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빈 일병은 2014년 4월 7일 삶의 마침표를 찍었다. 커서가 깜박이는 노트북을 그대로 열어둔 채 집을 나선 임 일병은 저녁 10시쯤 한강 다리로 향했다. 열다섯 평 남짓 되는 집에서 아들이 나가는 인기척을 못 들었을 리 없다. 엄마 염정숙 씨는 평소 한강으로 산책 가길 좋아했던 아들이 그저 바람 쐬러 가는 줄 알았다. 그게 마지막이라곤 꿈에도 몰랐다.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은 열흘 뒤인 2014년 4월 18일 차가운 시신으로 물 위로 떠올랐다.
임정빈 일병의 아빠 임덕순 씨와 엄마 염정숙 씨. 사진=임준선 기자
“정빈이가 발견되기 전날 꿈에 나오더라고요. 물 위에 사람이 엎드려 있는데 허벅지가 정빈이 허벅지더라고요. ‘정빈아!’ 소리치면서 깼어요. (유서가 있었던) 노트북은 버렸어요. 보면 계속 생각나고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아서요. 저걸(유서) 남기고 갔으니 열흘 동안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말로 다 못 하죠. 강직한 아이였어요.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그래서 더 억울해요. 말이라도 다 하고 갔으면.”
일요신문 인터뷰 내내 임 일병의 아빠 임덕순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쏟아냈다. 고개를 들어 되삼키려고 해도, 아들을 향한 그리움만큼이나 부푼 눈물방울은 하염없이 뺨을 타고 흘렀다. 택시 운전을 하던 그는 아들을 잃은 뒤 날마다 술로 견뎠다. 그러던 2018년 6월 중풍으로 쓰러졌다. 간호조무사였던 아내의 보살핌을 받아 어느 정도 호전됐지만 몸의 오른쪽이 굳어 아직 제대로 움직이기도 말하기도 어렵다. 정빈이는 종일 운전을 하고 들어온 자신과 목욕탕을 함께 가주던 기특한 아들이었다. 어떤 것으로도 그 빈자리는 메워지지 않았다.
진단명은 양극성 정동장애였다. 잘 알려진 병명은 조울증이다. 증세가 처음 나타난 건 2013년 9월 2일 입대하고 3개월쯤 지난 시점이었다. 2013년 11월 자대 배치 받고 한 달 뒤였다. 2013년 12월 소·중대장 면담에서 임 일병은 “사회악이 되겠다. 조커와 같은 역할을 해야겠다.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다”거나 “자해시도나 탈영이라도 해서 전역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부대 지휘관은 임 일병을 소위 관심병사를 모아두는 ‘오뚜기 캠프’에 보냈다. 임 일병은 한 달 뒤 퇴소했지만,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다. 지휘관은 곧바로 임 일병을 군 병원 정신과에 입원시켰다. 입원해 있는 동안 임 일병의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입원 나흘 뒤 탈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임 일병은 “나가서 죽고 싶고, 죽을 수 있을 거 같다. 사는 게 괴롭다”며 계단으로 나간 뒤 총을 탈취하려고 했다. 병원을 탈출하려는 임 일병을 의무병이 붙잡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특별히 부대 안에서 가혹행위나 폭행한 흔적을 찾을 순 없었지만 임 일병은 입대 전부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던 건 분명했다. 임 일병은 입대 전 간부를 꿈꿨다. 늠름한 군인이 되리란 꿈을 가지고선 대학 역시 군사학과에 입학했고, 2013년 1월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지만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퇴교했다. 허리를 치료한 뒤 9개월 만에 현역 입대했다. 오랫동안 만들어 온 간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선 병사들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간부를 준비하다 들어온 임 일병의 나이는 비교적 많은 편이었고 디스크 판정을 받은 허리 또한 여전히 온전치 않았다.
“남자는 당연히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어떻게든 군대를 안 보내려는 엄마들을 이해를 못 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정빈이한테 디스크 수술이 아니라 비수술 치료를 받게 한 거거든요. 현역으로 안 가면 나중에 문제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서요. 그때의 저를 때려죽이고 싶을 만큼 후회해요. 정빈이가 병사로 현역 입대할 때 ‘엄마 나 안 가면 안 돼?’ 그랬거든요.”
