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총리의 건강이상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투하 위령식 참석한 아베 총리. 사진=EPA/연합뉴스
8월 17일, 아베 총리는 여름휴가를 이용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매년 후지산 근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왔던 것과는 다른 행보다. 관저로 돌아와서 아베 총리는 “컨디션 관리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검사를 받았다”며 “이제부터 다시 업무에 복귀해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건강 체크라는 설명이었지만, 이미 건강이상설이 불거졌던 터라 의혹은 증폭됐다. 더욱이 8월 25일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던 자민당 임원회가 전격 취소되고, 27일 열릴 ‘총리 연임기록 경신 축하모임’도 연기됐다. 따라서 일본 정계에서는 “혹시 25일부터 병원에 입원하는 것 아니냐” “퇴진할 것 같다” 등등 총리의 건강 상태를 두고 여러 추측들이 난무했다.
그리고 8월 24일, 아베 총리가 일주일 만에 게이오대 병원을 찾아 추가 검사를 받았다. 총리 측은 “지난주 진찰 때 의사가 일주일 뒤 다시 오라고 했다”며 해명을 내놨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도 ‘검사 결과와 내용’에 대한 구체적 발언은 피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아베 총리가 일본 역대 총리 중 가장 긴 재임일수를 기록한 날이기도 했다. 2012년 12월 재집권한 이래 2799일. 햇수로는 7년 8개월간 총리로 재임하면서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정치에선 그 직에 며칠 동안 재직했는지가 아니라, 뭘 이뤘는지를 묻는다”며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실행하고 결과를 내놓기 위해 하루하루 전심전력을 기울여왔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환희의 표정은 없었다. 아사히신문은 “역사적 기록 경신인데 총리 관저에는 축하 분위기가 없다”고 평했다.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아베 내각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로, 몇 달째 30%대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서도 “아베 총리의 건강 불안이 지적되고 있다”며 “언제까지 총리를 계속하면 좋겠느냐”를 묻자, 응답자의 절반이 “올해 안에 사임하길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베 총리의 ‘컨디션 불량’은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악화”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궤양성 대장염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증상이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일본 매체 ‘주간문춘’은 “아베 총리가 병원에서 ‘과립공흡착제거요법(GCAP)’이라는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GCAP는 혈액을 뽑아 염증을 제거한 후 몸에 다시 주입하는 요법으로, 스테로이드로 듣지 않는 심한 염증이 일어났을 때 실시한다. 치료 후 하루이틀은 쉬어야 하며, 한번으로는 치료가 끝나지 않아 향후에도 계속 통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총리의 건강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다. “검진이 아니라, 치료 목적의 병원행이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본 정계는 또 한 번 술렁였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더 이상 총리직을 맡기 어렵다”며 “새 자민당 총재를 뽑을 때까지 비상 내각 체제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조만간 아베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은 내각법 9조에 “총리가 병이나 사고, 혹은 해외 출장으로 부재 시, 미리 지정한 국무대신이 임시로 총리 직무를 수행한다”고 돼 있다. 현 내각 임시대리 1위는 아소 다로 부총리, 2위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3위 모기 도시미쓰 외무상, 4위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5위 고노 다로 방위상 순이다.
아베 총리의 후임자로 최근 급부상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위)과 고노 다로 방위상. 사진=AP/연합뉴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주간아사히에 “아베 총리가 쉽게 자리에서 내려오진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총리가 한번 그만둔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집념이 있다”면서 “건강이 악화될지언정 계속 총리직을 하고 싶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관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혹시 ‘아베, 이제 그만둬’라고 수건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 아베 요코뿐이다. 그때는 정말 총리가 그만둘 것이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로 1년 정도 남았다. ‘주간아사히’는 “아베 총리가 아소 다로 부총리에게 총리 대행을 맡긴 후 열흘 남짓 휴식을 취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단 오는 9월 중 개각 및 자민당 지도부 개편 인사를 아베 총리가 단행할 수 있을지가 초점이다.
만에 하나. 아베 총리가 조기 사임한다면 후임자는 누가 될까. ‘포스트 아베’로 자주 거론되는 인물은 ‘아베 절친’인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전 간사장이다. 기시다는 한때 유력한 후보였지만 지금은 존재감이 미미하다. 이시바의 경우 국민들 사이에서 지지율은 높으나 자민당 내 소수파여서 당 총재 선거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급부상한 인물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다. ‘자민당 2인자’로 알려진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스가 장관과 잇단 회동을 갖고 있다는 점이 ‘스가 대세론’에 힘을 실어준다. 자민당의 한 관계자는 “니카이 간사장이 아베 정권의 골격을 그대로 계승할 사람은 ‘관방장관으로서 아베 총리와 오랜 호흡’을 맞춰온 스가 장관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서 “아베 총리와 스가 장관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둘의 관계성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지적이다.
스가는 세습정치가 흔한 일본 정치계에서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으로 알려졌다. 후지TV의 히라이 후미오 논설위원은 “스가 장관이 유력한 총리 후보이긴 하나, 권력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는 “차기 주자로서의 뜻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고노 다로 방위상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최근 육상배치형 탄도미사일 요격체계인 ‘이지스 어쇼어’ 도입을 철회해 단번에 인기가 급상승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쇼맨십에 능한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총리로서 아직 이르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진 않다.
정치 저널리스트 후지모토 준이치는 “고노 방위상은 아베 총리가 차기 총리후보로 요구하는 외교와 안보 양쪽에 정통한 데다, 파벌을 넘어 젊은 자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지지율이 높다”며 “‘고노 대세론’은 충분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라고 내다봤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