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기, 방송인 김태균은 자신이 진행하는 SBS 라디오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한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멤버 가운데 대만 출신인 슈화의 억양을 따라 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그가 외국인의 한국어 발음을 흉내 내는 것이 희화화 의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김태균 역시 이에 고개 숙였다.
평등과 동등의 가치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방송가에서 이처럼 ‘차별’에 대한 이슈가 거듭 강조되고 있다. 인종, 국적과 관련해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표현의 자유 역시 보장돼야 한다는 반박이 맞서는 모양새다.
“문화를 따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돼요? 한국에서 이런 행동들 없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가장 좋습니다”라는 입장을 취했던 샘 오취리는 결국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합니다”라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사진=의정부고 학생자치회 페이스북
#샘 오취리와 김태균, 무엇이 문제였나?
독특한 졸업사진으로 매년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의정부고 학생자치회는 8월 3일 SNS에 ‘2020 의정부고 졸업사진 모음집’을 올렸다. 여기에는 가나의 장례식에서 건장한 청년들이 퍼포먼스와 함께 운구해 화제를 모은 일명 ‘관짝춤’을 패러디한 ‘관짝소년단’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특히 샘 오취리는 학생들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한 것을 두고 “문화를 따라 하는 것은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돼요?”라며 “한국에서 이런 행동들 없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라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그의 의견에 대한 반박이 이어지고 과거 샘 오취리 역시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눈을 찢는 퍼포먼스로 동양인을 비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사면초가에 놓였다. 과연 그가 인종 차별을 논할 자격이 있냐는 지적인 셈이다.
결국 그는 7일 다시금 글을 올려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합니다”라며 “제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 일들로 인해서 좀 경솔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김태균 역시 9일 슈화의 억양을 모사한 것에 대해 “외국인 멤버의 서툰 한국어를 따라 했던 것에 불편하셨던 분들과 (여자)아이들의 팬 분들에게 사과드린다”라며 “희화하고자 한 것은 절대 아니고 열심히 억양을 맞춰나가는 모습이 귀여워서 따라 했던 것인데 분명히 불편하게 보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당사자에게 연락해서 사과의 뜻을 전달했고 그와는 별개로 제 실수에 대해 다시 사과의 글을 올린다”며 “앞으로 더 신중하게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며 진행하겠다”며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
김태균은 슈화의 억양을 모사한 것에 대해 “외국인 멤버의 서툰 한국어를 따라 했던 것에 불편하셨던 분들과 (여자)아이들의 팬 분들에게 사과드린다”라며 “희화하고자 한 것은 절대 아니고 열심히 억양을 맞춰나가는 모습이 귀여워서 따라 했던 것인데 분명히 불편하게 보였다”고 해명했다. 사진=김태균 인스타그램
#‘이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
샘 오취리와 김태균을 둘러싼 논란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샘 오취리의 경우 스스로 의도를 갖고 한 발언에 대해 입장을 선회한 것인 반면, 김태균은 의도성 없이 무심코 행한 행위에 대한 반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과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잖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두 사람이 과연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과할 만한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이다.
샘 오취리의 발언에 항의하는 이들은 ‘관짝소년단’의 퍼포먼스를 패러디의 영역으로 봤다. 표현의 자유라는 의미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미주의 남성들이 유명 K-팝 그룹의 춤을 추고 일제히 눈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며 “패러디였다”고 주장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관짝춤 퍼포먼스는 패러디 영역으로 삼을 수 있으나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것은 달리 봐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샘 오취리가 문제 삼은 ‘블랙 페이스’(black face)는 이런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흑인 노예 제도를 겪은 사회에서 일부러 얼굴색을 검게 칠하는 블랙 페이스는 그 자체로 인종에 대한 모욕적 행위로 읽힐 수 있다. 그에 대한 샘 오취리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방송 관계자는 “샘 오취리가 한국에서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과해야 했을까?”라고 반문하며 “그의 지적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듯 샘 오취리의 주장 역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균의 경우도 무작정 희화화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억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동안 수많은 연예인들이 이다도시나 로버트 할리와 같은 귀화한 외국인들의 독특한 말투를 ‘성대 모사’라 하며 따라 했다.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가수 아유미의 말투를 흉내 내며 그의 노래 가운데 한 대목을 “옹동이가 작고 예쁜 나같은 요자”(엉덩이가 작고 예쁜 나 같은 여자)로 부르며 웃음의 소재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예능으로 읽힐 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김태균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낀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 의견을 개진하고 그가 이에 사과의 뜻을 표했듯, 김태균이 상대방을 비하할 의도 없이 재미를 위해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는 옹호 의견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나아가 이 같은 논란은 더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언행에 대해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무조건 사과하는 분위기는 없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