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강간 및 준강제추행 혐의로 지난 6월 11일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배우 강지환이 지난 18일 대법원 상고 의사를 밝히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그날의 카카오톡” 피해자는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
이 사건에서 피해 여성 A 씨는 강지환에게 수면 중 성폭행(준강간)을, 또 다른 피해 여성 B 씨는 수면 중 성추행(준강제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강지환 측은 이 가운데 B 씨가 혐의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항거불능상태 또는 심신상실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그 증거가 지난 18일 공개된 B 씨의 카카오톡 메시지 대화다.
B 씨는 사건이 발생한 2019년 7월 9일 오전 9시께 자신의 지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강지환네 집 왔는데 집이 X 쩔어” “시방 낮술 지금 오짐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달하기도 했다. B 씨는 이날 정오까지 대화를 이어가다가 잠시 연락이 중단된 뒤 같은 날 오후 8시 30분에 답장을 보냈다. 이 시점은 검찰이 ‘사건이 발생한 시간’이라고 판단한 시점이다. 이후 30여 분 별다른 메시지를 보내지 않던 B 씨는 오후 9시께 지인에게 보이스톡 전화를 걸었다.
2분 29초 동안 이뤄진 이 통화에서 B 씨는 지인에게 피해 상황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통화가 끝난 후 B 씨는 다시 카톡 메시지를 보내 “회사 본부장한테까지 연락 왔다. 지금 사태가 크다”라고 전했고, 지인은 “이거 진짜면 기사감이다. 미쳤나봐”라며 맞장구를 치는 모습을 보였다.
강지환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산우의 심재운 변호사는 이처럼 B 씨가 사건 당일, 그것도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에 지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발송한 점을 무죄의 이유로 짚었다. 심 변호사는 “준강제추행의 경우 사실상 항거불능상태, 심신상실상태여야 하는데 피해자는 범행 시간으로 특정된 시간대에 외부 사람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발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B 씨는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상황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의식을 회복했거나 애초부터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준강제추행이란 죄목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우리 법원의 판례상 준강간 또는 준강제추행 등의 고의는 피해자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는 것과 그 상태를 이용해 간음한다는 사실을 가해자가 인식한 것에서 출발한다. 만일 피해자가 그런 상태에 놓여 있지 않았다면 죄의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다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는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상태가 아니더라도 자기방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강지환이 실제로 추행을 한 경우”라며 “이 경우 사건 당시 강지환이 인식한 상황이, 일반인이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정신적·신체적 사정으로 인해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범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인정된다면 불능미수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능미수란 범행 결과의 발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경우 처벌하는 범죄를 가리킨다. 즉 B 씨가 사건 당시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강지환이 B 씨가 취한 것으로 판단해 추행을 한 사실이 있다면 무죄가 아닌 준강제추행의 불능미수범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19일 KBS2 ‘연예가중계’에서 공개된 사건 당시 피해자들의 신고 문자. 전화가 터지지 않으며 강지환을 피해 문을 잠그고 방 안으로 피신한 상태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KBS2 ‘연예가중계’ 화면 캡처
강지환 측이 내세운 또 다른 반격거리는 성범죄의 증거와 피해자들의 진술 속 모순이다. 먼저 강지환 측은 A 씨의 신체나 옷가지에서 강지환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일반적으로 성범죄에서 부동의 증거로 쓰이는 정액이나 쿠퍼액 등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B 씨의 생리대에서 일부 DNA가 검출되긴 했으나 이에 대해선 “강지환의 집에 머물던 B 씨의 손에 묻은 DNA가 생리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묻은 것”이라는 게 강지환 측 주장이다.
강지환 측은 또 피해자들의 진술이 계속 번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피해자들이 사건 당시 지인과 경찰 등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감금됐다” “(강지환의) 집에서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확인 결과 통화도 잘 터지고 카카오톡도 잘 되더라”고 맞섰다.
그러나 2019년 당시 KBS2 ‘연예가중계’ 방송 팀이 직접 확인한 결과 강지환의 자택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특정 통신사의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피해자들이 수차례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려다 실패하고, 강지환 자택의 와이파이를 이용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뒤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고 호소한 내용도 이미 정식 재판 전에 공개된 바 있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의 국선 변호인을 맡은 법무법인 규장각의 박지훈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옷이나 신체 부위에 강지환의 DNA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재판부가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의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혐의에 합당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하며 “또 현재 강지환 측이 주장하거나 공개하고 있는 근거 자료들은 전부 앞선 재판에서 이미 확인된 부분인데 이제 와서 다시 언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즉 이미 재판 과정에서 무죄로 판단할 만큼의 증거 능력이 없다고 배척된 사실을 마치 지금에서야 처음 발견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강지환은 이미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뒤 피해자들과 합의했고, 피해자들의 처벌불원서는 강지환의 감형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사건 초기 피해자들에게 먼저 합의를 종용한 것은 강지환 측 관계자였다는 사실도 알려진 바 있다. 이처럼 직접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범행 인정은 상대 측으로부터의 거액의 금품 요구 등 실체적인 협박이나 앞선 판결을 뒤흔들 만한 증거 또는 증인이 나오지 않는 이상 유무죄를 뒤집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강지환 측의 상고 소식과 함께 공개된 이 같은 자료들로 인해 이미 피해자들을 향한 ‘꽃뱀’ 몰이가 시작된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애초에 합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으나 강지환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사실을 사과하겠다고 해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지환 측은 처벌불원서를 바탕으로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진심을 받아들였으니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선처를 바란다”고 호소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강지환 측의 입장 번복을 두고 피해자들은 강한 유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