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APEC기후센터 전경. 사진=APEC기후센터
APEC기후센터(APCC)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APCC는 7월 2일 경영지원실장에 황 아무개 씨를 채용했다. APCC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이상기후 감시 및 예측 분석을 하는 기관이다. 지난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유치를 계기로 회원국 합의에 의해 부산 해운대에 설립됐다. 기상청 산하기관이면서, APEC 운영기금에서 일부 지원을 받아 국제적 성격도 갖는다.
하지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실에서 황 씨 채용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 씨 합격에 청탁 등 부정행위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이유다. 환노위는 기상청과 APCC를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다.
환노위 소속 민주당 A 의원실은 최근 국회를 방문한 권원태 원장 등 APCC 관계자들에게 황 씨가 환경 및 기후 관련 근무 경력이 없다는 점 등을 들며 부정 채용 아니냐는 취지로 집중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B 의원실 측도 APCC에 황 씨 채용 당시 평가절차와 항목, 인사위원회 구성명단 등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또한 황 씨에 대해 업무 배제 등 압박 조치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황 씨가 맡은 경영지원실장은 APCC의 대외 교류협력과 홍보, 경영지원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민주당 측에서 황 씨를 국회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업무를 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민주당 측이 기상청과 APCC에 부정 채용 의혹에 대한 권 원장의 책임문제를 거론했고, 이에 권 원장이 ‘기관장으로 나오는 인센티브를 반납하는 것으로 책임질 테니, 더 이상 문제제기 말아 달라’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황 씨의 출신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황 씨는 미래통합당 심재철 전 원내대표 보좌관 출신이다. 17대 국회 때부터 통합당 계열 의원실에서 활동했다.
실제 황 씨는 8월 21일 APCC 전 직원에 보내는 메일을 통해 “민주당 출신이 아닌 통합당 보좌관 경력 소유자가 APCC의 간부로 채용된 것에 대해 민주당 측 한 의원실 보좌관 등이 공식루트를 통하지 않은 채 이의를 제기했다”며 “경영지원실장으로서 직무 중 국회지원 업무가 배제됐던 것도 사실이다.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요구였지만, 나만을 생각해 거부한다면 APCC에 불이익이 따를까 염려해 수용하고 함구하는 자세로 임했다”고 밝혔다.
APCC 측은 “황 씨는 블라인드 채용 절차에 따라 진행돼 문제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블라인드 채용법은 2019년 3월 민주당이 주도해 처리했다. 실제 면접은 외부인사로 구성된 면접관 5명으로 진행됐고, 황 씨는 5명 중 4명에게 최고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씨의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황 씨는 비슷한 시기에 APCC 외에도 공공기관 다른 곳도 합격했다. 하지만 고심 끝에 APCC를 선택한 것”이라며 “실력 없이 부정한 청탁으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블라인드 채용법에 따라 채용된 인사에 대해 야당 출신이라고 문제 제기하는 것은 법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논란이 불거지자 8월 19일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 보좌관 출신이 채용되지 않아 욕먹는 것”이라며 “블라인드 채용법은 지난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법이다. 법을 잘 지킨 기후센터 원장에 상을 줘야지 벌을 주면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황 씨 부정 채용 문제 제기와 기관장 압박 의혹에 대해 민주당 해당 의원실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A 의원실 관계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아는 바가 전혀 없다”며 “APCC는 제 기능을 못 하고, 질타를 많이 받는 조직이다. 중요성이 크지 않다. 그런데 그런 기관의 인사까지 신경을 쓰겠느냐”고 일축했다. B 의원실 관계자 역시 “의혹 내용에 대해 잘 모르겠다. 따로 자료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심재철 전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황 씨 채용 논란을 정책위나 국정감사에서 다룰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 측에서 여전히 황 씨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 및 자료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공식적인 문제 제기는 못할 것이라는 반응이다. 통합당 한 관계자는 “이 문제를 크게 키우기에는 서로에게 위험요소가 많다. 이 정도 선에서 끝날 거라고 본다”며 “정당은 다르지만 국회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였다. 이러한 압박과 문제제기는 밥줄을 끊는 것이다. 동업자 의식이 부족하다고 본다”고 아쉬워했다.
미래통합당 보좌진협의회(미보협)에서도 민주당을 향해 APCC에 대한 부당한 압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미보협 제방훈 수석 대변인은 성명서를 통해 “명백한 근거도 없이 우겨대면서 기관장에 대놓고 인센티브 반납하라는 식으로 망신 주는 것은 최소한의 금도를 넘어선 분명한 갑질”이라며 “가족의 생계와 새로운 인생의 활로를 위해 자신의 노력으로 지원해 절차에 따라 채용된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전직 보좌관의 묵묵한 노력이 이런 식으로 매도돼도 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질타했다.
이어 “있지도 않은 청탁 운운하며 기관장의 인센티브 반납과 국회업무 직무배제 등을 요구하는 처사를 묵과할 수 없다”며 “민주당이 그렇게 자신 있다면 각 부처별로 연관된 750여 개 공공기관 전체에 부정 채용된 전직 당직자나 보좌직원들이 없는지 미보협과 함께 전수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