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금융지주 은행 본점 전경. 사진=일요신문DB·연합뉴스
오는 9월부터 국내 주요 금융그룹 수장들의 물갈이가 시작될 전망이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을 비롯해 갑작스럽게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난 씨티은행장의 임기 만료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동걸 산은 회장을 시작으로 10월 이동빈 Sh수협은행장, 박진회 씨티은행장, 11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허인 KB국민은행장, 12월 진옥동 신한은행장, 김태오 DGB대구은행장 등 올해에만 7명의 임기가 끝난다.
내년 1월에는 박종복 SC제일은행장,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의 임기가 끝난다. 주총시즌인 3월에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지성규 하나은행장, 권광석 우리은행장 등 9명의 임기가 동시에 만료된다. 이 중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은 대구은행장을 겸하고 있는데 각각 임기가 올해와 내년 초에 끝난다.
#KB 윤종규 3연임 가능성 유력
이들 가운데 가장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KB금융지주다. KB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오는 11월 20일 임기가 끝나는 윤종규 회장의 후임 인선 절차에 들어갔다. 회추위는 오는 28일 회장 후보자 4명을 선정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뒤 9월 25일 차기 회장 후보를 주주총회에 추천한다.
내부 후보자군에는 윤종규 회장과 허인 KB국민은행장,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윤 회장의 3연임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금융권의 사모펀드 사태에서 KB금융만이 살아남은 데다, 꾸준한 경영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윤종규 회장은 2014년 11월 KB금융그룹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으로 취임했다. 이른바 ‘KB금융 사태’로 어수선해진 분위기에서 KB금융 수장에 오른 그는 2017년 연임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6년째 KB금융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윤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게 되면 9년간 KB금융을 이끄는 셈이 된다.
금융권에는 이미 9년째 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맡고 있는 인물이 있다. 지난 2012년 하나금융그룹 회장에 전격 취임한 뒤 내리 3연임을 이어가고 있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회장 취임 이후 하나금융그룹의 성장과 하나은행, 외환은행의 합병 등을 성사시키며 2018년 3연임에 성공해 2021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2021년까지 임기를 마치면 회장만 9년, 은행장까지 합치면 13년을 CEO로 근무하게 된다.
다른 금융그룹에서도 회장 연임은 대세가 되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2017년부터 우리은행장 맡았다가 2018년 우리금융그룹 회장을 겸임했다. 현재 손 회장은 회장직은 유지를 하고 있는 반면 우리은행장은 올해부터 권광석 행장이 맡고 있다. 손 회장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관련 금융감독원의 문책경고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연임을 확정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도 신한은행장에서 2017년 신한금융그룹 회장에 취임했고 역시 올해 3월 연임이 확정된 상태다. 2023년까지 임기를 모두 채우면 은행장, 회장으로 약 8년을 근무하게 된다.
#이동걸 산은 회장도 연임에 무게
민간금융그룹의 회장 연임 바람은 공공 금융기업으로까지 확산 중이다. 9월 10일 임기가 만료되는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11일부터 3년 임기의 산업은행 회장직을 수행해 왔다. 당초 후임 인사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임기 말인 현재 이 회장의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사가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은 이동걸 회장의 연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 두산중공업, 아시아나항공, 기간산업지원기금 등 이 회장 체제에서 진행해 온 현안이 산적한 만큼, 연임을 통해 업무 연속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산은 설립 이래 연임에 성공한 사례는 3명뿐이다. NH농협금융그룹 역시 2018년 4월 취임한 김광수 회장이 올해 4월, 1년 임기의 연임을 확정했다.
금융권에서는 지주 회장의 재임기간이 길어지면서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무려 18년간 장기집권했던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 시절 파벌 다툼이 결국 ‘신한 사태’로 이어졌고, 15년간 하나금융을 이끌었던 김승유 회장 주변에서 각종 비리 혐의가 불거진 점 등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회장에 비해 계열사 CEO들의 임기가 상대적으로 짧다는 점이 눈치보기와 줄서기, 파벌 문화 등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지주의 핵심인 은행장을 비롯해 계열사 수장들의 경우, 임기가 대부분 2년이다. 과거에는 통상 3년의 임기를 보장받았지만 최근 들어 모두 임기가 ‘2+1’ 구조로 바뀌었다.
처음 2년 동안 ‘잘하면’ 1년 더 기회를 주는 구조다. 금융권은 “문제는 ‘잘하는지’를 누가 판단하느냐는 부분 아니겠느냐”라고 입을 모은다. 더구나 연임에 성공해도 추가 임기가 1년에 그친다는 점에서 결국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장이나 계열사 CEO로 일한 뒤 2~3년 후에 금융지주 회장에 도전하는 그림이라면 회사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비전이나 밑그림을 그리겠지만, 어차피 회장은 정해져 있는 구조이다 보니 임기동안 자리를 지킬 생각에만 몰두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CEO들의 경우 회장한테 잘 보이면 3년, 밉보이면 중도하차하는 구조”라면서 “이제 금융지주 회장은 오너 아닌 오너라고 보면 된다“고 토로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