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오전 서울 명동예술극장 앞에서 ‘정치검찰 스폰서 검찰의 개혁을 위한 시민모임’이 서명운동 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조 기자는 각 정권에 따른 검찰의 위상변화를 조목조목 꼬집는 한편 현대그룹 비자금 사건, 김대중 정부시절 최대 스캔들 중 하나였던 ‘옷로비’ 의혹 사건 등 총 9개의 굵직굵직한 사건의 진실을 추적했다. 또한 책 말미에는 안대희, 강금실, 송광수 등 검찰 관계자 10명의 심층 인터뷰를 담아 대형사건 수사의 이면을 공개했다. 3부에 걸쳐 펼쳐지는 그의 ‘검찰 심층 취재 파일’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연의 일치일까. 조 기자의 ‘검찰 취재 파일’은 ‘스폰서 검사’ 폭로 파문 시기에 딱 맞춰 공개됐다. 지난 4월 27일 기자와 만난 조 기자는 ‘의도된 출간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책이 2권이라 출판이 늦어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기를 좀 늦춰 ‘스폰서 검사’ 사건 취재 내용까지 담아갈 것을…. 그렇지 못한 점이 조금 후회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노무현은 유죄인가’. 첫 장을 넘기자마자 눈에 띄는 문구다. 조 기자는 ‘박연차 게이트’의 핵심 주역인 박연차 씨의 변호인과 검찰 고위 관계자들의 전언을 공개했다. 박 씨의 변호인은 “노 무현 전 대통령의 부탁을 받은 박연차 씨가 돈을 건넨 것은 사실이지만 대가성이 없기 때문에 뇌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를 후원자로 여겼기 때문에 부담 없이 돈을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유죄 여부 못지않게 논란이 뜨거웠던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방식이었다. 조 기자는 책을 통해 “많이 봐준 거다”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수사를 하면 안 된다고 얘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등 당시 검찰 고위 관계자들이 보인 상반된 입장을 그대로 반영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방식 논란과 관련해 조 기자는 “관련 수사기록이 공개돼야 진실의 일단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검찰에서 기록을 꽁꽁 숨기고 입을 굳게 닫고 있어 진실규명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또 김대중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의 검찰의 위상 변화 및 내부 권력다툼을 깊이 있게 다뤘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독립성이 점차 신장돼 정권 핵심부를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지만, 정권이 바뀌자 다시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검찰 수사력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파워그룹으로 통하는 검찰과 삼성그룹과의 관계도 다뤘다. 조 기자는 ‘삼성 저격수’로 잘 알려진 김용철 변호사의 ‘오프 더 레코드’ 인터뷰를 공개했다. 김 변호사가 삼성을 떠난 지 1년여 지난 시점으로 ‘양심 선언’이전의 얘기였다.
‘현대 비자금’ 사건은 조 기자의 날카로운 취재력이 빛난 대형사건 중 하나다. 그는 ‘특검’ 수사 연장 불가 결정이 결과적으로 현대에 크나큰 불운으로 작용했다고 꼬집었다. 특검에서 검찰 수사로 권한이 넘어가는 바람에 박지원 전 장관의 150억 비자금 의혹에 한정됐던 수사범위가 현대 비자금 실체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2003년 8월부터 시작된 조 기자의 현대 비자금 사건 추적기는 2007년 8월 이 사건의 결정적 증인인 이익치 씨를 인터뷰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20년 가까이 기자생활을 한 조 기자는 형사소송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이는 현대 비자금 사건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기사 중 자신과 관련된 부분이 허위사실이라며 명예훼손혐의로 조 기자를 고소한 것이다. 기사내용의 진실성을 입증하려면 평소 신뢰하던 취재원의 검찰 증언이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 기자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 씨를 만나 문제의 기사내용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이 씨가 이를 받아들여 소송건은 일단락됐다고 한다.
조 기자는 여론에 떠밀린 검찰수사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 특혜시비 사건을 꼽았다. 국중호 전 청와대 행정관이 조 기자에게 들고 온 서류 보따리 속에는 검찰 수사내용을 뒤집는 귀중한 증거자료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조 기자는 책을 통해 여론을 의식한 검찰의 잘못된 수사와 언론의 ‘비양심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국 전 행정관의 혐의를 대서특필했던 언론들이 그가 무죄를 선고받자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런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 전 행정관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날 모 일간지 기자가 ‘미안하게 됐다. 그땐 어쩔 수 없이 막 썼다’고 말하기에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나더라”며 “사실 이 사건은 언론이 만든 사건”이라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스폰서 검사’파문에 대한 검찰 관계자들의 반응을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러자 조 기자는 “검찰 쪽에선 ‘2차는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2차에 안 갔다고 해서 접대 받은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 않느냐. 성접대까진 모르겠지만 스폰서만큼은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는 사견을 덧붙였다. ‘후속작 계획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없다”고 전제한 뒤 “추리 소설이나 연애 소설을 꼭 한 번 써보고 싶다”며 또 다른 분야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연애소설이 될지 추리소설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취재 파일이 될지, 그가 들고 올 다음 작품이 자못 기대된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