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청와대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애초 부동산 등 정책에 한정됐던 여권 내부 비판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향했다. 특히 다주택자 참모진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조원 전 민정수석이 마지막까지 ‘뒤끝 퇴직’ 논란을 일으키자, 항명을 넘어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의 둑을 건드렸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차기 대권잠룡들까지 ‘나 여기 있소’를 대외적으로 외치는 순간, 레임덕 경고음은 여권 전체를 덮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41회 집중호우 긴급점검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여당발 BH 공격이 수면 위로 부상한 분기점은 ‘대통령 비서실 참모 6인’의 일괄 사표가 결정적이었다. 앞서 노 실장과 산하 수석비서관 5명은 부동산 대란이 최고조에 다다른 8월 7일 문 대통령에게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부동산 대책에 대한 비판 여론만이 아닌) 종합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했지만, 여권 안팎에선 코로나19 이후 처음 하락세를 기록한 국정 지지도 등 여권 전반의 위기감을 반영한 ‘응급처방’이란 시각이 많았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조사해 8월 13일 발표한 정례조사(10∼12일까지 조사·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결과에 따르면 미래통합당(36.5%)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33.4%)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질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처음이다. 문 대통령 지지도는 43.3%에 그쳤다. ‘리얼미터’의 6월 1주 차(59.1%)와 비교하면, 두 달 만에 15.8%포인트나 빠졌다. 그사이 부정 평가는 16.6%포인트(35.9%→52.5%) 증가했다. 초유의 부동산 정국에서 ‘패닉 바잉(공포에 의한 매수)’을 이끈 30대를 비롯한 젊은층의 이탈이 문 대통령 지지도 하락을 이끌었다.
그러자 여권 인사들의 입은 한층 거칠어졌다. 특히 노 실장의 충북 청주 집 매각 논란 직후 “청와대 참모진이 문제”라는 말이 쏟아졌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참모진들이 코미디를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성 친노(친노무현)’인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마저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이 (집을) 팔라고 해도 팔지 않는 강심장에 놀랐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박근혜 데자뷔’ 논란도 일었다. 문 대통령이 정권에 유리한 부동산 통계만 취사선택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보고를 그대로 인용한다는 게 골자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도 구중궁궐에 휩싸였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정무·민정·시민사회(8월 10일)’, ‘국민소통·시민사회(8월 12일)’ 등 수석급 절반을 교체했지만, 당 내부는 부글부글 끓었다. 이 과정에서 노 실장과 김조원 전 민정수석의 갈등이 돌출 변수로 등장하자, “엉뚱한 데 화풀이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당 한 의원은 “사퇴한 참모진에게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이 있느냐”라고 말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뺀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었다.
김조원 전 민정수석. 사진=박은숙 기자
여권 미래권력 교체 시기와 맞물려 ‘당·청 관계 재정비론’이 급부상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관전 포인트는 향후 당·청 관계를 가를 변곡점이다. 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통령 지지도 추가 하락 여부 △BH vs 국무총리 vs 포스트 이해찬의 관계설정 △당·정·청 협의 및 추가 개각 때 힘의 균형 등 3대 변수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당·청 관계 재정비론의 최대 변곡점은 역시 문 대통령 지지도다. 1차 분기점은 심리적 마지노선(40%) 붕괴의 가속화다. ‘문 대통령 지지도 추가 하락→당·청 엇박자→친문 원심력 강화→여권 내부 갈등’ 등의 악순환이 반복될 경우 문 대통령 구심점은 급속도로 허물어질 것으로 보인다. 야권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 지지도가 ‘조국 사태’ 때보다 더 낮아질 경우 정권 위기감이 증폭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대 여론조사(리얼미터·한국갤럽) 기준 문 대통령의 지지도 최저치는 ‘한국갤럽’의 지난해 10월 셋째 주(10월 15∼17일 조사·18일 공개) 때 기록한 39%였다.
이 경우 ‘차별화 전략’에 나서야 하는 여권 내 차기 대권 잠룡들의 목소리는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여권의 미래권력 교체 시기와 맞물려 정세균 국무총리와 민주당 당권 주자인 이낙연 의원, 다크호스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다면, 여권 내부 분열은 한층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오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여권 권력암투의 둑이 조기에 무너질 수도 있다. 최근 여권 관계자들은 여권 내부 분열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팔라진 ‘참여정부 데자뷔’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문제는 청와대 기조와의 엇박자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일부 참모진 개편을 통해 ‘친정 체제 강화’ 시그널을 당에 명확히 보냈다. ‘노영민 교체’를 결정짓지 못하고 시간 벌기에 나선 것도 청와대 우위의 그립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당·정·청 힘의 균형이 BH에 쏠린 정황은 최근까지 포착됐다. 문 대통령은 7월 30일 신임 국세청장에 김대지 국세청 차장을 내정했다. 당·정 안팎에선 국세청장 인사를 놓고 청와대와 정 총리, 이낙연 의원 측이 물밑에서 기 싸움을 벌였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가 애초 김 신임 청장을 낙점했지만, 정 총리 측과 이 의원 측이 김명준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측면 지원했다는 것이다. 초유의 부동산 정국에서 문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한 만큼, 김대지 청장의 ‘무주택’이 최종 낙점에 한몫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힘의 균형추가 청와대에 쏠려있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는 대통령의 몫”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8월 인적쇄신’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실장급인 4선의 최재성 전 민주당 의원을 신임 정무수석으로 낙점했다. 최 수석은 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문재인의 호위무사’로 불렸다. 최 수석은 노 실장과 함께 청와대 초대 비서실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최 수석이 정무수석에 올라타면서 노 실장의 후임 인선은 한층 복잡한 셈법에 빠졌다. 최 수석을 넘어서는 인물이 마땅치 않아서다. 문 대통령이 친정 체제를 강화한 상황에서 포스트 이해찬 호조차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경우 임기 말까지 “청와대 하청업체냐”라는 비판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의 회동을 위해 7월 30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효원로1가 경기도청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힘의 균형을 가를 마지막 균형추는 ‘형식적 당·정 협의’ 등의 지속 여부다. 앞서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7월 3일 비공개 회의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정책 결정을 한 뒤 요청하는 당·정 협의는 받지 말라”고 당 관계자들에게 지시했다. 당·정 협의 직전 보도자료를 뿌리는 ‘민주당 패싱’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국토위 소속 의원들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 과정에서 “우리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8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수해 대책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는 이 대표가 비공개 전환 이후 공개 석상에서 한국 경제의 선방을 강조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을 향해 “여기서 경제성장률 홍보를 하면 안 되지 않느냐”라고 충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오는 8·29 전당대회 이후 첫 번째 당·정·청 협의가 여권 내부 힘의 균형추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8·29 이후 단행될 개각 등 인적쇄신도 마찬가지다. 당의 새 지도부가 청와대의 회전문식 인사 고리를 끊어낼지도 관심사다. 부동산 대란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청와대 차기 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른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원년 멤버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은 대표적인 교체 대상으로 꼽힌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학교 특임교수는 “(각 부처의) 현안이 산적한 만큼, 대통령의 고민은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인사를 놓고 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예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민주당 한 원로 인사는 “사이다 총리로 불렸던 이낙연 의원의 당 복귀 이후 행보를 보면,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보다 지지도가 낮은 김부겸 전 의원이나 친문계인 박주민 의원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