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가 끝난 뒤 수강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고민정 의원. ‘高캠’의 음절 ‘캠’의 모음 ‘ㅐ’는 ㅏ와 l로 나뉜 뒤 위에 점 2개가 붙었다. 이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형상을 글자화한 것이라고 고 의원은 설명했다. 사진=최훈민 기자
강좌는 8월 1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위치한 고민정 의원 지역 사무실 앞마당에서 열렸다. 고 의원 지역 사무실은 7월 17일 근린생활시설로 용도가 변경된 지하 1층 지상 2층 주택이었다. 엄마 손을 붙잡고 온 10대 소녀부터 음료수 한 상자를 사 들고 온 40대까지 유료 강좌를 신청한 20여 명이 모였다. 강좌는 고 의원과 남편인 시인 조기영 씨 등 총 10인 10강으로 20만 원이었다. 이들에겐 커피와 물이 제공됐고 방명록 옆엔 더불어민주당 당원가입서가 함께 배치됐다.
마스크를 턱 아래로 내린 고민정 의원은 고 신영복 교수가 쓴 글자 ‘통通’ 사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는 이번 유료 강좌 역시 소통의 일환이라고 했다.
그는 “유권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데 선거법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무료로 하고 싶었는데 선거법에 저촉됐다. 의원직이 박탈될 수 있는 상황까지 갈 수 있기에 유료로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죄송하다. 이 정도 서비스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도하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행위로 이어져 온 과거가 있어서 모두 못하게 됐다”며 “선거법을 한번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언제까지 선거법 때문에 주민과 이런 간담회도 못해야 하냐”고 한탄했다.
유료 강좌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나운서가 된 계기와 배우자 선택의 이유도 나왔다. 고 의원은 “처음 아나운서가 됐을 때 목표는 방송 출연이 아니었다.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고 싶었다. 나보다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힘든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때 찾은 게 아나운서였다”고 했다.
이어 “아나운서는 본인이 잘살기만 하면 자기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1세 연상 시인과 결혼한 것도 오히려 굉장히 되게 아주 자랑하고 싶은 ‘거리’였다. 왜냐면 ‘가난한, 나이 차이 많은, 아픈 남자친구를 멋지게 선택해도 나처럼 잘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사람들을 열 마디 말로 이해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사람이 된 계기가 그 다음 주제였다. 고민정 의원은 “2017년 1월 KBS를 퇴사하고 문재인 캠프로 들어갔다. 캠프 들어가기 전에 난 ‘당신이 나를 도와주면 당신에게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그런 약속을 보통 한다고 알고 있었다. 나는 말하는 사람이니까 대변인이나 다른 자리를 약속 받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근데 난 문재인이란 분은 그 당시 통상적인 정치인이랑 다를 거라고 기대했다. ‘저 사람은 다르겠지. 계산하거나 협상하지 않고 진짜 진심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이겠지.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꿔나가고자 하는 정치인이겠지’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확인을 안 해봤으니 알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문재인 캠프 사람이 ‘KBS를 그만둬야 하니 빨리 선택하지 말고 후보 만나서 결정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문재인 당시 후보를 만났다”고 했다.
고민정 의원은 남편인 시인 조기영 씨와 함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원래 30분 만나기로 했었는데 2시간 정도로 늘었다. 2시간이란 긴 시간 동안 문 대통령은 내 자리에 대한 약속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대목에서 ‘이 사람이랑은 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런 사람에게 내 인생을 한 번쯤 걸어 봐도 후회는 없겠구나. 만의 하나 이 분이 대통령이 되지 않더라도 후회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2시간 동안 참 많이 들었다”며 “대화가 끝나자마자 남편과 난 딱 쳐다보고 ‘갑시다’하며 바로 결정했다.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부대변인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부대변인에게 주어진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고민정 의원은 행사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 행사 진행을 하자 주변에서는 “그래도 부대변인인데 이제 그런 사회는 하지 말아라. 전문 사회자에게 맡기고 넌 부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라”는 비판도 나왔다고 한다.
고 의원은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이 사회를 보면 유창하게는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문재인 정부가 이 정책에 뭘 힘주고 싶은지, 이 일정을 왜 만들었는지 바깥에 있는 사람은 모른다. 대통령은 축사만 하는데 그 축사만 가지고 국민에게 어필하긴 어렵다. 대통령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있고 그렇지 못한 상황이 있다. 나 아니면 못하더라.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난 ‘문재인 정부를 만든 사람으로서 하나라도 더 국민에게 알리는 게 내 소명이다. 내 자리가 빛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이런 걸 내가 맡는 데에 비아냥거리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고민정 의원을 아꼈다고 한다. 고 의원은 “사회를 보고 온 어느 날 문 대통령이 부르더니 ‘어쩜 그렇게 사회를 잘 보십니까?’라고 했다. 그래서 ‘아니요. 그냥 한 겁니다’라고 했더니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이야기를 참 편안하게 국민이 알아듣기 쉽게 참 잘 설명하더이다’라고 칭찬했다”며 “내가 사회를 보는 데에 대해 그런 평가를 한 사람이 유일하게 문 대통령 한 분이었다”고 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홍보가 모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고민정 의원은 “요즘도 소통과 홍보 잘하라는 비판을 많이 듣는다. 부대변인과 대변인일 때도 ‘그분’께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홍보 많이 해라’였다. ‘정책 아무리 잘 만들어도 홍보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홍보가 70%고 정책은 30%’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문 대통령은 홍보의 중요성을 많이 말했다”고 밝혔다.
