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암담한 현실을 보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국제 등 모든 분야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절망적일지라도 ‘예수의 복음’이 있으면 희망이 있다. 우리는 오직 그것에 희망을 갖는다. 복음만이 이 민족의 희망이다.”
2004년 11월 국민일보에 실린 전 목사의 인터뷰 기사 “청교도 영성훈련 통해 민족복음화 이루겠다” 가운데 일부다. 이처럼 전 목사가 주도한 청교도영성훈련은 당시 기독교계에서 신선한 자극을 불러 일으켰고 그 덕분에 전 목사는 오랜 기간 사랑제일교회 목사라는 호칭보다 청교도영성훈련원 원장으로 더 자주 소개됐다.
2019년 6월 27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1000만 서명 발대식’에서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김홍도 목사와 전광훈 목사
청교도영성훈련으로 유명세를 타는 과정에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도움이 컸다. 전 목사는 김 목사의 도움으로 규모가 큰 금란교회에서 자주 청교도영성훈련원 집회를 열며 부흥사로 이름을 알렸다. 김 목사는 청교도영성훈련원 총재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5년 1월 대구 집회에서 “이 성도가 내 성도가 됐는지 알아보려면 젊은 여집사에게 ‘빤쓰 내려라’ 해보라. 한번 자고 싶다 해보고 그래도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라고 말해 ‘빤스 목사’라 불리며 화제를 양산했던 전 목사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특히 2007년 6월 6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10만여 명(주최측 추산)이 모인 ‘북핵 완전폐기 촉구 국민대회’가 열렸는데 이 행사를 청교도 영성훈련원(원장 전광훈 목사)이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박세직)와 공동주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당시 대선 예비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두 참석했다. 그리고 이날 행사에선 김홍도 목사도 반공을 주제로 한 설교를 했다.
2007년 7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홍도 목사는 “내가 지금 청교도 단체의 총재예요. 나는 이름만 빌려준 것이고 실제로 이 단체를 이끄는 사람은 전광훈 목사예요. 그런데 이 사람도 종종 불려갔어. 왜 아무개 후보를 지지하냐고. 대중 집회에서 특정 후보의 이름을 거론하고 지지하면 선거법에 걸린다는 거예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전광훈 목사
김홍도 목사가 언급한 특정 후보는 바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다. 전광훈 목사가 본격적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계기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2007년 4월 마산에서 열린 청교도영성훈련원 집회에서 전 목사는 교인들에게 “올해 12월 대선에서는 무조건 이명박을 찍어. 만약 (이 후보를 찍지 않으면) 내가 ‘생명책’에서 지워버릴 거야”라고 말했다. 이 내용은 당시 집회에 참석했던 한 교인이 녹음해뒀다가 언론에 제보하면서 뒤늦게 화제가 됐다.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목사가 전 목사 한 명은 아니다. 김홍도 목사 역시 2007년 7월 “하나님의 백성이 내밀 수 있는 최후의 카드는 금식기도이다. 친북좌파 세력이 전자 개표기 조작이나 부정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아 적화통일을 획책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왕이면 예수님 잘 믿는 장로가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설교해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이후 “예수 잘 믿는 장로님이 경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게 해달라” “예수님 잘 믿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기를 기도하자” 등의 발언을 해 결국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당시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였던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도 선관위에 고발당했다.
그렇지만 가장 강력한 발언은 ‘생명책’까지 언급한 전광훈 목사였다. 그렇게 전 목사는 당시 기독교계와 보수계의 거목이었던 김홍도 목사, 김진홍 목사 등과 함께 언론에서 거론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조용기 목사와 전광훈 목사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보수계의 대규모 장외집회가 크게 줄었다. 그만큼 전광훈 목사의 행동반경도 줄어들었다. 이즈음부터 전 목사는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국회의원을 배출하려는 본격적인 정치 행위를 시작한다. 2008년 기독사랑실천당, 2012년 기독자유민주당, 2016년 기독자유당, 그리고 21대 총선 기독자유통일당(자유통일당)까지 전 목사는 4번이나 창당을 해 총선에 임했다.
이 과정에선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와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전 목사는 2008년 총선 당시 기독사랑실천당을 창당해 45만여 표를 이끌어냈다. 5만여 표 차로 비례대표 국회의원 진출에는 실패했다.
