에서 커제에게 졌다. 8강 대진은 신진서-판팅위, 박영훈-탕웨이싱, 변상일-롄샤오, 커제-쉬하오홍으로 결정되었다.
8월 초엔 글로비스배가 열렸다. 1일 16강전을 개막했고, 2일 오후 결승전까지 치렀다. 인터넷상에서 치러진 대회에서 일곱 번째 우승자가 나왔다. 일본기원이 주최하는 신예기전이다. 만 20세 미만, 2000년 이후 출생한 3국 프로기사에게 출전자격이 주어진다. 올해 한국대표로 박상진·박종훈 4단과 문민종 2단이 나섰다. 한국은 2017년 4회 대회에서 신진서가 우승했고, 2019년 6회 대회에서 신민준이 정상에 등극했다. 이 밖에 중국이 세 차례, 일본이 한 차례 우승했던 대회다. 한국 랭킹 1위 신진서는 나이로 보면 출전자격이 있었지만, 참가하지 않았다. 호랑이가 빠지자 셰커, 랴오위안허, 리웨이칭 등이 우승후보로 급부상했다.
글로비스배 우승자 문민종. 사진=한국기원 제공
결론은? 2003년생 막내 문민종이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했다. 다크호스 문민종은 “결승전을 치르고 바로 인공지능으로 확인했다. 형세가 나빴던 적이 없었다. 사실 중국 선수들이 너무 강해 기대를 거의 안 했다. 8강에서 맞붙은 셰커 선수에게 거의 진 바둑을 운 좋게 이겨 상승세를 타서 우승까지 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미 두 차례나 일정을 연기했던 농심신라면배도 온라인 대열에 동참했다. 8월 18일부터 22일까지 벌어진다. 드디어 제21회 농심신라면배 우승국이 나온다. 농심이 중국시장을 겨냥해 만든 대회다. 3차전과 시상식은 중국 상하이에서 여는 게 공식이었다. 하지만 차기 대회 본선을 올해 10월에 시작해야 하기에 더는 미루기가 곤란했다.
이번 3차전은 ‘한일전’으로 시작한다. 박정환 9단과 이야마 유타 9단이 맞붙는다. 둘 다 한국과 일본에서 마지막 남은 주장이다. 뒤에 중국기사 네 명이 기다리고 있다. 우승하려면 미위팅, 판팅위, 셰얼하오, 커제를 모두 꺾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 같지만, 온라인 대국에선 모르는 일이다. 박정환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은 기간 동안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 힘껏 싸우겠다”는 임전소감을 남겼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