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주)한화의 방산사업 일부를 분사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화그룹 빌딩. 사진=박정훈 기자
(주)한화는 지난 7월 30일 방산부문의 분산탄 사업을 물적 분할해 신설법인(코리아 디펜스 인더스트리)을 설립한다고 공시했다. 오는 9월 24일 임시주총을 열고 안건을 의결하기로 했다. 신설법인은 1분기 기준 자본 20억 원, 부채 575억 원 등 자산 595억 원을 보유했다.
사업 재편에 대해 한화 측은 글로벌 안전 환경기준에 대한 불확실성 해소 차원이라고 했다. 분산탄은 포탄 내 개별적으로 폭발 가능한 자탄들을 탑재해 공중에서 흩뿌리는 방식으로 적을 공격하는 무기다. 자탄이 넓게 퍼져나가면서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일부 불발탄을 발생시키는 등 민간 피해 유발 가능성이 높아 비인도적 무기로 비판받아왔다.
최근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기업가치와 투자 여부를 판단할 때 재무뿐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비재무적 요소도 고려한다. 따라서 비판받는 분산탄 사업을 분리해 글로벌 시장이 요구하는 새 기준을 충족함으로써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성장 기회를 확보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룹 3형제 경영권 승계 위해?
그러나 3세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에이치솔루션과 합병을 위해 (주)한화 몸집을 줄이고 있다는 해석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은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지주사인 (주)한화 최대주주로 올라서야 한다. 현재 (주)한화의 최대주주는 김 회장(22.65%)으로 김 부사장의 지분은 4.44%에 불과하다.
재계에서는 김승연 회장 아들 삼형제의 자회사 에이치솔루션이 승계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에이치솔루션은 김동관 부사장이 50%,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와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 각각 25%씩 지분을 보유했다. 에이치솔루션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 가치를 높인 뒤 배당 확대 등을 통해 (주)한화 주식을 사들이거나 에이치솔루션과 (주)한화를 합병한다는 시나리오다.
삼형제에 유리하게 합병비율을 산정하거나 저렴하게 (주)한화 지분을 매입하려면 (주)한화 가치가 낮아야 한다. (주)한화는 지주사인 동시에 화약·방산·무역·기계, 네 부문을 영위하는 사업지주사다. 그중에서도 방산은 그룹 모태인 핵심사업으로, 일부를 떼어냄으로써 (주)한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주)한화의 주식 가치를 낮춰야 승계에 유리하고, 이를 위해서는 보유 사업들을 분산시켜야 한다”며 “본래 한화는 한국화약으로 시작한 기업으로, 메인인 방산을 분리해 가치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에이치솔루션의 주식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이어 그는 “앞으로도 나머지 사업들을 분산탄 사업처럼 분사시키면서 (주)한화를 순수지주사로 남길 것”이라며 “보유 사업들이 자회사로 떨어져나가 영업이익과 자산이 줄어들면 (주)한화 자체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에이치솔루션과 합병하거나 김동관 부사장이 (주)한화 지분을 사들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삼형제가 최근 계열사간 담당 영역을 분명히 한 점도 위 시나리오에 힘을 싣는다. 김동관 부사장은 지난 3월 한화솔루션 사내이사로 선임됐고, 차남 김동원 상무는 지난해 말 한화생명 보통주 30만 주(0.03%)를 취득하며 오너 일가 중 유일하게 한화생명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삼남 김동선 전 팀장은 승마를 그만두고 4월부터 사모펀드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에서 근무 중이다.
한화는 지난해 7월 한화투자증권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금융부문 계열사를 ‘한화생명→한화자산운용→한화투자증권’으로 수직계열화했다. 당시 금융계열사를 분리해 김동원 상무가 승계하기 위한 포석을 쌓았다는 해석이 많았다. 박주근 대표는 “금융 부문은 별도 중간지주사로 만들어 차남이, 한화건설은 삼남이 가져가는 방식으로 형제간 계열사 분리가 이뤄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에 대해 (주)한화 측은 “분산탄 사업 탓에 해외투자 유치에 에러사항이 많아 리스크를 없애려고 분사하는 것일 뿐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차원이 아니다”며 “분산탄은 전체 매출액의 2%도 채 안 되는 등 규모도 작다”고 반박했다.
#니콜라 투자한 한화에너지 덕 에이치솔루션 가치 ‘쑥쑥’
김동관 부사장이 이끄는 태양광과 수소사업도 순항하고 있다. 올 1분기 한화솔루션 태양광 부문 영업이익률은 사업 진출 후 사상 최고치인 11.1%를 기록했다. 수소사업의 경우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니콜라’에 총 1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6.13%를 확보했다. 니콜라는 ‘제2의 테슬라’라 불리는 미국 수소트럭업체로 6월 초 주가가 폭등해 한화그룹 보유 지분가치가 7배 이상 뛰기도 했다.
니콜라에 투자한 한화에너지는 에이치솔루션이 지분 100%를 보유했다. 한화에너지는 니콜라 투자를 함께한 한화종합화학 지분 39.16%를 갖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니콜라 수소충전소에 한화그룹이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우선 공급할 권한을, 한화종합화학은 충전소 운영 권한을 확보했다. 수소사업을 확대해 에이치솔루션 가치를 높이고 승계 ‘총알탄’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언급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에너지종합기업으로 전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서 가치를 높이는 과정”이라며 “에이치솔루션 자회사 한화에너지와 손자회사 한화종합화학을 비롯해 에이치솔루션이 지분 14.5% 보유한 한화시스템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열사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해 제재를 검토 중이란 점에서 이번 분사를 승계용으로 보긴 무리라는 시선도 있다. 공정위는 과거 삼형제가 지분을 전량 보유했던 시스템통합(SI)업체 한화S&C(현 한화시스템)에 그룹 차원에서 일감을 몰아줬다고 보고 한화그룹을 제재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지난 5월 발송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가 한화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상황에서 눈에 띄게 작업하긴 어렵다”며 “사업 성격이 다를 수 있으니 분리해 시너지를 내려는 차원일 수 있다”고 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