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임준선 기자
이른바 ‘검언유착’ 수사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간 대립이 극에 달했던 지난 7월 말경 윤석열 총장은 사적인 식사 모임을 가졌다. 여기엔 평소 친분이 두터운 변호사를 비롯해 윤 총장 지인이 참석했는데, 통합당 관계자도 포함돼 있었다. 이 관계자는 윤 총장에게 대선 출마 여부를 검토해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윤 총장만 결단을 내릴 경우 통합당이 전폭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이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뜻이라고도 했다.
이 관계자의 최측근은 “윤 총장이 조직 안팎에서 쉽지 않은 처지라 위로하기 위한 자리였고, 그러한 제안도 덕담 수준이었다”면서도 “우리로선 윤 총장이 합류한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일이다. (윤 총장도) 국민들이 원하면 결국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실제 통합당 ‘킹메이커’ 김종인 위원장도 차기 구도와 관련, 윤 총장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윤 총장 반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윤 총장은 정치권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부정해왔다. 측근들에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여론기관이 차기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윤 총장을 포함한 결과를 내놓자, 윤 총장 측이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날 윤 총장은 김 위원장 쪽 의중을 재차 묻는 등, 통합당 관계자 얘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전언이다. 과거 손사래부터 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스탠스였다. 통합당 관계자 측은 “윤 총장 진심은 알 수 없다. 다만, 일련의 어려움들을 겪으면서 지쳐있는 것으로 보였고 자신의 거취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면서 “(차기 출마도) 많은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쪽으로 윤 총장의 생각이 옮겨간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윤 총장의 ‘메가톤급 발언’이 나왔다. 윤 총장은 8월 3일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윤 총장과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윤 총장은 ‘뼛속까지 검사’인 사람이다. 검사는 수사로만 말해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수사도 정면 돌파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지금 윤 총장은 몇몇 검사들이 권력에 붙어 수사가 아닌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본다. 또 이로 인해 검찰 조직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해 본인이 총대를 메고 청와대를 향해 일갈한 것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의 발언이었지만 이는 ‘정치인 윤석열’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윤 총장도 이를 잘 알고 발언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윤 총장 작심 발언으로 여권은 발칵 뒤집혔다.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독재 전체주의’란 주장으로 해석된다”며 “(윤 총장은) 이제 물러나야 한다”고 했고, 법사위 소속 김종민 의원은 “100% 정치를 하는 것인데, 검찰총장은 정치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여권 잠룡군 중 한 명인 김두관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가 기강과 헌정질서를 바로 잡고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해 결단해야 한다”며 “윤 총장 해임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당에선 일제히 윤 총장 엄호에 나섰다. 법사위 소속 통합당 의원들은 8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윤 총장 입장에서는 정치권의 그늘에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검찰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을 것이다. 절규하는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환을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윤 총장 발언을 놓고 여야가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통합당 내에선 윤 총장 결심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기대도 감지된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8월 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윤 총장 차기와 관련된 질문에 “검찰총장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실례”라면서도 “윤 총장 본인 의사에 달렸다”라며 여지를 남겼다. 통합당 한 중진 의원은 “벼랑 끝에 선 윤 총장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기를 다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 “이젠 통합당이 윤 총장 영입을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를 만들 때”라고 했다.
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은 윤 총장뿐 아니라 현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또 다른 인사도 차기 주자군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뜻대로 되면 그동안 선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통합당 차기 레이스 흥행은 대성공할 것”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김종인 위원장이 문재인 캠프로 오면서 플러스 요인은 극대화됐고, 상대 진영 상처는 더욱 컸다. 윤 총장 등의 영입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낳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윤 총장 차기 도전설에 대해 여권에선 불쾌감이 역력하다. 민주당 한 친문재인계 의원은 “현 정권에서 발탁된 검찰총장이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게 상식적인 일이냐”고 반문하면서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난해부터 계속됐던 여권 인사들 수사가 결국 윤 총장 개인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란 걸 자인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검찰 내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은 적지 않다. 익명을 원한 한 검사는 “윤 총장이 끝까지 임기를 마쳤으면 한다. 그리고 정치권엔 가지 말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지금 윤 총장이 조직원들에게 강조했던 진정성이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했다.
앞서의 통합당 한 중진 의원은 “검찰총장이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게 사상 초유의 일이라 아직 득실을 따지기는 힘들다”면서도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어디까지나 집권 세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권이 윤 총장을 때리면 때릴수록, 그의 정치적 몸값은 더욱 올라갈 것이고 자연스레 대권 레이스에 참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