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동물농장’의 공식 SNS 채널 계정 ‘애니멀봐’가 지난 1일 게시한 예고편 영상. 실제 장애견을 ‘관종견’으로 희화화해 큰 논란을 낳았다. 사진=‘애니멀봐’ 화면 캡처
문제의 방송은 지난 1일 ‘애니멀봐’ 유튜브에 올라온 ‘우리집 개 호돌이가 갑자기 걷지 못합니다’라는 제목의 예고편이다. 일요일인 2일 본방송을 앞두고 예고편을 올리면서 애니멀봐 측은 앞다리에만 의지해 걷는 장애견 호돌이에게 ‘뒷다리 파업’이라는 자막을 넣고, 호돌이가 마치 주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 일부러 뒷다리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편집했다.
여기에 더해 애니멀봐 측은 동물행동교정전문가 이찬종 훈련사의 영상을 추가하고 “일어나 걷습니다”라는 대사를 삽입해 이 직후 호돌이가 갑자기 걷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고편만 봐서는 호돌이는 어떤 문제도 없는 단순한 ‘관종(관심종자)견’으로 판단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제작진 측은 이 영상에 ‘앉은 강아지도 일으키는 갓(god)찬종’이라는 해시태그까지 첨부해 이 같은 판단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호돌이가 ‘진짜 장애견’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큰 논란이 됐다. 지난 2일 본방송에 등장한 호돌이는 말초신경 이상으로 4년간 뒷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고편에서 잠깐 보였던 ‘걷는 모습’은 주인의 꾸준한 재활 노력과 정성에서 비롯한 것이었고 이찬종 훈련사는 아예 출연조차 하지 않았다.
시청자들을 낚기 위해 도가 지나친 편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이 빗발쳤다. SBS TV동물농장 시청자 게시판에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자극적인 예고 유튜브 영상 사과하고 수정해 달라” “유튜브 영상 책임자를 처벌하고 호돌이 견주 분과 이찬종 훈련사께 사과해야 한다” “시청률, 조회수에 미쳐서 거짓 방송하고 아픈 동물을 비하하지 말라”는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지난 5일 기준 SBS ‘TV동물농장’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여전히 제작진을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사진=TV동물농장 시청자 게시판 캡처
시청자들의 반응을 본 제작진 측은 같은 날 해당 유튜브 영상에 댓글로 사과문을 올렸다. “이번 영상 예고의 마지막 부분을 본방송 내용과 다르게 편집해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해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견주님께는 상황에 대해 설명드리고 직접 사과의 말씀을 전했다. 호돌이 관련 영상은 견주님과 논의 후 양해를 구하고 내리기로 결정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드리고 그 무엇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여러분들 마음을 더 생각하는 애니멀봐 팀이 되도록 더 노력하고 주의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사과문은 ‘TV동물농장’ 공식 사이트에는 게시되지 않았다.
정식 방송분이 아닌 단순한 SNS용 영상이 이처럼 시청자들의 공분을 산 것은 ‘애니멀봐’의 사례가 처음이다. 본방송인 ‘TV동물농장’도 방송 내용 조작이나 무책임한 구조 방식 등으로 장수한 만큼 비판도 많이 받긴 했지만, 애니멀봐에 대한 비판과 지적은 이례적이다. 이는 애니멀봐 팀의 과도한 ‘개그 욕심’ 탓에 축적돼 온 시청자들의 불만이 이번 사건으로 한꺼번에 터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애니멀봐 팀은 공식 SNS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끌었던 스타 견 ‘짱절미’의 강아지 시절 사진을 올린 뒤 “짱절미 기억 하시죠? 더 잘 기억해 두세요, 이제 그 얼굴은 없으니까ㅋ”라는 글을 올렸다가 네티즌들의 지적을 받고 삭제한 바 있다. 강아지 시절에는 귀여웠지만 성장한 이후에는 역변했다는 의도로 농담을 던진 것이 애견인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지난해 3월에는 사고뭉치 강아지의 에피소드 예고편을 제작하면서 “이걸 죽여 살려”라는 글과 함께 강아지와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 사진을 합성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애견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에서 보신탕으로 농담을 했다는 것에 네티즌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심지어 애니멀봐는 해외 시청자들이 전체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도 민감한 이슈인 보신탕을 언급해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애니멀봐는 영상 홍보 과정에서 여혐(여성 혐오) 표현을 사용했다가 여성 네티즌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사진=애니멀봐 인스타그램 캡처
이 외에도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는 ‘아몰랑’ 등의 유행어를 썼다가 지적을 받고 고치는 등 크고 작은 이슈가 이어져 여성 네티즌들이 등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시 자극적인 영상 편집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방송가에서는 이번 논란을 두고 “SNS가 매체 접속의 기본이 된 상황에 맞춰 마케팅을 해 온 입장에선 문제의식을 갖기 쉽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 관계자는 “요즘 시대 방송은 본방송을 아무리 잘 만든다 해도 SNS나 유튜브용 클립 영상(짧게 편집된 영상)이 재밌지 않으면 대중의 눈길 한 번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또 젊은 세대는 그들 감성에 맞지 않는 영상은 아예 제목 클릭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의 감성에 맞추다 보니 인터넷 유행어나 드립을 사용하고, 그렇기 때문에 편집 자체가 한없이 가벼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애니멀봐는 2016년 ‘TV동물농장’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로 개설된 뒤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로 영역을 넓히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왔다. 특히 유튜브의 경우는 유튜브 랭킹 사이트 ‘소셜 블레이드’ 기준 전 세계 동물 채널 가운데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인기와 그에 따른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인기에는 본 방송인 ‘TV동물농장’이 20년간 쌓아온 고정 시청자층의 덕도 있지만, 유튜브와 SNS의 생리를 정확히 짚어 마케팅을 이어온 애니멀봐 팀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지상파 방송을 챙겨보는 기성세대와 달리 유튜브나 SNS의 짧은 영상을 주로 이용하는 젊은 세대들을 노린 ‘젊은 마케팅’이 동물 예능이라는 특수 포맷과 어우러지면서 높은 시너지 효과를 누린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젊은 감성의 마케팅이 과도해지면서 지상파 예능의 공식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방송 수준의 편집이나 유행어 사용으로 일반 시청자들까지 피로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선 관계자는 “아직까지 일반 시청자들은 TV로 보는 방송에 대해 어느 정도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한계선 같은 게 있다. 그런데 TV방송의 공식 채널이 선을 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지적이 이어지는 것”이라며 “방송 플랫폼 구분이 모호해졌다곤 해도 지상파 방송이 갖는 품격이란 게 있으니 그 선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