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그림자 수행’ 하는 현송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사진=연합뉴스
7월 2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선 제6회 전국노병대회가 열렸다. 북한의 ‘조국해방전쟁 승리의날(정전 기념일)’ 67주년을 맞아 열린 행사다. 이 자리엔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도 참석했다. 김정은이 자위적 핵 억제력을 언급하며 국방력 강화를 천명한 무대가 이 노병대회였다.
이날 현송월은 김정은 지근거리에서 밀착 수행을 담당했다. 김정은의 의전 및 편의를 챙기는 임무였다. 이는 김여정이 남북 정상회담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맡았던 역할이다. 김정은을 잡는 북한 관영매체 카메라 앵글에 현송월이 잦은 빈도로 등장했다.
중국 내 북한 전문가로 알려진 린하이동 한반도문제관찰 평론가는 노병대회 사진으로 현송월과 김여정 동선을 분석했다. 린하이동은 “현송월이 김정은의 의자를 뺐으며, 연설이 끝난 뒤엔 김여정이 연설문을 정리했다”고 했다. 린하이동은 “현송월은 김정은의 컨시어지(안내인) 역할”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그림자 수행을 담당하는 인물로 현송월을 지목한 셈이다.
현송월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사진=한국공동사진취재단
2020년 한국 통일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송월은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밀착수행 전임자’인 김여정 직책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현송월은 예술인 출신으로 북한 중앙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보천보 전자악단 가수로 활동하다 모란봉악단 단장,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등을 맡으며 북한 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7년 10월 7일 평양에서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7차 제2기 전체회의에서 당 중앙위원 후보에 올랐다. 본격적인 정치권 입성이었다.
탈북민 소식통과 북한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현송월은 김정은이 유학을 마치고 온 뒤 원산에 머무를 당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민들 사이에선 김정은과 현송월 사이에 사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돈다.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온 뒤 원산에 친모인 고용희와 머물렀다. 당시 김정일은 1~2주에 한 번꼴로 고용희와 그의 자녀들을 돌보러 원산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은 원산을 방문할 때 ‘조선노동당 5과’와 함께 움직였다. 조선노동당 5과는 국내에서 이른바 ‘기쁨조’라고 불리는 북한 당내 상급기관이다.
한 북한 소식통은 “김정일이 대동한 조선노동당 5과 인원 중 현송월이 포함돼 있었으며, 이때를 기점으로 현송월과 김정은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술가인 현송월은 북한에서 정치권 중심으로 편입되기에는 한계가 있는 신분이다. 그럼에도 현송월이 북한 정치권 중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은 최고 지도자 김정은과 뭔가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은과 현송월의 열애설이 돈 적이 있다”고 했다.
7월 28일 북한 제6차 노병대회 행사에서 주석단에 자리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사진=연합뉴스
현송월 남편은 7·27사단 박시철 당위원회 조직부 부원이다. 7·27사단은 북한 군부 체육단들을 총망라한 조직이다. 한국으로 치면 국군체육부대(상무)와 비슷한 조직이지만, 그 규모는 상무보다 훨씬 크다. 2019년 리종무 7·27사단장이 지병으로 쓰러진 뒤 현송월 남편 박시철은 후임 사단장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박시철은 포병부대 군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박시철은 체육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박시철이 7·27사단장 후보군에 올랐던 것을 놓고도 현송월이라는 배경이 있어 가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현송월의 북한 내 정치적 입지는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여정은 대남 담화문 발표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굵직한 사건의 중심에 서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높였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두고 김여정을 둘러싼 비판론도 제기되긴 했지만 정치적 2인자 위치는 여전히 공고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 북한 전문가의 말이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슈로 김여정 회의론이 일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 시점에선 ‘백두혈통’인 김여정이 정치 일선에서 후퇴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 김여정이 잠시 휴지기를 가지고 있지만 최근 북한 주요 공개 행사들을 살펴보면 점점 정치적 지위를 높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도 김여정은 김정은이 직접 행동으로 나서기 껄끄러운 부분을 대신 처리할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다.”
201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리설주와 김정은. 사진=평양공동사진취재단
현송월과 김여정 외에도 대외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북한 여성 정치인은 또 있다. 대미 외교 간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 등이다. 북한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뒤 여성을 등한시하던 북한의 정치 풍토가 변화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김정은은 김정일과 달리 서방세계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여성 정치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자신의 딸인 이방카 트럼프를 전면에 내세우고, 영국에서도 왕세자비들이 화제 중심에 등장한다”면서 “김정은이 김여정을 비롯한 여성 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운다거나 부인인 리설주를 공개하는 등의 조치 이면엔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어필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