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한 김원웅 광복회장. 사진=연합뉴스
광복절 축사 논란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 회장은 이전보다 더 과감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그는 자신의 활동이 정치 활동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 회장은 8월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김 회장은 “광복회 설립목적은 ‘독립유공자의 숭고한 뜻을 받든 민족정기 선양’이고 이는 정관에도 명시돼 있다”면서 “친일청산은 광복회 존재 이유”라고 했다.
이어 김 회장은 “광복회가 친일청산을 주장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친일청산 주장을 정치적 편향이라고 왜곡하는 것은 안중근 의사 의거를 정치적 편향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고 말을 이었다. 김 회장은 “원희룡, 이철우, 김기현, 하태경, 장제원, 허은아 등 친일청산을 반대하고 민족반역자를 영웅이라 칭송하는 자들은 패역의 무리”라면서 “이런 친일비호 세력과 결별하지 않는 미래통합당은 토착왜구와 한몸이라는 국민의 인식이 심화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김 회장의 그간 행적과 최근 발언 사이엔 모순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원웅 광복회장만큼 다채로운 정치 커리어를 보유한 인물도 드물다”고 평했다. 유신정권 시절 집권당인 공화당 사무직 공채로 정치권에 발을 들인 김 회장은 유신정권이 막을 내린 뒤 민정당 창당준비위원 활동을 했다. 전두환 군사정권 집권당인 민정당 요직도 두루 거쳤다.
전두환 씨. 사진=박정훈 기자
민정당 핵심 당직자로 근무했던 그는 14,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4대 국회에서 김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축이었던 꼬마 민주당 소속이었다. 16대 국회에서 김 회장은 이회창 전 총재가 이끌던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17대 국회에선 노무현 정부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의정활동을 이어갔다. 김 회장은 2010년 대전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정계에서 은퇴했다. 좌우를 넘나들던 그의 정치 인생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정치권에서 은퇴한 김 회장은 2012년 10월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췄다. 2012년 10월 26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클럽에선 안중근 의사 의거 103주년을 맞아 신을사오적-이완용상 시상식이 열렸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등 단체가 개최한 행사였다. 이날 김 회장은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회 전신) 회장 직함을 달고 신을사오적-이완용상 수상자 발표를 맡았다. 신을사오적-이완용상 수상자는 여론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2012년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 실시한 조사를 바탕으로 선정됐다.
민정당 핵심 당직자로 활약했던 김 회장은 첫 번째 수상자를 발표했다. 이완용상을 수상하는 첫 번째 주인공은 전두환 씨였다. 전 씨는 1만 표 중 1106표를 얻으며 첫 번째 이완용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회장은 “민중학살, 민중탄압의 독재정치뿐 아니라 전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며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어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전 씨가 정권을 잡고 있던 8년 내내 김 회장은 집권당 민정당의 핵심 당직자로 활동한 바 있다.
김 회장은 수상자 발표를 이어갔다. 권성 전 언론중재위원장, 김완섭 친일작가,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완용상을 수상했다. 이어 김 회장은 마지막 수상자를 발표했다. 마지막 수상자는 당시 ‘종북 논란’ 중심에 서 있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선정됐다. 이 전 의원은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를 부정해 민족 정체성을 망각하고 “종북보다는 종미가 문제”라는 발언으로 남남분열을 극대화해 혼란을 유도했다는 이유로 이완용상을 수상했다.
김 회장이 신을사오적-이완용상 수상자를 발표한 지 3달이 흐른 2013년 1월 24일 통합진보당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통합진보당은 김원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 초청강연을 개최했다. 강연 제목은 ‘남북통일과 진보의 나아갈 길’이었다. 강연 이후엔 김 회장과 안동섭 통합진보당 사무총장의 간담회가 열렸다.
이 간담회에선 신을사오적에 이석기 전 의원이 포함돼 빚어진 문제가 거론됐다고 한다. 당시 안 총장은 “지난 조사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나온 것 같다”면서 “이 자리를 빌어 당과 이석기 의원에게 유감을 표시해줬으면 좋겠다”고 김 회장에게 말했다. 김 회장은 “당과 이석기 의원 입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김 회장은 “저 자신도 결과를 보고 참 당혹스럽고 걱정이 컸습니다”라고도 했다. 이에 안 총장은 “이석기 의원의 경우엔 일부 정치적 반대세력의 의도적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 여기에 김 회장은 “향후 조사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사진=최준필 기자)
2년 뒤 통합진보당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을 선고했다. 2015년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는 무죄, 내란선동 혐의는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의 징역 9년형을 확정했다.
2015년 1월 23일 김 회장 이름이 다시 등장했다. 이날 민주수호 강원원탁회의(강원원탁회의)는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무죄 확정 판결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강원원탁회의는 강원 지역 단체와 인사들이 2015년 1월 6일 비상시국회의를 열고 결성한 모임이었다.
강원원탁회의는 성명서를 통해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사건 상고심에서 내란음모 혐의가 최종 무죄판결로 선고됐다”면서 “이는 대선 부정선거를 덮고 정권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국정원의 조작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강원원탁회의는 “RO도 없고 내란음모도 없었다는 대법원 판결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의 결정적 근거인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선고 근거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성명서 발표엔 6·15남측본부 학술본부장을 맡고 있던 김한성 연세대 교수, 신성재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의장, 이승재 민주민생강원포럼 대표 등이 멤버로 참여했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김원웅 항일운동단체연합회장이었다.
2019년 10월 19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이석기 옹호 및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폄훼 발언 등의 이유로 광복회 내부 상벌위원회에 제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한 광복회 지회장 발언을 인용해 “김 회장이 우리나라 정당 역사와 관련한 도표를 그려가면서까지 이석기가 왜 훌륭한지 설명했다”면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고 빨리 석방해야 한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김 회장은 2020년 8월 2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위는 음악·역사계에서는 이미 상식”이라면서 “친일 반민족 권력이 장악해온 민족 반역의 시대를 종언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의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애국가 교체를 요구했다. 김 회장은 “108개국 이상이 국가를 시대에 맞게 교체했지만, 국가를 교체하지 않은 나라 중엔 일본이 있다”면서 “국가를 고치지 않은 것도 일본을 따라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김원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이 2012년 10월 26일 신을사오적-이완용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장면. 사진=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홈페이지
2012년 10월 26일 ‘신을사오적-이완용상’ 수상자 중 5번째로 선정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수상 사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를 부정해 민족 정체성을 망각했다’였다. 이완용상을 수상한 이 전 의원 이름을 호명한 것은 다름 아닌 김 회장이었다.
1990년대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로 일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원웅 광복회장은 전두환 군사정권 과오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김 회장이 현재 민주 투사들과 같은 기류의 정치적 스탠스를 취한다고 해도 그 과오는 지워지지 않는다. 과거 조선인 순사들이 일본인 순사들보다 더 악랄하게 독립운동가들을 괴롭힌 것처럼 군사정권 부역자인 김 회장이 현재 진보 진영에 서서 극단적인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현 시점 김 회장의 과감한 발언들이 그의 지난날 과오를 덮어주진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8월 24일 “내 이름을 걸고 정치를 한 지난 30년간 일관되게 ‘(민주)공화당 사무직원으로 일한 것을 부끄럽고 반성한다’고 고백해왔다”면서 “나는 (과거를) 지우려는 생각도 없고 지우려고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김 회장은 “부끄럽게 반성한다”면서 “오늘 이 자리(기자회견)에 선 것도 원죄가 있기 때문에 원칙에 충실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