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TV 유튜브에서 해설하는 송규상 4단. 넘치는 끼와 재능을 발휘해 서너 번 방송 만에 입소문을 탔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지금 해설 퀄리티가 어떤가요? 댓글로 질문 남겨주시면 강동원 느낌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혹시 배우 강동원 아시나요? 제가 잘 생겼다기보단 좀 사랑스러운 이미지죠. 제 별명으로 송동원이 어떨까요?”
다소 거부감이 드는 느끼한 멘트들도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말이 빨라져도 전달에 무리가 없다. 어릴 때부터 랩으로 단련한 딕션이 아주 좋다. 쉴 새 없는 입담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스타 해설자 탄생을 직감했다. 아직 젊고 약간 미숙한 점은 있지만 넘치는 끼, 타고난 재능은 숨길 수가 없다. 서너 번 방송 만으로 이미 입소문을 탔다. 자칭 ‘해설의 신’이란다. 신까지 아직 멀었더라도 최소한 ‘해설계의 커제’ 정도는 된다.
프로기사 송규상 4단은 8월 기준 한국 랭킹은 54위다. 아마추어 시절엔 일요신문배 고등최강부에서 준우승한 기록이 있다. 입단 후 최단기간(14일) 본선 진출로 화제를 모았고, 2018 퓨처스리그에서 다승왕, 우수상을 받은 게 주요 이력이다. 작년 바둑리그 5지명으로 뛰었지만, 성적에서 각인된 선수는 아니다. 그의 명함은 독특하다. 얼굴 캐리커처와 밑엔 ‘웃음을 주는 바둑人’이라는 문구가 있다.
“바둑을 져도 크게 아픔을 느끼진 않아요. 열심히 뒀는데 지는 건 어쩔 수 없죠. 어차피 한 명은 이기고, 한 명은 지는 거니까. 내용만 괜찮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독한 면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프로기사로 바둑기술적인 재능은 있는 거 같은데 승부기질이 조금 둔한 편이에요.”
이런저런 외부 환경이 송규상을 방송 해설자로 이끌었다. 큰 주목을 받진 못했더라도 아직 승부의 최전선에 있는 기사다. 맥을 짚는 해설 실력은 누구보다 날카롭다. 원래 돌이 붙는 접근전에 강한 기풍이다. 빠르고 깊은 수읽기를 주 무기로 삼는다. 올해 23세에 불과하지만 이미 ‘수를 읽다’란 바둑 사활집까지 낸 저자다.
2016년 이민배 본선. 당시 세계 일인자로 군림했던 커제와 대결했던 송규상 초단(오른쪽).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입단하면 성적과 타이틀, 돈 등 여러 가지 목표가 새로 생기죠. 전 그런 것보다 상대를 재미있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누구를 만나도 선한 영향력과 웃음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2016년 1월, 제135회 연구생 입단대회에서 프로가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장수영 도장에서 무려 9년을 수련했다. 어렵게 프로가 되었지만, 입단 후에 최우선에 둔 가치는 ‘인간관계’라고 말한다. 상대를 재미있게 해주는 연습(?)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바둑수련 못지않게 했다고 한다.
개성 넘치는 Z세대 기사다. 에피소드 하나. 초단 시절 송규상은 이민배 본선에서 중국랭킹 1위 커제와 만났다. “손에 반짝이던 반지가 아직도 기억나네요. 커제는 한 수 두곤 바로 일어서서 다른 판만 구경하더군요. 너무 자주 그러니 조금 열 받아서 저도 커제가 생각할 때 일어서서 대국장을 돌아다녔습니다. 형세가 불리했는데 그냥 앉아서 지는 거보단 나아 보여서…. 뭔가 도발하고 싶었어요. 커제 입장에선 가소로웠겠죠”라며 웃는다.
여자바둑리그 하이라이트 해설 장면. 사진=바둑TV 유튜브
한 달 전부턴 일주일에 한 번씩 여자바둑리그 하이라이트 방송을 한다. “전 라이브 생중계가 더 재미있었어요. 바로 피드백이 오니 저도 신이 나죠.” 송규상이 진행한 LIVE 방송을 보고 매력에 푹 빠졌다는 한종진 9단은 “귀에 쏙쏙 박혔다. 이런 라이브 방송은 예전엔 본 적이 없다. 앞으로 바둑계를 밝힐 인재다.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 달라”고 극찬했다. 1998년생, 23세. 사회라면 대학교 졸업반 나이다. 앞으로 바둑기사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이 많을 시점이다.
“프로기사는 제 직업이죠. 소소회와 홍대연구실 등 여러 곳에서 바둑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어요. 방송은 예전부터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꿈도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음악도 계속해야 하고…. 아직 뭘 해도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있어요. 그래도 그 무엇보다 바둑 두는 게 재미있어요.”
“바둑계에 없어선 안 될 소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2018년 12월 14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8 KB국민은행 바둑리그 폐막식에서 퓨처스리그 우수상과 다승상(공동)을 거머쥔 송규상 선수가 말한 소감이다. 바둑방송과 해설은 도전 목록 중 하나일 뿐이다. “전 PC방에 가도 바둑만 둬요. 어떤 게임보다 바둑이 재미있어요. 바둑이 가진 매력과 재미를 시청자에게 잘 전달하며 공유하고 싶습니다.”
입단 5년 차 프로기사에게 바둑이 뭐가 그렇게 재미날까. 송규상은 “프로가 돼도 나보다 더 고수가 있어요. 이기기 어려운 강자들과 둘 수 있는 즐거움이 크죠. 둘 때마다 이기기만 하는 신진서 9단은 무슨 재미로 바둑을 둘까요?”라고 되묻는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