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연구원(2003)의 자료에 의하면 1990년대 초 중반엔 상용(정규직)근로자가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를 합한 수보다 월등히 많았지만 1998년부터 상용근로자가 대폭 감소하면서 1999년부터는 임시 및 일용근무자가 전체 임금근로자의 51.6%를 넘어서게 됐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 근로시간, 복지, 안전 등에서 차별받는다. 고용노동부 고용 형태별 근로실태조사(2019)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해 시간당 임금총액에서 69.7%밖에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도 임금총액을 총 실근로시간으로 나눈 수치에 불과하고 실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훨씬 심각하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는다. 게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고용불안에 처해 있다. 제공되는 복지 혜택도 없거나 정규직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파견근무를 하는 비정규직의 경우는 원청회사가 지급한 노무비의 많게는 40~50%까지 파견회사가 떼어가는 일도 있다. 이 차액이 정규직과의 거리다. 최근에는 정규직을 대신해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며 ‘위험의 외주화’에도 활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규직은 소중한 우리 직원, 비정규직은 소모품”이라는 자조 섞인 비아냥까지 나온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생산성이 더 높아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사실상 비정규직은 고용 형태의 차이가 아닌 신분의 차이다. 노동자들끼리 계급을 나눠 서로 차별하게 하는 악습이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회사가 제공하는 출퇴근 버스를 탈 수 없으며, 아파도 사내 의무실을 이용할 수 없다. 비정규직 제도는 경영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는 21세기의 또 다른 신분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논란에서도 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정규직 전환을 찬성하는 쪽은 당연히 정규직이었어야 하는 업무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하는 이들은 정규직 전환으로 공사의 신규 채용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반대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큰 틀에선 결국 정규직 일자리 풀에 대한 걱정으로 읽힌다. 어느 쪽의 주장이 타당한지를 떠나 이번 사건은 이미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반드시 정규직이 돼야 한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기피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임금이다. 소득이 미래를 결정하는 세상에서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은 주거, 결혼, 출산, 노후까지 위협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부작용이 터져 나오는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저임금 문제는 이 같은 사회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고용도 불안한데 돈까지 적게 받는 이 악순환은 사회 분열과 안정을 흔드는 요소로 작용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따라서 고용 불안정에 대한 보상으로 임금을 올려주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에 비해 실직 위험이 높은 비정규직에게 수당으로라도 삶의 균형을 맞추고 사회적 불평등을 바로잡자는 취지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불안정 고용에 대한 보상의 의미로 계약종료수당(indemnité de fin de contrat)을 도입해 비정규직의 낮은 임금을 보전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의 고용 종료 시 총임금의 10%에 상응하는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스페인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를 일정 기간 사용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거나 기간 연장을 하지 않을 경우 근로계약 종료 수당(총 임금의 5%)을 퇴직수당으로 준다. 호주는 비정규직(1년에 4주 유급휴가와 유급병가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업종에 따라 정규직의 15~30%의 추가 임금(casual loading)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고용 불안에 대한 보상의 개념을 담고 있다.
노동존중 협약식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지사 (사진=경기도 제공)
경기도는 당장 내년부터 경기도 소속 및 공공기관에서 직접 고용 중인 기간제 노동자 2094명을 대상으로 고용 불안정 보상수당을 도입한다. 특히 근무 기간이 짧을수록 고용 불안정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 더 많은 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일요신문이 경기도 노동정책과에 요청해 받은 ‘경기도 비정규직 고용불안정성 보상 차등 지급 설계안’에 따르면 근무 기간이 2개월 이하인 비정규직의 경우 1인당 33만 7000원(1안)부터 67만 3000원(5안)까지 고용불안에 대한 보상 수당을 지급하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은 경쟁에서 진 사람들이니 당연히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야 한다는 통념이 만연해 있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승리 지상주의가 10대, 20대 청년사이에도 넓게 퍼진 지 오래다. 그래서 고용 불안정 보상수당이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30년간 퇴적된 비정규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약자에게 더 가혹했던 노동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첫발을 뗐다는 점에서 기대가 모인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