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1% 넘게 올라 사흘 연속으로 연고점을 갈아치운 지난 8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0.75포인트(1.33%) 오른 2342.61로 거래를 마쳤다. 사진=연합뉴스
부동산에 몰렸던 시중자금의 ‘증시 행(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주택을 사기 위한 자금 조달이 까다롭게 됐고, 팔려면 차익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놔야 한다. 공시가격 상승으로 재산세와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증여세율도 높아지면서 증여를 해도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현금을 그냥 갖고 있기도 어렵게 됐다. 은행에 넣어도 연 1% 이자를 받기 어렵다. 증시는 4월 이후 다섯 달째 연속 오르며 이 기간 코스피 상승률이 35%에 달한다. 개인 순매수 자금만 20조 원이다. 7월 이후에는 외국인도 코스피 순매수 대열에 합류하면서 주요 종목 대부분이 상승했다. 차라리 빚을 내서 투자를 하는 것이 나을 정도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7월 말 기준 요구불예금(예금주의 요구가 있을 때 언제든지 지급할 수 있는 예금) 잔액은 523조 3725억 원으로 전달(534조 1766억 원)보다 10조 8041억 원(2.02%) 줄었다. 요구불예금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가파른 상승세였지만 7월 들어 방향이 바뀌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요구불예금에 몰렸던 자금들까지 7월 들어 증시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5대 은행의 7월 말 기준 개인 신용대출 잔액도 120조 1992억 원으로 전달보다 2조 6760억 원(2.28%) 증가했다. 사상 최대 증가세를 기록한 6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증가세다. 코로나19 위기가 고조됐던 3월의 2조 2408억 원보다 많다. 증가액은 4월에는 4975억 원으로 주춤했다 5월 1조 689억 원, 6월 2조 8374억 원으로 급증하는 모습이다.
젊은 층은 물론 은퇴 세대들의 주식투자가 늘면서 시중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주식으로 몰려간 개인투자자의 자금은 결국 은행 예·적금을 깬 돈이나 은행 빚 또는 증권사 빚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투자 열풍은 국내만의 현상도 아니다. 미국, 중국 심지어 인도도 주식투자 바람이 뜨겁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정부가 주식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해외투자가 급증한 것처럼 인도에서는 미국 기술주 및 콘텐츠 관련주 투자 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저금리 정책로 시중에 천문학적 현금이 풀리면서 화폐가치 하락을 우려한 이들이 자산시장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자산표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6월 말 기준 국내 통화량(M2)은 국내총생산(GDP)의 160.8%다. 증시 전고점이던 2018년 이 비율은 142.6%였다. 경제규모에 비해 통화량이 훨씬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는 뜻이다. 통화량 대비 증시(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은 비율은 55.4%다. 2018년 이 비율은 58.1%였다. 돈이 불어나는 만큼 증시 가치가 늘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상반기까지 상장사 기업이익은 전년 대비 줄었지만, 향후 12개월 전망치 기준 기업이익은 기저효과 등을 감안할 때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증시가 화폐가치 하락만 반영해도 지수가 더 오를 여지가 큰 셈이다. 아직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지원을 위해 풀겠다는 170조 원 가운데 채 5분의 1도 풀리지 않았다. 한국형 뉴딜까지 감안하면 2025년까지 시중에 풀릴 돈은 300조 원에 가깝다.
외국인의 복귀도 주목할 대목이다. 달러 약세로 외국인 입장에서는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곳에 투자했을 때 환차익을 비롯한 투자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은 기술력을 갖춘 제조업이 많아 이 같은 자금이 선호할 만한 시장이다. 2차 전지 테마로 불붙은 LG화학 외에도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간판 제조업체 주가가 최근 급등한 배경이다.
다만 9월부터는 몇 가지 변수에 따라 시장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일단 9월에는 국내 증시의 공매도 금지 시한이 마감된다. 연장 가능성이 크지만,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과거 2008년과 2011년의 금지조치 해제 이후에도 증시는 비교적 견조했었다.
10월부터는 3월 코로나19로 금융지원을 받은 기업들이 대출 받은 지 6개월 되는 시점이다.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세계 주요 경제의 3분기 실적이 나오는 시기도 10월이다. 11월에는 미국 대선이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여부는 세계 최대 관심사다. 결과에 따라 지난 4년간의 글로벌 정치·경제 질서의 큰 틀이 바뀔 수 있다.
지난 3월 확인된 것처럼 금융시장의 급작스러운 변동은 그 폭과 속도가 가공할 만한 수준이다. 9~11월 주요 변수에 따라 현재 장밋빛인 시장 상황이 일순간에 달라질 수도 있다. 특히 증시가 급락한다면 개인은 물론 기업들의 재무건전성을 급격히 악화시켜 경제에 치명상을 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밖에 코로나19 확산세 진정이나 치료제 또는 백신 개발도 주요한 변수로 꼽힌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