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터뷰 한번 합시다.” 지난 7월 초, 윤 씨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다. 그는 ‘비디오카메라’든 ‘사진 카메라’든 하나는 꼭 들고 오라고 했다. 카메라 앞에 서서 직접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2019년 10월,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윤 씨는 한 번도 스스로 신상공개를 한 적이 없다. 그는 경찰과 검찰이 차례로 재조사를 하며 각각 윤 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을 때도, 법원이 다시 재판을 해야 한다며 재심을 결정했을 때도 신상공개는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에게 신상공개는 억울하고, 또 당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출소 이후 10년 동안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옥살이를 했다는 흔적을 겨우 지워가고 있었다. 전과자로 살면서 겨우 붙잡은 직장과 지금의 생활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만 같았다. 세상을 뒤흔든 살인범의 누나, 동생, 친척이란 이유로 숨죽이며 30년을 살아왔던 가족들에게 미칠 영향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 전 이미 한 번 삶이 무너졌던 그는 지금의 삶의 변화도 두려웠다.
윤성여 씨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신상공개를 결정하게 된 이유를 담담히 말했다. 공개 이후 달라질 삶에 대해 “이제는 괜찮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렸던 1989년 화성의 모습을 묘사했다. 직접 수사기록을 한 장씩 넘겨보며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수사기록과 법원 기록에서 거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던 당시 가족들의 사정과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 보냈던 교도소에서의 20년 생활도 떠올렸다.
과거 8차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윤 씨는 그들에게 꼭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과거 수사 경찰관들은 오는 8월 11일,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