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파이낸셜이 중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상품 출시 계획을 알리면서 금융권의 ‘씬파일러’ 확보 전쟁이 시작됐다. 사진은 지난 7월 28일 네이버파이낸셜 기자간담회에서 데이터랩 김유원 박사가 대안신용평가시스템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네이버파이낸셜
#네이버‧은행, 대안신용평가로 씬파일러 확보 속도전
최근 ‘씬파일러’ 전쟁에 불을 지핀 곳은 네이버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 7월 28일 출범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계획을 알렸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네이버파이낸셜이 공개한 중소상공인 대출 서비스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는 판매자들의 67%가 20~30대로 기존 금융권 대출의 문턱이 높아 자금 융통이 어려운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는 “그동안 금융이력이 부족해 사각지대에 머물러야 했던 중소상공인과 씬파일러 등과 같은 금융 소외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서비스로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큰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중소상공인 대출 서비스를 위해 자체적으로 대안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기존 금융권의 신용평가가 매출이나 세금, 매장 크기 등을 기준으로 대출 여부를 판단하는 반면, 네이버파이낸셜은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들의 매출 흐름과 판매자 신용도 등을 실시간으로 대안신용평가 시스템에 적용한다.
기존 금융권은 네이버파이낸셜이 대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것보다 자체 ACSS를 구축한 것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네이버가 내놓은 대출 서비스의 경우 대상이 한정돼 있는 만큼 아직까지 은행권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추후 대출 대상을 확대하고 규모를 늘리는 등 사업을 확장할 텐데, 엄청난 데이터를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네이버가 금융 서비스를 독점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빅테크 업체가 보유한 방대한 데이터와 활용 능력이 향후 금융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이미 씬파일러 데이터 확보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혁신준비법인 등 인터넷전문은행 3사는 지난 6월 신용보증재단중앙회와 비대면 ‘스마트보증’ 도입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스마트보증은 보증심사를 전산화해 대출·보증 수요자들이 은행과 보증기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대출과 보증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인터넷전문은행 3사는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보유한 방대한 규모의 소상공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카카오뱅크 등 변화가 빠른 인터넷전문은행은 데이터 확보에 열을 올리는 중”이라며 “이미 고객군 섹터를 세분화해 기존 시중은행들보다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시중은행들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7월 통신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기기 정보와 요금납부 내역, 소액결제 내역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해 신용등급을 산정하는 ‘우리비상금대출’을 출시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2월 통신사의 비금융정보를 활용한 ‘올원 비상금 대출’과 지난 4월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용평가 모델을 활용한 ‘NH씬파일러 대출’을 선보이도 했다.
하지만 네이버 등 플랫폼 파워가 강력한 빅테크에 비해 비금융정보 확보 측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은행은 통신사, 카드사 등과의 협업을 통해 속도를 내고 있다. ICT기업과의 협업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하나은행과 SK텔레콤이 합작해 출범한 핀테크 업체인 핀크다. 핀크의 ‘T스코어’는 통신요금 납부 이력을 비롯해 가입 기간과 소액결제 정보 등을 활용한 대표적인 대안신용평가 모델로 평가받는다. 하나은행은 지난 4월에는 배달의민족과 제휴를 맺고 대안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에 등록된 소상공인의 매출액과 영업기간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한다.
은행들이 자체적인 대안신용평가 모델 개발에 집중하는 까닭은 신규 고객 유치와 대출 고객층 확대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기존 신용등급 기준보다 은행들이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 모델을 활용해 고객의 신용등급을 세분화하면 더 다양한 금융상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신용평가에 보수적인 은행의 특성상 대안신용평가의 적극적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신용평가업계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성과평가제도(KPI) 때문에 실무자들이 씬파일러를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정부가 긴급 금융지원을 실시할 때에도 은행에서 대출을 보수적으로 해 금융당국이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라고 전했다.
#CB사업 확대하는 통신사‧카드사
지난 8월 5일 시행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대안신용평가 활성화의 기반이 될 전망이다. 개정안에는 현행 신용조회업을 개인 CB(신용평가회사‧Credit Bureau)와 개인사업자 CB, 기업 CB 등으로 세분화하고 규제를 차등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더불어 비금융정보만을 활용해 개인 신용을 평가하는 ‘비금융정보 전문 신용평가회사’를 도입하고 해당 사업자 등록에 대한 진입 규제를 완화했다. 비금융 전문 CB의 경우 최소 자본금 요건은 5억 원이며, 금융회사 출자요건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카드사와 통신 3사는 신용평가업 진출을 준비 중이다. 통신업계에서는 통신 3사가 연내 비금융정보 전문 CB사를 설립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통신 3사의 경우 통신사가 보유한 가입자들의 비금융정보를 활용해 신용정보를 제공하는 통신특화 CB를 설립할 수 있다. 통신특화 CB의 경우 2018년 정부에 의해 추진됐으나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탓에 한 차례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금융당국은 통신 3사에 공동 출자를 통한 CB 설립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업계에서 신용평가업 진출이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통신사는 KT다. 케이뱅크와 KT가 각자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해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통신 3사는 “아직 CB 진출 관련 계획은 별도로 없다”는 입장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이전에 3사가 함께 CB사를 설립하는 내용의 논의가 있었던 것은 맞다”며 “당시 데이터 확보 차원에서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희망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업계 다른 관계자는 “CB업 관련 논의는 예전부터 있었다”며 “현재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회사 설립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카드사들 또한 축적된 고객 정보를 활용한 CB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4월 6개 사업 계획안이 금융위원회의 1차 혁신금융서비스 사업으로 선정된 데 따라 지난해 10월 개인사업자 CB 서비스 ‘마이크레딧’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비씨카드는 지난 6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CB 서비스 ‘비즈 크레딧’을, KB국민카드는 지난 8월 6일 개인사업자 CB 서비스 ‘크레딧 트리’를 내놨다.
카드사 한 관계자는 “카드사가 대출 사업을 영위하다 보니 금리 산정 등에 신용평가가 중요하다. 외부 CB사에만 의존할 수 없는 데다가 카드 결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사업자 매출 등의 정보로 신용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서비스를 운영하면 개인의 동의를 받아 금융정보를 통합 관리해 주는 사업 ‘마이데이터’ 사업자 선정에도 능력이 있음을 알릴 수 있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