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는 전체 생산능력(52만배럴)의 약 70%를 차지하는 충청남도 대산에 위치한 제2공장을 정기보수하면서도 초중질원유 생산 확대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과 2분기 흑자 전환할 수 있었다. 현대오일뱅크 충남 대산공장의 제2차 고도화 분해시설 전경. 사진=연합뉴스
#업황 악화 속에 현대오일뱅크만 흑자 전환
지난 7월 30일 현대오일뱅크는 2분기 연결기준 매출 2조 5517억 원, 영업이익 132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1분기 5000억 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시장에서는 당초 2분기 700억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예상한 것을 고려하면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쓴 셈이다. 특히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 4사 중 유일하게 2분기에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에쓰오일은 1643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은 4397억 원의 손실을 냈다. GS칼텍스는 2분기에 추산 3000억 원의 손실을 낼 것으로 증권가는 내다보고 있다.
정유업계는 올해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올 초 국제유가 하락으로 웃돈을 얹어서 석유를 생산·판매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또 정제마진이 연일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손실이 쌓였다. 코로나19가 전 산업에 영향을 미치며 수요까지 급감했다. 팔리지 않으니 저장할 공간까지 부족해져 석유를 덤핑해서 판매하기까지 했다. 국내 정유 4사는 1분기에만 4조 3775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비상이 걸리자 정유업계는 2분기에 가동률을 낮추거나 공장을 멈추는 방법을 택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일정을 앞당겨 정기보수를 진행해 가동률을 30% 수준으로 낮췄다. 2분기 매출이 전기 대비 감소한 이유다. 지난 4월 8일부터 5월 22일까지 충청남도 대산에 위치한 제2공장 정기보수를 위해서 생산을 중단했다. 정유 정제처리시설과 중질유분해시설 등을 갖춘 제2공장은 하루 36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생산한다. 현대오일뱅크의 전체 생산능력(52만 배럴)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한 배경으로는 초중질원유 생산 확대가 꼽힌다. 현대오일뱅크는 중동산 원유 대비 가격이 저렴한 남미산 초중질원유의 투입 비중을 경쟁사 평균보다 5배가량 확대해 원가를 절감했다. 실제로 2분기 초중질원유 투입 비중은 2014년 9.1%에서 올해 33%까지 확대됐다. 업계 평균은 6.3% 수준이다. 또 수익성 높은 경유, 초저유황 선박유 등의 생산 비중을 높이고 항공유 생산을 최소화했다. 경유제품 매출 비중은 올해 1분기 38%에서 2분기 47%로 높였다.
초중질원유는 저렴해도 황 같은 불순물이 많아 정제하기 까다롭다. 하지만 현대오일뱅크의 정제설비 고도화율은 41.1%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GS칼텍스 34.3%, SK이노베이션 23.9%, 에쓰오일 22%로 집계됐다. 현대오일뱅크는 2017년부터 8000억 원을 투입해 정제설비의 효율화를 추진했다. 어려운 시기가 닥치자, 투자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이 중 2400억 원을 투입해 아스팔트 분해 공정(SDA)을 2018년에 완공했다. 올해 정기보수 기간에도 초중질원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하루 2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탈황설비 증설작업을 완료했다.
내친 김에 현대오일뱅크는 연간 흑자 전환을 꾀할 예정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산유국이 감산 조치를 연장하면서 원유 가격이 점차 상승하고 각국 이동제한 조치가 완화돼 석유제품 수요도 늘 수 있다”며 “하반기 초중질원유 경제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석유제품 시황만 개선되면 올해 연간으로도 흑자 전환을 노릴 만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오일뱅크의 SK네트웍스 영업 양수 건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간판. 사진=최준필 기자
#기존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해 수익 다각화
현대오일뱅크는 본업인 정유업과 석유화학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이어갈 전망이다. 지난 6월 1일 현대오일뱅크는 운영권을 인수한 SK네트웍스 주유소 306곳의 영업을 시작하며 업계 2위로 올라섰다. 1999년 한화에너지플라자 주유소 1100여 개 운영권을 인수해 업계 3위로 올라선 이후 20여 년 만이다.
안정적인 판매 채널을 추가 확보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현대오일뱅크 주유소는 수도권 비중이 낮은데 이번에 인수한 주유소의 60%가 수도권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인수한 주유소들의 하루 판매량은 약 2만 배럴로 알려졌다. 또 전기차 충전기 설치 등 주유소 시설을 이용한 신사업 추진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충전기 제작·운영 전문 업체들과 ‘하이브리드 스테이션 컨소시엄’을 구성한 현대오일뱅크는 전 주유소에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5만 6000대를 기록한 국내 전기차 수는 매년 평균 15% 증가해 2030년에 3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석유화학 사업은 ‘HPC(중질유분해설비) 프로젝트’를 내년에 마쳐 승부수를 낸다. 프로젝트는 현대오일뱅크 자회사 현대케미칼이 현대대죽1산업단지 67만 2528㎡ 부지에 2조 7000억 원을 투입해 정유 부산물 기반 석유화학 공장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HPC는 정유 과정에서 나오는 중질유 등을 원료로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설비를 갖춘 공장이다. 기존에 아로마틱 제품만을 생산하던 현대오일뱅크는 플라스틱·합성고무의 원료인 폴리에틸렌·부타디엔 등의 올레핀 계열의 제품까지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연간 폴리에틸렌 75만 톤(t), 폴리프로필렌 40만 톤을 생산할 계획이다.
HPC는 2분기 흑자 전환을 이끈 전략을 더 강화해줄 전망이다. 중질유는 국내 석유화학사가 원료로 사용하는 나프타보다 15~20% 저렴하다. 원가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연말까지 초중질원유 비중을 37.5%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SDA에서 생산되는 DAO(De-Asphalted Oil)를 HPC의 원료로 투입하면 석유화학 사업의 효율이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오일뱅크는 HPC 완공으로 연간 3조 8000억 원대 매출과 6000억 원대 영업이익을 창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 사업 확대로 비정유부문 영업이익 비중도 30%대에서 45%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신설될 HPC는 장기적으로 DAO 등 정유공장 부산물 투입 비중을 최대 80%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비슷한 생산능력을 가진 NCC(납사분해시설)와 비교해 수익성 개선 효과가 연간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