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아버지의 화려한 커리어를 뛰어 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KBO리그를 대표하는 2세 선수들 중 이정후를 보면 도루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아버지 이종범을 능가하는 지표를 보여준다. 여기에 또 한 명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프로야구사의 가장 유명한 ‘2인자’로 홈런왕에 올랐다. ‘1인자’였던 이승엽의 그늘에 가렸지만 시원시원한 장타로 300홈런과 홈런왕에 오르며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이름을 알렸다. 바로 ‘헤라클레스’란 별명을 달고 뛰었던 심정수(45)와 그의 큰아들 심종원(23) 이야기다.
이종범-이정후에 이은 또 다른 야구인 부자의 탄생일까. ‘헤라클레스’ 심정수(왼쪽)의 아들 심종원이 KBO 입성을 노리고 있다. 사진=이영미 기자
“미국 와서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 막내아들(에릭)이 태어났고, 그 시점에 내가 대학에 입학했다. 젊은 한국 학생들이랑 함께 수업을 받았는데 과제도 많고 30~40명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등 쉽지 않은 대학 생활을 보냈다. 당시 머리가 터질 정도의 벅찬 생활의 연속이었다.
1994년 OB(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심정수는 데뷔 2년차부터 거포 본색을 드러냈다. 이후 현대로 트레이드되면서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2003년 이승엽과 ‘홈런왕’ 대결을 벌이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FA 자격을 얻어 삼성과 역대 최고액인 4년 60억 원에 계약을 맺었지만 2008년 깜짝 은퇴 발표로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프로 통산 15시즌 동안 타율 0.287 328홈런 1029타점을 기록한 심정수는 2002년, 2003년 40홈런 이상을 기록했고, 2003년 개인 최다인 53호 홈런을, 2007년에는 홈런 31개로 홈런왕에 등극했다.
그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심정수는 2005년부터 양 어깨와 양 무릎 등 5차례의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무릎보다 라섹수술의 후유증으로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안경을 쓰고 야구하는 게 불편한 상태에서 안과 의사를 소개받고 라섹수술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내게 라섹수술 후 시력이 잘 나오고 공도 잘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장점만 언급했다. 수술 후 야간에 빛 번짐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아 후유증으로 꽤 고생을 많이 했다. 야간 경기 때 동공이 확장되지 않도록 안약을 넣곤 했는데 그 안약으로 두통이 생기고 어지럼증이 심해져 야구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은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 시절 영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마침내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나갔지만 아이들 뒷바라지 문제로 대학 생활을 포기하고 ‘야구 대디’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큰아들 종원이는 어린 시절 내 손을 잡고 야구장에 자주 드나들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는 같이 라커룸에 들어가 선수들을 만나기도 했다. 종원이한테는 그 기억들이 추억이 돼 미국에서 야구하면서도 한국 야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라난 모양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종원이가 한국에서 야구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내 아들이 아빠가 뛴 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는 점은 무척 자랑스러웠다.”
심정수는 야구선수의 길을 택한 아들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미국에서의 대학 생활을 포기했다. 사진=심정수 제공
결국 심종원은 애리조나 크리스천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지난 7월 한국에 들어와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개인 훈련에 돌입했다. 오는 9월 7일 KBO리그 해외 선수 트라이아웃 참가를 위해서다.
그런 아들을 보는 아버지 심정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종원이는 한국에서 아빠가 했던 야구, 리틀야구팀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미국까지 가져왔고, 한국 야구를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며 꿈을 키웠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부담 갖지 말고 재미있게 야구했으면 좋겠다. 유니폼 입고 있는 걸 감사히 여기고, 야구장의 잔디나 흙을 밟고 있는 것에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면 즐거움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내가 15년을 뛰었던 KBO리그 무대에 아들이 도전장을 내민 부분은 나한테 큰 의미를 안겨준다. 한국 야구로 아버지와 아들이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인천 고모 집을 임시 거주지로 정한 심종원은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 한국에서 홀로서기에 나섰다. 한국에서 야구하려면 KBO리그 해외 출신 트라이아웃을 통해 프로팀의 지명을 받아야 한다. 아버지보다는 체형이 작은 편이지만 호쾌한 스윙과 빠른 발로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는 그는 대학 생활 내내 유튜브를 통해 KBO리그를 챙겨봤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여러 구장으로 야구하러 다니면서도 미국 야구보다는 한국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왜 미국이 아닌 한국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어린 시절 한국 야구장에 다녔던 추억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KBO리그만의 배트 플립도 멋있어 보였고, 팬과 응원 문화도 흥미로웠다. 한번은 아버지가 내게 미국에서 자란 아이가 어떻게 나보다 한국 선수들을 더 잘 아느냐며 신기해하실 정도였다.”
우투좌타인 심종원은 180cm 78kg의 체형이다. 주포지션은 우익수이며 외야의 모든 곳에서 수비가 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미국 대학리그가 중단된 가운데 심종원은 최근 두 시즌 동안 84경기에 출전 9홈런 74타점 18도루, 타율 0.324 출루율 0.409 장타율 0.507을 기록했다. 특히 84경기에서 74타점을 뽑아냈을 만큼 집중력이 좋고 찬스에 강하다.
심정수는 선수 시절 달걀 흰자, 우유, 닭가슴살 등을 섭취하며 근육을 만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안았다. 심종원은 아버지의 달걀 스토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선수 생활할 때 매일 달걀 한 판씩 드셨다고 해서 나도 아버지 따라 달걀 한 판에 도전해봤는데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하루 15개 이상은 무리였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조언대로 달걀과 닭가슴살을 갈아 주스처럼 마시는 걸로 체력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심종원은 때로는 ‘심정수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훌륭한 선수이셨기 때문에 그걸 이겨내려고 더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옛날에는 아버지가 야구하셨지만 지금은 내가 야구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심정수의 아들이 아닌 내 이름으로 인정받는 선수가 될 것이다. 이정후 선수처럼 말이다.”
심종원의 활약이 더 기대되는 건 미국에서 심정수로부터 직접적인 트레이닝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정수는 학업을 중시하는 미국 야구의 특성상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밖에 훈련하지 않는 두 아들(둘째 아들 심종현은 미국 아마추어 야구 랭킹 48위에 올랐을 만큼 유망주로 손꼽힌다)을 위해 따로 트레이닝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아이들과 매일 야구장에서 캐치볼하고 타격 연습을 도우면서 훈련량을 늘렸다. 한마디로 개인 레슨이나 마찬가지였다. 종원이의 타격폼은 언뜻 LA 다저스 코디 벨린저를 떠올리게 하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만들어진 폼이다. 만약 종원이가 KBO리그 팀의 지명을 받는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열정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KBO리그 팀들도 심종원의 등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구단 관계자의 시각과 심종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의 합을 이룰지 모르겠지만 한 야구 관계자는 “다른 이도 아닌 심정수 아들이고 미국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라면 당연히 지명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펼쳤다. 과연 심정수의 아들 심종원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KBO리그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