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건아는 귀화 이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각종 국제대회를 누볐다. 사진=연합뉴스
대표팀에서 라건아는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월드컵 본선뿐 아니라 예선 과정에서도 아시아 정상급 활약을 선보였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동메달 획득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처럼 단기간에 국가대표팀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를 잡은 라건아지만 국내 리그에선 여전히 주변인이다. 때때로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취급을 받고 있다. 최근 KBL이 기획한 이벤트전인 ‘서머매치’에 나서지 못한 라건아를 두고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2019-2020시즌 KBL은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리그를 조기에 종료했다. 정해진 경기 수를 채우지 못했을 뿐 아니라 플레이오프는 단 1경기도 치르지 못했다. 이에 KBL은 구단들의 전력 점검과 팬서비스 차원에서 ‘서머매치’를 기획했다. 지난 시즌 종료된 시점 1~4위였던 원주 DB, 서울 SK, 안양 KGC 인삼공사, 전주 KCC 4팀이 참가해 토너먼트 방식으로 대회를 치른다. 지난 시즌 일찌감치 시즌이 종료돼 아쉬운 팬들의 마음을 달랠 예정이다. 2월 중순 이후 6개월이 넘도록 이어진 농구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하지만 KBL은 ‘서머매치’ 개최 계획을 발표하며 ‘라건아는 참가할 수 없다’는 조건을 함께 공개해 논란을 낳았다. 국내 선수로만 진행하는 대회 계획에 라건아가 걸렸다. 국내 프로농구에서 라건아는 여전히 외국인 선수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초로 귀화(다만, 과거 혼혈 선수들의 귀화 케이스는 있다)를 택한 라건아는 한국 여권을 손에 넣고 대표팀 유니폼까지 입었지만 KBL에서만큼은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주변인’ 대우를 받는다. 한국인으로 분류될 경우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압도적 실력을 자랑하는 탓에 ‘리그 밸런스를 맞춘다’는 명목 아래 10구단 합의에 따라 귀화 이후 6년간 외국인 선수 신분을 유지한다.
라건아의 이번 서머매치 참가 자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벤트 경기이니만큼 좀 더 유연한 규정 적용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선수와 100% 똑같은 룰을 적용받는 것도 아니다. 라건아를 보유한 팀은 외국인 선수 영입에 다른 팀보다 적은 금액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규정에 발목을 잡힌다. 이에 라건아 영입전에 선뜻 나서기도 힘든 실정이다.
이번 서머매치에 나설 수 없다는 소식을 접한 라건아는 아쉬움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건아 소속팀 KCC 전창진 감독은 “정해진 규정이니 할 말은 없지만 이번 경기에서 사전에 (라건아 참가 불가 사실이) 통보되지 못한 부분은 아쉬운 점이 있다. 라건아가 굉장히 아쉬워한다”며 상황을 전했다.
국제대회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하는 라건아가 KBL에서 예외조항을 적용받는 것은 일정 부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름에 열리는 단기 이벤트 경기에서도 똑같은 대우를 한다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함께 이번 서머매치에 나서는 문경은 SK 감독은 “이벤트 경기기에 라건아를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있을 것”이라며 “라건아도 준비를 했을 텐데 기운이 빠지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이벤트 매치인데 좀 더 유연한 규정 적용이 가능하지 않았느냐는 의미다. 이상범 DB 감독도 “라건아가 아쉬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았는데 소통이 잘 됐다면 좀 더 부드럽게 풀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라건아와 달리 DB의 일본인 선수 나카무라 타이치는 이번 대회에 참가 가능해 논란을 더하고 있다. 타이치는 아시아쿼터 제도가 이번 시즌부터 적용되며 영입된 KBL 최초 일본인 선수다. 타이치는 새 제도에 따라 국내 선수 쿼터가 적용된다. 연봉도 내국인 샐러리캡에서 소진된다. 이에 KBL은 타이치의 서머매치 참가를 허용했다.
KBL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하고 침체기에 빠져 있다. 최근 인기 회복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번 여름 특별히 기획한 서머매치는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다만 라건아의 출전과 관련해 팬들의 반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과거 KBL의 침체 이유 중 하나로 ‘잦은 제도 변화’가 꼽힌 바 있다. 특히 신장 제한 등 팬들은 외국인 선수 관련 제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명예 회복을 위해 달리고 있는 KBL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