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이 최근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게 1200억 원을 갚았다. 경영난에 빠져 올해 초 3조 6000억 원을 빌렸는데, 이 가운데 일부를 처음으로 상환한 것이다. 이 돈은 지난 8월 2일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골프장 클럽모우CC를 하나금융-모라미래도 컨소시엄에 1850억 원에 팔아 마련했다. 두산중공업이 채권단에 갚은 돈은 회원권 보증금 등 비용을 정리하고 남은 금액이다.
두산그룹 경영정상화를 위한 비핵심 자산 및 계열사 매각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사진=연합뉴스
#7, 8월 진행된 매각 협상, 최종 성사시 최소 2.5조 원 이상 확보
두산그룹 계열사 매각 작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클럽모우를 제외하고 지난 7월 한 달 동안에만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매각 협상만 총 4건이다. 협상에선 두산그룹의 ‘알짜’로 통하는 두산솔루스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 7월 7일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와 매각을 위한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지난해부터 매각 논의를 이어오다 한 차례 거래가 불발됐지만 재협상에 나서면서 최종 매각 성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현재 양측은 매각 금액 5000억 원 안팎에서 지분비율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틀 뒤인 지난 7월 9일엔 대우산업개발에 두산건설 인수 배타적 협상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당초 대우산업개발은 실사를 한 뒤에 인수전에서 빠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두산건설이 물적분할을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두산건설은 물적분할 과정에서 미수채권 등 일부 담보부채권을 신설법인에 이전했다. 두산건설 자산실사 결과 사실상 브랜드 가치가 전부였는데, 업계에선 아파트건설업이 주력인 대우산업개발이 브랜드 인지도 향상을 위해 두산건설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산건설의 아파트 브랜드 ‘위브’는 매년 아파트 평판 조사에서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매각 금액은 약 2000억~3000억 원이 거론된다.
7월 말에도 계열사 매각을 위한 협상이 잇따랐다. 벤처캐피탈(VC) 네오플럭스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신한금융지주를 선정했다. 신한금융은 그동안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꾸준한 행보를 보여 왔지만 정작 그룹 내 벤처캐피탈 자회사는 두지 않고 있었다. 시장에선 두산이 보유한 지분 96.77%에 대한 인수가로 약 700억 원 선이 거론되고 있다.
동시에 두산 모트롤 사업부(BG)도 매각 우선 협상 대상자가 정해졌다. 총 4곳이 입찰에 뛰어들었는데, 소시어스-웰투시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과 모건스탠리 프라이빗에쿼티를 후보군으로 압축했다. 모트롤 사업부가 주력하는 곳이 중국 시장이다. 코로나19 여파와 촉박한 매각 기간으로 중국 현지 실사를 진행하지 못해 후보를 하나로 추리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거래의 변수는 방산 부문이다. 모트롤 사업부는 방산무기용 유압 장치를 제작하는 업체로 지정돼 있어 인수할 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모건스탠리가 미국계 사모펀드라 정부가 거래를 승인할지 여부가 관심사다.
두산그룹의 상징으로 통하는 두산타워 매각은 8월에 완전히 마무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IB(투자은행)업계와 두산그룹 등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부동산 자문사를 선정하지 않고 직접 두산타워 매각을 진행해왔다. 두산과 마스턴투자운용은 8월 말 매매 본계약을 치르고 소유권 이전 작업까지 마무리하기로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매각가는 8000억 원 수준. 두산그룹은 두산타워를 담보로 받은 대출 4000억 원을 상환하고 현금 4000억 원을 손에 쥐게 된다.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도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유력한 인수후보로 꼽혀오던 현대중공업그룹이 최근 회계법인과 대형 로펌을 자문사로 선정하고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와 물밑 접촉하는 등 인수전 참여 의사를 보이고 있다. 인수에 성공하면 국내 건설기계 시장은 현대중공업그룹 중심으로 재편된다.
지난 7월 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 제1전시관에서 열린 ‘2020 수소모빌리티+쇼’에서 두산이 수소드론과 가정·건물·발전용 연료전지 등 친환경 고효율 수소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풀어야할 숙제도 산적
IB업계는 현재 진행 중인 두산그룹 계열사 매각이 모두 성공하면 목표치인 3조 6000억 원 마련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 과정에서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차입금과 기타 비용 지출을 감안해도 빚 상환에 무리가 없는 수준의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채권단 맏형 KDB산업은행도 “자구안 이행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우선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이 불투명하다. 두산그룹이 갚아야 할 빚의 3분의 1을 좌지우지할 두산인프라코어 거래는 두산 밥캣 매각 문제를 따로 떼고 볼 수 없다. 인프라코어가 밥캣의 지분 51.05%를 가지고 있다.
두산그룹 입장에선 계열사 매각을 모두 성사시키면 남는 핵심 계열사는 두산중공업과 밥캣뿐이다. 특히 밥캣은 현재 두산그룹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로선 밥캣은 아무리 급해도 팔지 않겠다는 것이 두산그룹 입장이지만, 시장에선 인프라코어 매각 시 밥캣을 분리하면 매물로서 매력이 떨어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노동조합 반발도 풀어내야 한다. 두산중공업 노조는 올해 사측의 명예퇴직 및 휴업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앞서 두산중공업은 지난 5월 사무직과 생산직 총 357명을 대상으로 오는 12월까지 급여의 70%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휴업을 통보했다. 모트롤 사업부 근로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금속노조 모트롤지회는 노사 협의와 고용, 생존권 보장 없이 매각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매각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매각 저지를 위한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두산그룹 사업구조 재편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넘어야 할 산이다. 두산중공업은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력 사업으로 해상풍력 등을 선정했는데, 최근 정부가 공식화한 ‘그린 뉴딜’ 정책에 수혜를 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이 시장에서 수주 기반을 확보할 때까지 최소 4~5년 필요하다는 점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꼽힌다. 두산그룹은 정부 대출금 3조 6000억 원을 해결해도 4조 원이 넘는 은행권 차입금을 관리해야 한다. 미래 사업을 준비하는 동시에 빚도 갚아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신사업의 매출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두산은 핵심 계열사들이 다 팔려나가고 있는 만큼 새 사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이 깊을 것”이라며 “두산중공업 살리자고 2차전지, 인프라 투자 등 성장성이 높은 계열사를 매각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