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랜드 개장 이래 최고의 ‘잭팟’이 터졌다. 위 사진은 7억 6680만 원을 받게 된 행운의 주인공 안승필 씨. 그는 이 상금을 모두 카이스트에 기부해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
안 씨는 직원 5~6명을 거느린 소규모 면직물 사업자로 IMF 이후 40억 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기부는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처럼 외부에서는 안 씨의 일화를 훈훈한 소식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강원랜드 인근에서는 ‘그동안 이 당첨금이 쌓이기까지 벌어졌던 어두운 일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안 씨에게 당첨금 7억 6680만 원을 안겨준 이 슬롯머신을 두고 벌어졌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들여다 봤다.
‘7억 6680만 원.’
안 씨가 이번 ‘잭팟’으로 타게 될 금액이다. 이 금액이 쌓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9년 11월 7일 누적금액 3억 8100만여 원의 잭팟이 터진 후로 누적금액은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하루 평균 150만 원의 금액이 쌓여 두 달 후 3억 원을 넘겼고, 지난 4월 초에는 급기야 누적금액이 7억 원을 넘어섰다.
당시 강원랜드 측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슬롯머신 최대 누적금액은 2008년 5월에 터진 5억 8995만5799원인데 이번 경우는 7억 원을 넘겼다”며 “당첨금이 개장 이후 최고 액수를 기록하면서 과연 언제, 누가 행운의 주인공이 될지 고객들은 물론 직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홍보했다.
누적금액이 7억 원을 넘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강원랜드 슈퍼메가 슬롯머신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역대 최고의 행운을 차지하려는 속셈에서다. 강원랜드에 따르면 2009년 11월의 잭팟을 전후해선 하루 평균 누적금액이 150만 원 정도였지만 그 이후 300만 원 이상으로 늘어나더니 지난달 말부터는 400만 원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누적금액이 7억 원을 넘어서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음을 알 수 있다.
6개월의 침묵을 깨고 슬롯머신 전광판에 당첨을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온 것은 5월 15일 오전 11시 50분께였다. 서울에서 온 안승필 씨는 게임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누적금액을 시작액수인 1억 원으로 되돌려 놨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강원랜드를 13번 방문해 슬롯머신 게임만을 했다”며 “꿈을 꾸는 기분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안 씨가 대박을 터뜨린 슬롯머신은 강원랜드는 물론이고 대형 카지노에서는 핵심이라 불릴 수 있는 ‘효자’ 아이템이다. 이 게임은 게임 방식이 돈을 넣고 레버(요즘은 버튼식)만 당기면 될 만큼 단순해 초보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포커게임처럼 카드 5장을 기본으로 패를 바꾸면서 11을 뜻하는 잭이 2장 있는 ‘잭 원 페어’ 이상 좋은 패가 없으면 베팅을 할 수 없다. 아무도 베팅을 안 하면 ‘판돈(pot)’이 불어난다.
대중성이 장점인 반면 그만큼 중독성이 강한 게임이기도 하다. 실명을 밝히기를 꺼려한 강원랜드 내부 관계자 A 씨는 슬롯머신 때문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 털어놨다. A 씨는 5월 1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2006년부터 강원랜드 공사를 하며 함께 일한 인부들 대부분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을 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도박꾼’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광판의 누적금액이 늘어날 때마다 안타까운 사연들도 하나 둘 늘어났다”며 관광차 놀러왔다가 2억 원을 빚진 시골 노인 얘기를 들려줬다. “그 노인은 재미삼아 5000원으로 슬롯머신 게임을 했다가 그 맛을 못 잊어서 사채까지 끌어다 썼고 결국 2억 원을 빚지고 돌아갔다. 사채업자들이 돈을 받으러 그 노인의 집을 찾아갔지만 가난한 농사꾼이다보니 가져갈 것이 없었다. 결국 사채업자들은 아버지 대신 빚을 갚으라며 딸을 데려갔다고 한다.”
A 씨의 소개로 통화하게 된 강원랜드 공사장 관리자 B 씨 역시 “강원랜드에서 함께 일했던 일용직 사람들 95%가 노름에 빠진 사람들”이라며 “그들은 일당 7만 원을 받는데 슬롯머신으로 그 돈을 잃고 다음날 또 일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B 씨는 자살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지만 조용히 덮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재작년 언론을 통해 보도된 공군대위의 자살 사건 역시 슬롯머신 게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생전에 ‘전투기를 타고 와 강원랜드를 박살 내겠다’며 여기저기 협박을 하다 결국에는 공사장 포클레인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관할 경찰서에서는 “강원랜드에서는 연평균 16건 정도의 사망 사건이 일어나지만 대부분 게임중독으로 인한 과로사다. 자살에 관한 얘기나 기타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악성 루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편 역대 최고 금액의 당첨자가 된 안 씨는 기부대상자인 KAIST와도 강원랜드 관계자를 통해서만 접촉할 정도로 개인 신상이 알려지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잭팟’의 주인공 확률 19만 6360분의 1
그동안 안승필 씨처럼 강원랜드 카지노 슬롯머신에서 1억 원 이상의 ‘잭팟’을 터뜨린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지난 5월 18일 기자와 통화한 강원랜드 내부관계자는 “연도별로 2004년 8명(11억7000만여 원), 2005년 12명(18억여 원), 2006년 10명(14억여 원), 2007년 16명(30억여 원), 2008년 8명(22억 1000만여 원), 지난해 1명 등 모두 57명”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강원랜드에서 ‘잭팟’ 행운의 주인공이 될 확률은 얼마일까. 2004년부터 2009년까지 강원랜드 입장객 1119만여 명을 당첨자 수로 나눠보니 그 확률은 19만 6360분의 1로 나왔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