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 가능성이 커지면서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출자전환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에 오르는 시나리오에 힘이 실린다. 사진=이종현 기자
#금호산업 침묵 깬 배경, 산업은행 기류 변화?
현산은 지난 7월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틀 전인 24일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재실사를 제안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거래종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4월 초부터 지금까지 15차례 공문을 통해 재점검이 필요한 사항을 보냈지만 지금까지 공식적 자료는 물론 기본적 계약서조차 제공받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현산의 입장에 대해 그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던 금호산업이 강하게 되받아쳤다. 금호산업은 지난 7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수준비위원회를 통해 충분한 자료 제공과 설명을 해왔고, 경영진 간 대면 보고한 사항도 있다”고 반박했다. 또 “거래종결이 임박한 시점에서 추가 실사 요구는 거래종결을 회피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거래종결에 대한 진정한 의지 없이 책임 회피를 위한 구실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지적했다. 현산의 재실사 요구가 추후 있을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 등을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셈이다.
이에 현산도 즉각 반응했다. 현산은 같은 날 보도자료를 내고 “진정성 있는 재실사 제안은 계약금 반환을 위한 명분 쌓기로 매도됐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산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선행조건 충족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당사의 재실사 요구를 묵살한 채 7월 29일 계약해제 및 위약금 몰취(소유권 박탈, 국가 귀속)를 예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며 “이미 선행조건 미충족 등 인수계약을 위반하였으므로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 반환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성공적인 거래종결을 위해 재실사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금호산업은 매각 주체이지만 협상 중재자인 채권단과 인수 주체인 현산 사이에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현산이 지난 6월 산은과 금호산업에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이동걸 산은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회동을 가질 때에도 침묵을 지켰다. 이 때문에 이번 금호산업의 입장 표명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금호산업이 채권단의 분위기를 읽은 것 같다”며 “산은은 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노딜’로 보고 플랜B를 준비하고 있고, 금호산업 또한 산은의 의중을 파악한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는 산은의 태도 변화가 읽혔다. 현산과 금호산업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7월 말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오는 11일까지 최종 기한을 통보하며 단호한 입장을 보인 것.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현산의 재실사 요구에 대해 “통상적인 M&A(인수합병)에서 전례가 없는 과도한 요구”라며 “기본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매매 시도 때부터 여러 상황을 준비했다. 매각이 무산되면 영업 정상화를 위해 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유동성을 지원할 것”이라며 채권단 주도의 경영관리 방안 등 ‘플랜B’까지 언급했다.
이미 딜 무산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금호산업이 산은 대신 목소리를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딜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추후 있을 소송전에 대비해 내용증명 격의 내용이 담긴 입장 표명이 난무하게 된 것”이라며 “산은이 자구노력을 강조한 만큼 매각과정에서 노력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추후 공세 수위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딜’이 가시화되면서 산업은행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동행이 길어지게 됐다. 사진은 아시아나항공의 A350 모델. 사진=아시아나항공
#‘노딜’ 뒤 산은‧금호 다시 한 배 타나
“묘한 상황이 연출됐다. 금호그룹 입장에서는 그룹 재건의 유일한 방법이 좌절됐지만, 한편으로는 산은과의 호흡을 통해 회생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황용식 교수는 ‘노딜’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산은의 행보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산은이 출자전환을 통해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지원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다.
출자전환으로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되는 시나리오는 금융위원회에서 먼저 언급됐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이 지난 7월 28일 국유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감안하고 있다”고 답하면서다. 금융위는 설명자료를 통해 “원론적 취지의 답변”이라고 즉시 진화에 나섰다. 산은 또한 “일부 지분을 보유하는 것에 ‘국유화’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채권)은행의 관리라는 표현이 적당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산은 등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사실상 ‘국유화’로 해석하고 있다. 현산이 이번 딜에서 발을 빼면 새롭게 인수자를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산은이 최대주주로 경영 정상화에 나선 다음, 재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총 8000억 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보유 중이다.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지분 36.9%로 현 최대주주인 금호산업(30.7%)을 제치고 아시아나항공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한 차례 만기가 연기된 1300억 원의 차입금 상환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 금호그룹 입장에서 현재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으로 오는 것이 유리하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애초 2조 5000억 원 규모 매물에 새로운 인수자를 찾기가 어려운 데다,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항공수요가 과거로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업황이 어려운 만큼 훨씬 낮은 가격에 입찰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 금호그룹 입장에서는 (당장 새 인수자를 찾는) 또 다른 매각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전했다.
반면 채권단 관리는 최후의 선택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은 관리체제에서는 공적자금이 대량 투입되는 데다 구조조정 및 몸집 줄이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허희영 교수는 “국책은행인 채권단은 노선권이나 운송 인프라 등 업계 영향력과 국제적 사업역량을 보유한 거대 기업을 어떻게든 회생시키려 할 것”이라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이고 새로운 인수자를 물색해야 하는데, 산은이 전문경영인을 내려보내는 관리체제에서는 구조조정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한편 추후 현산과 예고된 법정다툼에서도 산은과 금호그룹은 ‘원팀’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금호와 산은은 하등의 잘못이 없다. 모든 법적 책임은 현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금호그룹과 산은의 동행이 길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딜 과정에서 산은이 크게 목소리를 내며 주객이 전도된 모습으로 비쳤을 수 있지만 산은과 금호그룹은 결국 한 팀으로 보는 것이 맞다”며 “산은과 금호그룹은 추후 현산과의 법적대응과 플랜B 마련을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