2011년 9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독교 정당 과연 필요한가’를 주제로 열린 찬반 토론회에서 찬성 측 패널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담임목사(맨 왼쪽)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2년 총선을 위해 다시 정당 창당을 준비 중이던 전 목사는 2011년 9월 기독자유민주당 창당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서 창당하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전 목사는 “4년 전에는 고 김준곤 목사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의 지시가 있었다”며 “김준곤 목사와 조용기 목사가 누구냐? 하나님의 친구다”고 말하며, 그들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어 ‘기독사랑실천당’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조용기 원로목사는 며칠 뒤 국민일보 확대간부회의에서 “기독당 창당 문제는 나와 무관한 일이며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어떤 경우든 내 이름을 이용해 표를 얻으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전 목사가 4년 전 기독사랑실천당 창당을 조용기 원로목사가 지시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작고한 김준곤 목사 등이 4년 전 북한의 위협 등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정당이라도 만들어 대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으나 그 또한 바른 방법이 아닌 것 같아 발을 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 목사는 크리스천투데이 인터뷰에서 “조 목사님의 심적 부담이 크셨을 것”이라며 “조용기 목사님은 4년 전에도 한 기관의 압력으로 인해 기독당에 적극 나서지 못하셨고, 최근 양수리수양관에서 열린 ‘3000대 교회 초청 기독교지도자 포럼’에 오셨을 때도 한 기관과 주변 인사들의 압박이 있다고 토로하셨다”고 밝혔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빠진 전광훈 목사의 기독자유민주당은 2012년 총선에서 4년 전 기독사랑실천당이 얻은 지지율(2.59%)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1.2%의 지지율을 얻는 데 그쳤다.
#황교안 전 대표와 전광훈 목사
전 목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출마했던 대선 당시에는 별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예장 대신 총회장이 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WCC 대책위’ 위원장이 되는 등 기독교계에서의 입지를 키워나갔고 2016년 총선에선 기독자유당을 창당했다.
전 목사의 색채는 점점 기독교계 보수 인사에서 극우로 변해갔다. 전교조 관련 망언과 세월호 사건 관련 망언을 쏟아내는 등 과격한 발언으로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뒤 태극기 집회가 시작됐지만 전 목사는 동참하지 않았다. 결국 탄핵이 이뤄지고 대선 정국이 시작될 즈음 전 목사는 태극기집회에 등장했다.
기독교계 매체 뉴스앤조이는 당시 전 목사가 한 설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나라를 이슬람과 할랄 앞에 팔아먹어 하나님 앞에 먼저 탄핵된 것”이라며 “하나님이 미리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할 줄 알았기 때문에 태극기집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2019년 3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찾아 전광훈 대표회장 등을 만났다. 사진=연합뉴스
전광훈 목사의 기독자유당은 2017년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애초 기독자유당은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를 지지했지만 결국 말을 갈아탔다. 그런데 전 목사는 장성민 후보를 지지할 당시인 2016년 12월부터 2017년 3월까지 교인들에게 장성민 후보 지지 문자 메시지를 1033회에 걸쳐 397만 건을 보낸 사실이 드러나 기소됐다.
2018년 5월 1심 재판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전 목사를 법정 구속했지만 항소심 진행 과정인 6월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그해 8월에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다.
이처럼 2018년 5월에 법정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석방되고 다시 2심 판결이 나오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전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를 철저히 준비해 2019년 1월 한기총 25대 대표회장이 된다. 그리고 2019년 10월 대법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무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만 유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확정했다.
한기총 회장이 된 뒤 더욱 본격적으로 태극기 집회 등 장외 투쟁에 앞장선 전 목사는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은 대표적인 극우인사가 된다. 다만 박근혜 탄핵 부인, 석방 등의 방향성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 하야, 퇴진 등에 더 중점을 뒀다. 그리고 서서히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인연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전광훈 목사는 황 전 대표가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지지 의사를 밝혀왔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직후 주일 예배에서 “하나님의 사람 황교안 장로가 법무부 장관이 됐다. 황 장로가 한칼에 해치웠다”며 “황 장로가 이정희와 법정에서 싸울 때 아침에 꼭 나한테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라며 전화를 했다”고 설교했다.
자유한국당 시절 황교안 전 대표는 장외 투쟁 전략을 주도했고 정권 퇴진을 외치는 태극기 집회를 주도한 전 목사가 큰 힘을 더했다. 황 전대표가 청와대 인근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을 때에도 전 목사를 만나기도 했다.
최근 사랑제일교회 발 코로나19 재확산을 두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SNS를 통해 “황교안 체제 미래통합당이 그 대가를 지금 치르는 것”이라며 “저 인간들하고 놀아난 게 황교안 체제까지의 통합당”이라고 지적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