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IT사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케이뱅크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구현모 KT 대표가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 사장이던 지난해 11월 4일 서울 종로구 KT스퀘어 기자간담회에서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IPTV 서비스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KT는 최근 ‘ABC’사업이라 불리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Cloud)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밀고 있다. IT 서비스로 기업 고객을 유치하는 B2B 사업 위주로, 크게 ABC사업과 블록체인 등을 중심으로 한 AI&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X)부문, SI(시스템통합)와 영상보안 등 기업IT&솔루션 부문으로 나뉜다. 4차산업 발전에 따라 기업 수요가 급증하는 분야로 KT의 2분기 AI&DX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올랐다. KT 주요 사업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최근 행보를 두고 구현모 대표가 자기 체제를 굳히고 경영 능력을 입증할 포석으로 IT를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KT는 전국적으로 5G, 기가인터넷 등 유무선 네트워크를 확보했기에 이를 기반으로 IT 사업에서 빠르게 경쟁력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미 AI스피커 기가지니는 2017년 서비스 도입 이후 3년여 만에 250만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등 점유율 1위를 굳혔다. 가정을 넘어 아파트와 호텔, 자동차 등으로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AI 기술 적용 분야도 고객센터와 로봇, 식음료, 물류 등으로 확대 중이다.
IT는 한국판 디지털 뉴딜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와 일치하고, 국내 시장에 국한되는 유료방송시장과 달리 B2B 위주로 국가간 영역을 넘어 뻗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성장성도 뛰어나다. 구현모 신임 대표가 빠르게 실적을 내면서도 그룹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에 IT가 적합하다는 판단이 최근 행보에 반영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언택트 5G 시대라는 흐름과 수익성을 보고 IT 쪽을 택한 것 아니겠느냐”며 “구 대표는 밀레니엄 세대를 이해하며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젊은 이미지를 원하고, 이 같은 대표 성향은 사업 전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케이뱅크다. KT는 일찍이 핀테크 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최초로 인터넷은행 허가를 받으며 2017년 케이뱅크를 출범시켰다. 대규모 증자를 통해 케이뱅크 대주주로 올라서고자 했지만,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으로 발목이 잡혔다. 자금 수혈을 받지 못한 케이뱅크는 지난해 4월부터 대출 영업을 중지했다. 올 4월 말에야 대주주 자격 요건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KT는 직접 유증에 참여하지 않고 7월 초 자회사 BC카드에 케이뱅크 지분 10%를 넘겼다. BC카드는 그달 말 유증에 참여해 케이뱅크 지분을 34%로 늘려 최대주주가 됐다.
기사회생한 케이뱅크는 7월부터 대출 상품 재개 등 정상 영업에 나섰다. 그러나 케이뱅크의 개점휴업 기간, 또 다른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가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며 압도적인 1위 입지를 굳혔다. 네이버파이낸셜도 커머스와 웹툰 결제 등으로 결제액 규모를 키웠고, 플랫폼 강자 토스도 여수신 업무에 보험·증권 서비스까지 준비하며 인터넷은행 진출을 앞뒀다. 플랫폼이 약한 케이뱅크가 3위 아래로 밀려날 수 있는 상황이기에, KT가 케이뱅크 대신 IT에 집중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앞의 증권사 관계자는 “케이뱅크는 채널 자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대출까지 중단된 바 있기에 이용자들이 대출 채널로 케이뱅크를 잘 찾지 않고 다른 연계 서비스도 적다”며 “더 익숙하고 다양한 서비스가 연결된 카카오뱅크가 있는데 케이뱅크를 이용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힘들게 네이버 카카오와 싸워도 1등을 하지 못할 바엔 놔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 아래 BC카드에 두고 KT는 다른 사업에 집중한다는 전략 아니겠느냐”고 봤다.
KT가 IT사업에 집중 투자하면서 기존 신사업으로 투자했던 케이뱅크에서는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광화문의 한 광고판에 걸린 케이뱅크 광고. 사진=연합뉴스
다른 주주들도 추가 투자를 머뭇거리고 있다. 최근 케이뱅크 유증에는 BC카드와 우리은행, NH투자증권만 참여했다. IMM프라이빗에쿼티와 한화생명, GS리테일, KG이니시스, 다날 등 다른 주주들은 불참했다. 유증 과정에서 기존 6월 18일이었던 주금 납입일이 7월 28일까지 미뤄지고 규모도 기존 계획한 5949억 원에서 3966억 원으로 줄었다.
케이뱅크는 최근 유증으로 자본금을 9016억 원으로 늘렸지만 영업 정상화를 위해서는 추가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 이문환 케이뱅크 행장은 지난 8월 초 기자간담회에서 “유증 규모는 1조 4000억~1조 5000억 원은 돼야 한다”며 “시기는 내년 중반 이후로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주주들에게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유증에 불참한 주주들 가운데 한 곳은 “추가 투자 계획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이유로 케이뱅크가 해외 투자자 모색에 힘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주주들의 경우 이미 카카오뱅크와 격차가 벌어진 상태에서 케이뱅크가 얼마나 점유율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지 회의감이 있을 것”이라며 “모양새가 좋지 않은 만큼 당장 발을 빼진 못하겠지만 경제 전반이 크게 위축됐고 코로나 사태로 투자가 더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증권업계 다른 관계자는 “기존 주주들은 케이뱅크가 워낙 카카오뱅크에 밀리니까 손을 놓은 분위기”라며 “케이뱅크가 최근 해외 투자자들과 접촉했는데 일부는 무산되는 등 난항을 겪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만 KT 입장에선 최초로 허가를 받은 인터넷은행이고 다른 주요 사업과 결합한 서비스도 내놓을 수 있기에 아예 손 뗄 순 없을 것”이라며 “유증은 어떻게든 이뤄질 듯한데, 이 과정에서 주주 구성이 일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케이뱅크는 혁신 상품을 내놓고 주주들과 협력을 강화해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입장을 보인다. 케이뱅크는 지난 7월 파킹통장을 출시하고 신용대출 상품 3종을 선보이며, 수신 잔액을 전월 대비 약 4800억 원 늘렸고, 여신 잔액도 상품 출시 약 보름 만에 1700억 원 확대했다. 최근 진행한 연 1% 중반대 금리의 비대면 아파트 담보대출 사전예약에도 2만 6000여 명이 몰렸다고 전한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이번에 증자를 성공시켰고 영업을 재개한 7월 한 달 실적만 봐도 과거와 판이하게 다르다”며 “혁신 상품을 내놓고 주주들과 제휴해 시너지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투자 유치와 관련해서는 “케이뱅크에 관심 가진 곳들이 있어 대화 중”이라며 “최근 유증에 3대 주주만 참여한 건 시간상 여유가 없다 보니 빨리 추진하려는 차원이었을 뿐 추가 증자를 한다면 다른 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KT 관계자는 “그룹사 안에서 지분 교환이 이뤄진 것만 봐도 케이뱅크에 소홀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처음에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완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당시 대안이었던 BC카드에 지분을 넘겨 경영하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