고민정 의원은 강좌 하루 전인 8월 11일 충북 음성으로 수해복구현장을 다녀왔다. 이런 현장 찾기는 자신이 정치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배웠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를 유일하게 문재인이란 분에게서 배웠다. 늘 그분이 보여줬던 정치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나도 정치인이 되면 저분처럼 현장의 일을 많이 해야지’ 했다. 어제 수해복구현장 방문도 그랬다”고 했다.
강좌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한 수강생이 “왜 일본과 북한에 더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냐”고 묻자 고민정 의원은 일본, 북한과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이야기를 풀어냈다. 수출과 수입 용어를 잘못 사용하긴 했지만 그는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1년이 지나고 돌이켜 보니 실제로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해당 일본 기업이 많이 힘들어졌다. 심지어 그 일본 기업이 한국에 있는 기업이랑 일하려고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일본이 규제로 수출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그걸 기회 삼아 ‘수출’ 통로를 다변화시켰다. 일본에서 수입하던 걸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단골이니까 끊기 어려웠지만 이번 기회에 훨씬 경쟁력 있는 다른 나라랑 길을 뚫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일 갈등에서 승리했다는 소감도 전했다. 고민정 의원은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하는 것도 우리 정부가 지원 많이 해서 성공해 냈다. 소재부품장비 관련 겉으로 보기엔 일본을 격파하고 그런 건 없었지만 이해득실을 따져보면 우리가 훨씬 득을 보는 싸움이었다”며 “외교부가 ‘지소미아는 언제든 종료 가능하다’고 말한 이유는 일본에게 ‘아직 우린 끝나지 않았어’라는 걸 보여주려는 대외적 메시지였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영원한 적일 순 없다. 이웃이다. 일본 국민은 죄가 없다. 우린 아베 정부에 대해서 비판했지 일본에 대해선 비판 안 했다. 우린 명확하게 구분했다 이걸 어떻게 스무스하게 잘 풀어내느냐가 문제다. 산업부분에 있어선 우리가 성공했지만 외교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풀어야 할 게 있다. 강경화 장관이 총대를 메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 안보라인이 바뀌었다. 바뀐 안보실장, 통일부 장관, 국정원장에 대한 기대를 가져줬으면 한다. 누구보다 북한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고 우리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 많이 인지하는 사람이기에 우리 정부는 남북문제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풀 수 있는 건 풀고 나가자’라는 게 강하다”며 “지난해까지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북미 간의 문제가 풀리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때도 사실은 남북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은 건 북한과 미국이 서로 화해를 원했기에 ‘너희도 한 번 둘이 만나서 제대로 화해해라’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우린 북미정상회담 성공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다. 그것만 되면 그 다음에 우리 남북 간의 문제는 일사천리에 될 수 있도록 기반 사업이 다 돼 있어서 기다렸지만 다 부서졌다”고 말했다.
첫 강의가 끝났지만 고민정 의원 유료 강좌는 여전히 논란을 품고 있다. 유료 강의 자체가 사업성을 지니기에 강의료를 송금 받은 고 의원과 비서관의 사업자 등록 여부가 쟁점으로 남았다. 수익사업에는 별도 부가가치세 신고와 법인세 혹은 소득세 신고가 필수다. 대개는 별도의 비영리법인을 만들어서 이와 같은 유료 강좌를 진행한다. 심상정 의원의 심상정마을학교가 이와 같이 진행됐다.
또한 유료로 교습비를 받고 강의가 진행되는 학원 혹은 교습소는 보통 소방시설 완비가 필수다. 고민정 의원의 지역 사무실 1층과 2층 사이에는 소규모 학원이라도 필수적으로 설치하는 비상구 표시등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소화기도 따로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남편이 직접 강사료를 받기에 제 식구 챙기기 논란에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이에 대해 고민정 의원실 관계자는 “부가가치세는 법적으로 지속적인 수업을 할 때 내도록 되어 있다. 이번 강의는 선관위에서 수익을 남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신고할 것이 없다”며 “지속적인 수업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원법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사업자는 이익이 남지 않더라도 매출을 신고토록 돼 있다. 남편의 참여에 대해서는 “살림하는 남편 이야기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강의에서 고 의원이 직접 밝혔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