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의 전설적 타자 루 게릭은 6만 1808명의 관중 앞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다 뜻밖의 비극이 닥쳤다. 수많은 부상을 참아내며 경기에 나선 탓인지, 1937년 후반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타격에 지장을 받곤 했다. 결국 1939년 5월 감독에게 “더 이상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이제 그라운드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6월, 병원 검진에서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병이다. 루 게릭은 물론 양키스 구단과 야구계도 충격에 빠졌다.
그런 루 게릭의 은퇴식이 그해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병마와 싸우는 ‘철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무려 6만 1808명의 관중이 양키스타디움에 들어찼다. 당시 양키스 감독이던 조 매카시와 동료 베이브 루스가 대표로 연설을 했다. 특히 매카시는 “루 게릭은 지금까지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자랑스러운 시민의 모범 사례였다. 어떻게 그가 나에게 ‘더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수 있느냐”며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루 게릭의 마지막 연설도 역사에 남을 만했다. “팬 여러분은 지난 2주 동안 제가 앓고 있는 병에 대해 들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야구장에서 17년이나 뛰었고 팬 여러분들로부터 다정한 격려를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또 자신의 은퇴식에 참석한 동료들을 향해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말을 이어갔다.
“이길 수만 있다면 오른팔을 잘라내도 아깝지 않을 우리 팀 양키스는 물론, 우리의 라이벌인 뉴욕 자이언츠도 선물을 보내줬다. 정말 대단한 일이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트로피(양키스가 그의 등번호와 은퇴 헌정시를 새겨서 제작한 은퇴 선물)와 함께 기억한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당신에게 가족이 있다면 그것도 최고의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고 있지만,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말씀드린다.”
루 게릭은 이날 구단 고위 간부부터 야구장 관리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건넨 수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팔을 마음대로 가눌 힘이 없어 받은 선물을 곧바로 땅에 내려놓아야 했다.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였다. 연설을 끝내고 마이크를 내려놓자마자 휘청거리는 게릭을 향해 6만 관중이 모두 일어나 2분간 박수를 보냈다. 그들이 “우리 모두 당신을 사랑한다”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베이브 루스가 루 게릭을 힘껏 포옹했다.
양키스는 이날 루 게릭의 등번호 4번을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은퇴식이 있던 다음날 뉴욕타임스는 “6만 1808명의 관중이 한 선수에게 작별을 고하는 이 행사는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가슴 찡한 장면을 남겼다”고 썼다. 시즌이 종료된 뒤에는 전미야구기자협회가 최초로 유예기간 없이 루 게릭을 명예의 전당에 입회시켰다. 36세의 루 게릭은 역대 최연소 헌액자가 됐다.
이후 루 게릭에게는 수십억 달러를 제시하는 강연 요청과 행사 참석 섭외가 잇따랐다. 그러나 그는 그 제안을 모두 거절한 채 뉴욕시 가석방위원회 감독관으로 봉사했다. 그리고 2년 뒤인 1941년, 마흔도 채 되지 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그 병은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라는 복잡한 이름 대신 ‘루 게릭 병’으로 불리게 됐다.
양키스타디움에 있는 루 게릭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여기 한 남자가 있었다. 예의 바른 신사였다. 2130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세운 이 위대한 선수는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