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엔터테이너’ 엄정화의 신작 ‘오케이 마담’은 2015년 ‘미쓰 와이프’ 이후 5년 만의 스크린 복귀로 눈길을 끌었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엄정화는 8월 12일 개봉하는 영화 ‘오케이 마담’의 주연으로 대중 앞에 섰다. ‘미쓰 와이프’ 이후 5년 만의 복귀작, 그것도 정통 코미디에 액션을 가미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처음으로 극 중 액션신을 이끌어 나가는 주역을 맡으면서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곧바로 액션스쿨부터 등록했다고 한다. 특훈의 결과일까. ‘기내 액션’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엄정화의 모습은 어설프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본인이 매긴 자신의 액션 점수에 대해서는 “10점 만점에 10점”이라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사실 제가 배우로서 액션을 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거든요. 그런 즐거움이 컸던 것 같아요. 저한테 액션을 연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만큼 어려움도 있었어요. 액션스쿨에 연습하러 간 날 ‘아, 내가 너무 의욕만 앞섰나’ 싶기도 하고, 제가 몸치인가 싶을 만큼 동작 자체를 익히기가 어렵더라고요. 춤을 추는 것이랑은 또 달랐어요(웃음). 특히 맞는 장면이 어려웠는데 제가 감독님한테 그랬거든요. ‘나 맞는 거 왜 연습해야 해요?’ 하니까 감독님이 ‘그럼 그냥 공격만 하시려고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네…’ 대답하고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나요(웃음).”
극 중 엄정화는 영천시장의 소문난 맛집 꽈배기 가게의 주인 미영 역을 맡았다. 연하의 남편 석환(박성웅 분),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우연히 하와이 여행 경품에 당첨돼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비행기 납치 사건에 휘말리면서 가족과 승객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걸이다. 액션은 시원하게 하되, 그 외의 신에서는 사랑스러운 미영의 캐릭터를 가감 없이 보여줘야 했기에 여러 가지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오케이 마담’에서 엄정화는 박성웅과 함께 첫 부부 호흡을 맞췄다. 박성웅에 대해 “너무 사랑스러운 배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부부로서 첫 합을 맞춘 박성웅에 대한 칭찬도 했다. 첫 출세작인 ‘신세계’(2013) 속 이중구의 캐릭터가 너무나도 강하게 남았던 그의 완벽한 정통 코미디 연기에 충격을 받았을 관객도 많을 터다. 반면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봐 온 엄정화는 오히려 박성웅의 연기 변신에 본인이 감화됐다며 칭찬과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코미디 연기 변신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셨더라고요, 그 분이. 정말 자기가 그런 역을 100% 잘 해내고 싶고, 그럴 자신이 있는 마음으로 오셔서 첫 촬영부터 너무 잘 맞는 거예요. 매 신이 아주 즐겁고 모니터하면서 정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요. 박성웅 씨, 정말 사랑스러운 배우 아닌가요? 연기 하면서 보니까 박성웅이라는 배우 안에 여러 명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후반부에 제가 쓰러진 성웅 씨를 뺨 때려서 깨우는 장면이 있는데 촬영 전에 성웅 씨가 저한테 ‘완전 세게 때려도 괜찮아’ 그랬거든요. 그랬는데 정말 제가 그렇게 세게 때린 줄 몰랐어요(웃음). 얼굴에 벌겋게 손자국 난 거 분장 아니고 정말 제가 때린 거예요. 성웅 씨도 시사회 때 보고 ‘진짜 세게 때렸네!’ 그러더라고요.”
오랜 인연을 맺어 왔지만 연기자로서는 초면이었던 배정남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극 중 요원을 꿈꾸는 사고뭉치 신입 승무원으로 분한 배정남은 ‘보안관’ ‘미스터주’에 이어 또 한 번 굵직한 개그 캐릭터로 외모만큼이나 진한 인상을 남겼다. 친한 누나로서, 선배 연기자로서 우려와 격려가 섞인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엄정화는 문득 “나 왜 이렇게 엄마 같냐”며 쑥스러워하기도 했다.
이효리, 제시, 화사 등 후배 가수들과 함께 결성한 ‘환불원정대’에 이어 엄정화는 새로운 음악 작업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가수와 연기, 두 가지 영역을 오가며 명실상부 ‘성공한 만능 엔터테이너’로 자리 잡은 엄정화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겪어야 할 일들도, 감내해야 할 시선과 이야기도 많았을 터. 이제는 까마득한 선배의 입장에서 자신을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어떤 때는 책임감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으로 이를 받아들인다는 게 엄정화의 이야기다.
“일을 하면서 이런 책임감은 있어요. 정말 적극적으로, 끝까지 잘해야겠다는 것. 뭔가 제가 (과거에 활동하면서) 느꼈던 한계나 특히 나이에 대한 한계, 그런 것은 정말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거든요. 여자 배우건 남자 배우건 그냥 그 나이에 맞는 뭔가를 만나게 되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의미 없는 역이 아니라 그 역할에 맞는 이야기들이 각각 주어지는 그런 영화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나이가 들면 이렇게 젖혀놓는 느낌, 그런 건 슬프잖아요(웃음). 저 역시 배우로서 위기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건 항상 있는 것 같아요, 일생 내내. 제 스스로 그런 게 항상 힘들었기 때문에 후배들은 자신이 뭔가 하고 싶은데 나이 때문에 주저하고, 이런 게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 같은 열정은 쉴 새 없이 엄정화를 스크린으로, 그리고 무대로 불러내고 있다. 2017년 공개한 10집의 ‘엔딩 크레딧’으로 많은 이들의 눈물을 뽑아냈던 그는 가수 엄정화를 그리는 대중을 위해 새로운 무대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최근 ‘놀면 뭐하니’를 통해 이효리, 제시, 화사 등 후배들과 함께 뭉친 ‘환불원정대’의 스페셜 무대도 그렇지만, 엄정화라는 솔로가수의 무대에도 관객들은 여전히 갈증을 내고 있다. 엄정화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나이에는 도전하기엔 너무 늦거나 주책이고, 이 나이에는 그런 옷을 입으면 안 되고, 나이에 맞춰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틀을 깨는 모습이야말로 대중이 사랑해 온 엄정화가 아닐까.
“저는 무대에 다시 설 수 있다는 게 너무 신나요. ‘환불원정대’도 아직 구체적인 건 없지만 음악 작업이 잘 돼서 같이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때가 오면 몹시 신날 것 같아요. 이렇게 노래로 돌아갈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지는 분위기라면 앨범 준비도 좀 해볼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사실 가수 시절을 생각하면 뭔가 정말 열심히 했구나, 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아주 까마득한 옛날 같기도 하고 바로 어제 같기도 하고 그래요. 가끔 함성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웃음). 저는 제가 다른 사람들은 다 아니라고 했지만 제 마음을 따라 갔다는 것에 대해 칭찬하고 싶어요. 뭔가 틀 안에 들어 있는 것보다 제가 시도하는 게 더 멋지다고 생각한 게 좋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냈으면 해요. 시간이나 한계에 부딪쳐서 자기가 원하는 꿈같은 걸 사람들과 맞춰서 살지 말고 그냥 나 스스로의 인생을 사는 것. 스스로를 위해 채우는 삶이 저는 좋은 것 같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