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법조타운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우태윤 기자
#개업이냐 로펌이냐
고위 간부 인사가 단행된 후 문찬석 검사장(사법연수원 24기)이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전성원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사법연수원 27기), 김남우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사법연수원 28기) 등이 잇따라 검찰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이미 사의를 표명한 양부남 부산고검장, 조상준 서울고검 차장검사 등 검사장들과 사직을 검토 중인 이들까지 포함하면 이번 인사로 검찰을 떠나는 간부급 검사 규모는 대략 25명 내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얼어붙어 있는 변호사업계 상황 때문에 걱정이 많다. 이를 우려해 ‘로펌행’을 고민하는 검사들이 대다수지만, 개업을 검토하는 이들은 자문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분주하다. 검찰 발 기업 수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고,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으로 검찰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먹고 살기 위한 변화’가 만들어 낸 트렌드다.
보통 기업들이 ‘법률 자문’을 계약하면 지불하는 금액은 월 100만 원 안팎이다. 정해진 이슈가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필요한 때마다 법적인 부분에 대해 자문을 해 주는 방식이다. 작게는 기업 조직원 관련 문제부터 기업 간 계약까지 정해진 범위 없이 모든 사안에 대해서 ‘법률적 검토’를 해줘야 한다.
과거에는 크게 인기가 없던 영역이기도 했다. 검사장 출신 기준, 통상 한 사건당 수천만 원은 당연하게 계약이 이뤄졌던 터라 자문으로 인한 수입은 오히려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특히 자문이라는 ‘관계’에서 오는 잦은 연락과 상담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친분이 있는 기업들이 아니면 해주지 않을 정도였다.
법조계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은 한 법조인은 “밤늦게나 아침 일찍, 혹은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자문 전화를 받는 것에 대해 금전적인 대가가 적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다”며 “전화 한 통화에 수천만 원도 버는 검사장 출신들이 뭐가 아쉬워서 자문을 생각했겠느냐”고 설명했다.
#대형 사건 줄어들자…
하지만 검찰 수사 대상 기업들이 크게 줄어들고, 경쟁이 치열하면서 ‘자문’으로라도 사무실 운영비용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옷을 벗고 나온 뒤 변호사협회에서 승인을 내 주는 동안 가장 열심히 한 게 자문을 확보하려고 돌아다닌 것”이라며 “자문을 많이 확보해 놓으면 사건 수임을 못해도 사무실 운영비는 안정적으로 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현재 대형 로펌 파트너지만 개업을 고민하는 한 변호사는 “자유롭게 내 사건만 집중적으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사무실을 직접 운영하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주변에 자문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예전 같으면 기업 자문에 대해서 ‘부수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기업 자문을 ‘관계 시작’으로 보고 상당히 공을 들여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당장의 수익보다 미래 이슈가 발생했을 때까지 감안한 ‘영업 차원 마케팅’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사직을 검토 중인 한 검사는 로펌행과 변호사 사무소 개업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그는 먼저 나간 선·후배들이 하나같이 “시장이 어렵다”고 하는 통에 개업보다는 로펌행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 자문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도움을 구하고 있다”며 “10여 곳의 기업 자문만 확보하더라도 사무실 운영비용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업 자문이 구해지면 개업을 하고, 그게 안 되면 로펌으로 가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귀띔했다.
#미래 고객 확보 ‘올인’
대형 로펌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미래 고객 확보 측면에서 더 적극적이다. 최근 대형 로펌들이 기존 커머스 사업 외에도 콘텐츠 유통·부동산개발업 등으로 사세를 키우고 있는 쿠팡을 놓고 경쟁을 펼쳤다고 한다. 대형 로펌들이 실사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쿠팡에 한시적으로 상근했는데, 쿠팡의 사업 확장성을 높게 산 로펌들이 소속 변호사들을 대거 파견하면서 자문 경쟁이 붙은 것이다. 향후 이슈가 불거졌을 경우를 대비한 영업 차원의 자문 경쟁인데 쿠팡 입장에서는 대형 로펌 서비스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에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을 때는 가상화폐 거래소들을 놓고 대형 로펌들 간 치열한 ‘자문 구애’가 펼쳐지기도 했다. 한창 정부 차원의 거래 규제 가능성이 제기되던 2018년 초에는 한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대형 로펌들이 줄지어 해당 거래소를 상대로 ‘자문’ 관련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것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로펌들은 모두 와서 PPT를 띄워놓고 ‘왜 우리와 자문을 해야 하는지’ ‘자문을 할 경우 가능한 서비스’ 등을 제시했는데 당시 오고간 자문 계약 금액은 인건비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당시 자문 경쟁 관련 내용을 잘 아는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전에는 기업 자문에 대해 ‘부수적 영역’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관계 시작’으로 보고 상당히 공을 들여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당장의 수익보다는 미래 이슈가 발생했을 때까지 감안한 ‘마케팅’으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덧붙여 “최근에는 처음 사건을 맡기는 기업들에 수임료 할인을 해주기도 한다. 치열한 법률 경쟁 시장 속에서 ‘장기 고객’ 확보를 위한 로펌들의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자문 등을 통해 신뢰가 쌓인 변호사·로펌들에게 사건을 맡기려 하지 않겠느냐”며 “나 역시도 자문을 줄 수 있는 기업 대표들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미팅 자리를 계속 시도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