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우승과 준우승은 각각 위르겐 클롭(리버풀)과 펩 과르디올라(맨체스터 시티)가 차지했다. 이전에도 수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이와 달리 솔샤르, 램파드, 아르테타 등이 주목받은 이유는 이번 시즌 들어 본격적으로 역량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2019-2020시즌 프리미어리그는 젊은 감독들이 성과를 내며 찬사를 받았다. 특히 아스널의 아르테타 감독은 부임 28경기 만에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사진=아스널 페이스북
#퍼거슨 후임 잔혹사 끝낸 솔샤르
맨유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30년 가까이 알렉스 퍼거슨의 팀이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리그에서만 13회 우승을 달성하며 영광의 시간을 보냈다.
밝게 빛났던 만큼 그림자도 있었다. 퍼거슨의 후임들은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3명의 감독이 거쳐 간 6년간 맨유는 좀처럼 과거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준우승을 한 시즌도 있었지만 경기 내용면에서 악평이 쏟아지는 등 팀 내부는 곪아갔다.
솔샤르는 맨유의 ‘포스트 퍼거슨 잔혹사’를 끊어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기복을 보였던 2018-2019시즌과 달리 부임 이후 두 번째 시즌 만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리그 3위에 오르며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냈고 다음 시즌은 내심 우승에도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솔샤르는 무기력했던 팀 컬러를 빠른 역습 위주로 변화시켰다. 팀에서 겉돌던,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드필더 폴 포그바에게 적절한 역할을 줘 정착시켰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무성했던 포그바의 이적설은 팀의 안정화와 함께 잦아들었다.
구단 유스 출신 선수들을 적극 기용한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전임 조세 무리뉴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스콧 맥토미니, 메이슨 그린우드, 브랜든 윌리엄스 등이 솔샤르 아래에서 맨유 주요 자원으로 성장했다.
프랭크 램파드 첼시 감독의 영리한 팀 운영은 그의 선수시절 지능검사 결과가 다시 회자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진=첼시 페이스북
2019-2020시즌이 막을 올리던 시점, 첼시의 전망은 암울했다. 수년간 팀을 이끌던 에이스 에당 아자르를 내보냈음에도 대규모 영입을 할 수 없었다. ‘부자구단’ 첼시로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유럽축구연맹(UEFA)으로부터 이적시장에서 징계를 받으며 선수 영입을 하지 못한 탓이다.
감독직마저 공석이 됐다. 마우리치오 사리와 상호 계약해지 이후 첼시의 지휘봉을 새로 잡은 인물은 프랭크 램파드였다.
첼시에서만 648경기에 나서 210골을 넣은 램파드는 의심할 여지없이 구단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였지만 감독으로선 의문 부호가 따라 붙었다. 첼시 부임 이전까지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리그)에서 한 시즌간 더비 카운티를 맡은 경력이 전부였다.
첼시에서의 시작(맨유전 0-4 패배)은 불안했지만 곧 안정적 운영으로 시즌 내내 리그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최종 성적 4위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이는 부자구단임에도 징계로 인해 새로운 선수들을 충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든 결과였기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불과 1년 전까지 1부리그 무대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199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젊은 선수들(메이슨 마운트, 타미 에이브러햄, 리스 제임스, 피카요 토모리)을 적극 활용했다. 경기 중에도 유연한 전술 변화와 적재적소에 이뤄지는 선수 교체도 고평가를 받으며 선수시절 지능검사에서 IQ 150이라는 결과가 나왔던 전력이 회자되기도 했다.
#28경기 만에 트로피 들어 올린 아르테타
2019년 12월 아스널에 부임한 미켈 아르테타는 단 8개월 만에 FA컵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감독 커리어에 우승 트로피를 장식했다. 선수 은퇴 이후 코치로만 활동하다 시즌 도중 처음으로 감독직에 올랐음에도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A컵에서는 셰필드 유나이티드, 맨시티, 첼시를 연파하며 우승을 차지했지만 리그에서는 최종 순위 8위로 팬들이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다. 리그 20경기에서 9승 6무 5패로 뛰어난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경기 내용에 있다. 선수들에게 세부적인 역할을 따로 부여하며 경기 내내 주도권을 잡는 모습을 보였다. 코치 시절 보좌했던 과르디올라의 모습뿐 아니라 아스널이 좋은 성적을 냈던 아르센 벵거 시절(1996-2018)을 연상케 하는 장면도 선보였다. 프리시즌부터 온전히 1년을 이끌 수 있는 다음 시즌을 더욱 기대케 했다.
#‘우승 청부사’는 옛말?
솔샤르(1973년생), 램파드(1978년생), 아르테타(1982년생) 등 젊은 감독들이 두각을 드러낸 반면 토트넘의 조세 무리뉴(1963년생), 에버튼의 카를로 안첼로티(1959년생) 등 베테랑 감독들은 ‘우승 청부사’라는 과거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리뉴와 안첼로티가 감독으로서 들어 올린 트로피 개수는 도합 40개가 넘는다. 이들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횟수만 5회다. 첼시,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무리뉴), 유벤투스, AC 밀란, 바이에른 뮌헨(안첼로티) 등 이들은 그동안 늘 우승을 노리는 구단의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2019-2020시즌 각각 토트넘과 에버튼에 둥지를 틀었다. 무리뉴와 안첼로티라는 이름값, 이들이 그간 거쳐간 팀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토트넘과 에버튼 모두 부진한 성적 속에서 반전을 기대하며 무리뉴와 안첼로티라는 우승 청부사를 데려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임 이후 리그에서 13승 6무 7패(무리뉴), 8승 6무 7패(안첼로티)로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무리뉴는 중위권 이하에 머물던 토트넘을 6위에 올려놓으며 유로파리그 티켓을 선사했지만 ‘답답한 경기력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감독생활 내내 이어왔던 수비적인 경기 스타일을 고수하며 현대 축구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레전드→명장’ 트렌드 이어질까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프리미어리그의 젊은 감독들은 각 구단에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지휘봉을 잡기 전 이미 선수생활을 경험했기에 구단의 철학이나 분위기 등을 잘 알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팀에서 인정받는 선수로 활약했기에 선수단 장악에도 강점을 보일 수 있다.
한 팀의 레전드 선수가 감독으로서 좋은 성과를 낸 사례는 최근 늘어나고 있다. 앞서 스페인의 슈퍼클럽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좋은 본보기를 보여줬다. 이들은 지도자 경험이 많지 않았던 과르디올라와 지네딘 지단을 2008년과 2016년 각각 감독직에 앉히는 모험을 했지만 구단과 감독 모두 성공시대를 여는 결과를 냈다.
레전드 출신 선수에게 지휘봉을 쥐어주는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세리에A 명문 유벤투스는 이번 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했음에도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과 결별하고 안드레아 피를로를 선임했다. 피를로는 2017년 현역 은퇴 이후 코치나 감독, 지도자로서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고 유벤투스라는 빅클럽 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구단 레전드가 감독으로서도 성공을 이어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AC 밀란에서는 클라렌스 세도로프, 필리포 인자기 등이 연이어 사령탑에 올랐지만 팀을 부진에서 구하지 못하며 불명예스럽게 팀을 떠났다. ‘스타플레이어는 명장이 될 수 없다’는 스포츠계 오랜 징크스가 앞으로 어떻게 적용될지 팬들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