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여권 내부에서 한때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더불어민주당 투톱인 ‘상왕(이해찬)과 불도저(김태년)’가 행정수도 각론을 놓고 엇박자를 내면서 여권 내부에서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는 모습이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초유의 부동산 정국에서 당 투톱이 파열음을 냈거나, 아니면 다분히 의도적인 역할분담이다. 수수께끼 같은 당 투톱의 의중을 풀면, 여권 미래권력의 판이 보인다.
7월 22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해찬 당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다른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김태년의 힘이다.”
민주당 복수의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행정수도 이전은 김태년 원내대표 작품이다. 김 원내대표는 7월 21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정수도 완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본격 추진을 위해 국회에 행정수도완성 특별위원회(특위)를 구성하자”고 전격 제안했다.
하루 전인 7월 2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는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포함된 자체 ‘비밀 여론조사’가 보고됐다. 이 조사는 한 달에 두 번 보고된다. 그간의 비밀 여론조사에는 정치권 현안이 종종 포함됐다. 하지만 그간 공론화한 적이 없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이례적으로 포함됐다는 것 자체가 당 일부 지도부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 찬반이 팽팽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자체 조사에서는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다. SBS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의뢰해 7월 24∼25일(결과는 26일 공표,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6%가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했다. 반대는 40.2%로, 오차범위 밖이었다.
행정수도 이전은 개헌 이슈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국면전환용 카드로 꼽힌다. 그만큼 파괴력이 크다는 얘기로 여권 입장에서도 정치적 부담감을 감수해야 한다. 이해찬 대표도 당 내부 여론조사를 보고받은 후 노무현 정부 때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결정한 점을 거론, 불필요한 여론조사였다는 점을 언급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온다.
그런데 김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행정수도 이전을 불쑥 꺼냈다. 행정수도 이전은 김 원내대표의 ‘독자구상’이라는 얘기다. 김 원내대표 앞에 ‘불도저’라는 별칭이 붙기 시작한 것도 행정수도 이전을 고리로 이슈 파이팅을 한 직후다. 민주당은 김 원내대표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 일주일 만에 ‘행정수도완성추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속도전을 전개했다. 그사이 이 대표의 애착이 강했던 ‘국회 세종분원’ 이슈는 묻혔다.
김 원내대표의 직진 드리블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1대 출범 직후부터 화약고 이슈에 총대를 멨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례 없는 ‘여당의 국회 상임위원장 독식’을 시작으로,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초강도 부동산 규제 등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김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깔끔하게 가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선 여야 특별법 합의’를 앞세워 직진을 택했다.
이러한 김태년식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당 의원들은 “김 원내대표가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지만, 정의당에선 “본회의가 여당 의원총회냐”라고 비판했다.
관전 포인트는 상왕과 불도저의 의중이다. 가능성은 반반이다. ‘엇박자나 역할분담’ 둘 중 하나다. 다만 어느 것이든, 불도저 김 원내대표의 승부수는 이미 상당한 효과를 봤다. 부동산 대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최고조에 다다를 때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나오면서 ‘시선 돌리기’에 성공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가 6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미래통합당 충청권 의원들까지 포섭하면서 여당과 충청권 야당 의원들은 사실상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충청권의 보수 맹주인 정진석 통합당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은 포기할 수 없는 백년대계의 숙제”라며 당의 조속한 입장 정리를 촉구했다. 여권발 행정수도 이전 카드는 단기간으로 ‘국면전환’, 장기적으로는 차기 대선을 겨냥한 여권발 장기집권 포석이 담긴 회심의 카드라는 얘기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김 원내대표가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 이 대표가 개헌론을 주장한 뒤 행정수도완성추진TF에서 속도조절을 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 행정수도완성추진TF는 7월 4일 서울지역 국회의원과 간담회를 열고 “‘글로벌 경제수도’ 서울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특별법, 국민투표, 개헌, 그 어떤 것도 여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고 밝혔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를 위한 국회 특위 구성도 야당에 다시 제안했다. 엇박자로 출발한 행정수도 이전 이슈가 이 대표의 개헌론 제기 이후 원심력을 제어하는 쪽으로 귀결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행정수도 이전이 미칠 전국 단위 선거의 결과다. 여야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치른다. 1년 뒤인 2022년 3월엔 차기 대선을 놓고 맞붙는다. 행정수도 이전 이슈는 ‘미니 대선’과 ‘본 게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 찬성 여론이 높다’는 내부 보고를 받은 직후 “개헌 사안”이라고 브레이크를 건 것도 여권발 장기집권의 첫 단추인 2022년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의 고민도 이 지점이다. 서울시장 보선만 놓고 보면, 행정수도 이전은 여당에 불리한 이슈다. 적어도 서울 시민 중 집을 가진 임대인들은 여당의 행정수도 이전 추진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크다.
행정수도 이전 반대 여론이 많았던 ‘한국갤럽’ 조사에서 서울 시민의 반대 여론(61%)은 전체 평균(49%)보다 12%포인트나 많았다. 서울 시민 3명 중 1명(32%)만 행정수도 이전을 찬성했다. 이 조사는 7월 28∼29일까지 이틀간 자체 조사해 다음 날인 30일 정례조사와 함께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년 4월 7일 서울시장 보선에서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라”고 민주당을 압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권 발 부동산 대란과 행정수도 반대 여론이 맞물릴 경우 보수당이 9년 만에 서울시장 자리를 탈환할 수도 있다. 정부가 23번째로 내놓은 공공재건축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조합뿐 아니라, 과천 등 여권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민주당 지역구 의원(정청래 등) 등의 반발에 부딪혀 첫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여권 내부 분열의 단초가 된다면, 민심이반은 한층 확산할 수밖에 없다. 야당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 보선은 부동산 선거전으로 치러질 것”이라며 “이 경우 쫓기는 쪽은 여당”이라고 잘라 말했다.
반면 서울시장 보선과는 달리, 2022년 대선 국면에서 행정수도 이전 이슈는 민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대전·세종·충청의 유권자의 57%가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했다. 반대는 36%에 그쳤다.
2002년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충청권에서 ‘50% 이상 득표율(대전 55.1%·충남 52.2%·충북 50.4%)’을 기록했다. 반면 충청권 인사였던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얻었던 득표율은 40%대 초반(대전 39.8%·충남 41.2%·충북 42.9%)에 그쳤다. 전국 집계의 최종 득표율은 노 전 대통령이 48.91%로, 이 후보(46.59%)를 2.32%포인트 차로 꺾었다. 행정수도 이슈가 ‘국면전환 유리→2021년 4월 보선 불리→2022년 대선 유리’ 등으로 이어지는 고차 방정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