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1일 DLF/DLS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우리은행, 하나은행 파생결합상품 DLF/DLS 상품 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판매사가 떠안는 부담이 커 모든 은행이 사모펀드 판매에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사모펀드 상품의 운영과 판매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나면서 관련 제도가 정비되는 중이다. 은행들 또한 내부적으로 판매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어 섣부르게 사모펀드를 판매하지 않을 것 같다. 투자자들 또한 금융상품 보다는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관심을 옮겨 사모펀드 상품의 수요 또한 줄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최근 사모펀드를 대하는 은행들의 분위기 변화를 이같이 전했다. 사모펀드와 관련된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은행들이 판매를 꺼린다는 설명이다. 증시 활황에 따라 사모펀드 수요 또한 줄면서, 은행들은 사실상 사모펀드 상품 판매를 중단한 상황이다. 실제 신한은행은 사모펀드 판매 비중을 대폭 축소했고,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1월부터 사모펀드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DLF 사태에 따른 징계처분으로 오는 9월까지 사모펀드 신규판매가 중단됐다.
하나은행의 분위기는 다른 은행과는 다르다. 우리은행과 함께 징계를 받은 하나은행은 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사모펀드 판매를 재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판매에 나서지 않으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3월 5일 DLF 판매사인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각각 과태료 부과와 업무 일부 정지(사모펀드 신규판매 업무) 6개월 제재를 내렸다. 두 은행은 모두 과태료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업무 일부 정지 제재에 대해서는 하나은행만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하나은행은 지난 6월 29일 행정법원의 징계효력 집행정지 인용으로 사모펀드 판매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사모펀드 판매 재개를 두고 내부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하나은행 관계자는 “사모펀드 상품에 대한 고객의 수요가 줄어들었고, 판매사 입장에서도 판매할 만한 상품이 없다”며 “추후 시장이 안정되면 판매를 재개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업무 일부 정지 제재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한 이유와 관련 “행정소송과 가처분 신청은 금융당국의 징계 수위가 높아 법리적 판단을 받아보자는 취지인 만큼 징계처분 전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DLF 사태에 따른 기관제재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자율조정 배상은 마무리 단계다. 그러나 라임 펀드와 헬스케어 펀드, 디스커버리 펀드 등 문제가 불거진 상품을 모두 판매한 탓에 한동안 배상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 이사회는 지난 7월 21일 라임 무역금융펀드 전액 배상안에 대한 의결을 보류하고 결정 기한 연기를 신청했다. 부실운용 논란이 불거진 헬스케어 펀드의 경우 투자 원금의 50%를 선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사적 화해를 추진하고 있으나 투자금의 절반을 잃게 된 투자자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다수 사모펀드 사태에 연루된 결과, 하나은행은 올해 2분기 주요 시중은행 5곳 가운데 가장 많은 민원이 접수됐다. 올해 2분기 주요 시중은행 5곳에 대한 민원 건수는 685건으로, 이 중 펀드 관련 민원은 222건(32.4%)이다. 하나은행의 펀드 관련 민원은 132건으로 전분기 41건 대비 221.96%의 증감률을 보였다. 같은 시기 6건이 발생한 KB국민은행, 각각 42건이 발생한 우리은행‧신한은행과 비교했을 때에도 월등히 높은 건수다.
서울 종로구 하나은행 본사에 하나은행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일각에서는 하나은행이 문제의 사모펀드를 전부 판매하며 연루된 배경에 함 부회장이 행장 시절인 2015년 강조한 ‘전 직원의 프라이빗뱅커(PB)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직원의 PB화로 영업력 극대화를 노렸으나 결국 공격적인 영업이 고위험 사모펀드 상품 판매로 이어져 후폭풍을 겪게 됐다는 것.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투자 상품을 내놓는 것은 나쁘지 않다. 사모펀드 상품 자체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면서도 “판매 담당자조차 상품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객에게 판매하게 되면 불완전판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앞서의 하나은행 관계자는 “전 직원의 PB화는 전 직원이 개인고객에게도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PB는 투자상품 이외에도 예금상품, 채권상품 등 다양한 상품을 다루는데 최근 사모펀드 사태가 불거지며 의미가 왜곡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최근 금융상품 ‘완전판매 프로세스’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탁, 펀드 등 금융상품 판매 전 과정을 스마트창구 업무로 구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일원화된 매뉴얼을 적용해 불완전판매 여지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 지난 1월에는 불완전 판매로 확인될 경우, 고객의 가입 철회를 보장하는 ‘투자상품 리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DLF 사태 이후 하나은행이 내놓은 재발 방지 개선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배상을 마무리하고 신뢰도를 회복한다 할지라도 남은 과제는 또 있다. 금융감독원의 종합검사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 금감원은 올해 은행권 종합검사의 첫 대상을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으로 정하고 이달 중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나은행은 다른 은행과 달리 금융당국에 강하게 나가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미 다수 은행이 사모펀드 판매를 중단한 상황에서 업무 일부 정지에 대해서까지 불복한 것은 금감원과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순서가 되어 종합검사를 받게 됐지만 시점이 묘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