임 일병에게 조울증이 찾아온 명확한 이유를 밝히긴 어렵다. 조울증의 원인은 의학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임 일병의 사단 조사위원회는 임 일병에게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복무 부적응으로 인한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표출하는 등 자해 사망을 비롯한 사고 위험이 있고, 재발 우려가 농후하다는 군의관의 소견을 따른 결정이었다.
아들을 군대 보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염정숙 씨는 국가를 향한 불신만 남았다. 사진=임준선 기자
문제는 군단 병역심사관리대의 최종 판단이었다. 군단 병역심사관리대는 사단 조사위원회의 의견을 참고해 병사의 전역 여부를 최종 검증·결정한다. 병역심사관리대는 2014년 3월 10일부터 21일까지 열흘 넘게 전역 심사를 했으면서도 임 일병이 군 현역 복무를 하기엔 부적합하지만 전역한 뒤 사회복무 등의 병역 수행은 가능하다고 보고 임 일병을 보충역에 편입했다. 이렇게 정신 질환으로 전역 판정을 받은 인원을 공익근무요원 재배치한 것이다.
결국 2014년 3월 21일 전역한 임 일병은 집 근처 신경정신과 전문의에게 통원치료를 받으면서도 송파구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대기해야 했다. 임 일병은 공익 근무를 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신세를 져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점점 심리적으로 위축돼 갔다. 그의 유서엔 “공익을 하면 아버지께 더 기대야 될 것 같고 더 이상 부모님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가 한강에 몸을 던진 2014년 4월 8일은 대기발령을 끝내고 송파구청에 첫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
“‘엄마, 나 출근 안 하면 안 돼? 나 약 먹으면 하루 종일 멍해져서 아무것도 못 해’라고 하더라고요. 전역한 뒤에 처방받은 조울증 약을 먹으면서 지냈는데, 약을 먹으면 그냥 멍청하게 지내는 거예요. 국가에서 시킨 건데 어쩔 수 있나요. 치료가 필요하다고 전역시킨 정빈이를 왜 다시 공익을 시킨 건가요? 정말 묻고 싶어요.”
육군 병인사관리규정에 따르면 자해·자해사망 위험성이 낮은 경우(자해사망 위험군)에만 보충역으로 편입하게 돼 있다. 자해·자해사망 위험성이 높은 경우(자해사망 고위험군)는 전역시키도록 돼 있다. 대부분 전문가는 임 일병의 조울증 증상은 재발 위험이 크고 자해 사망 가능성이 다분한 고위험군 병사라고 경고했다.
1차 심사 기관인 사단 조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임 일병의 조울증이 완치가 어렵고 망상적 사고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고, 군단 병역심사관리대가 심리 평가를 맡긴 전문상담관 또한 임 일병을 두고 “생각과 감정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 사소한 비판이나 자극에도 충동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보여 군 복무나 단체생활에는 부적응이 예상됨”이라고 의견을 냈다. 임 일병을 진료한 군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고 아무개 대위 역시 경과기록지에서 “재발의 위험 등 부대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적응상의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악성 사고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날은 지난날이다. 하지만 지금 임 일병 가족을 정말 힘들게 하는 건 임 일병 죽음을 두고 보이는 ‘국가’의 태도다. 군단 병역심사관리대는 심사의결서에서 임 일병의 조울증 발병을 두고 개인적 요인을 강조했다. 어릴 때 있었던 부모의 불화와 누나의 가출, 중학교 때 당했던 집단 구타 경험과 자해 시도 등으로 인해 생긴 사회를 향한 불만과 생물학적 요인이 조울증 원인이라고 봤다. 결국 임 일병은 ‘그렇게 될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군단 병역심사관리대의판단 근거가 된 병상일지는 임 일병의 과대망상과 피해망상 증상이 보이기 시작한 이후 작성됐다.
보훈심사를 하는 보훈처 또한 위와 같은 이유로 임 일병과 관련해 아무런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훈처는 임 일병 가족에게 보낸 결정이유서에서 “고인의 조울증이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군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했다거나, 그 밖의 군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상당인과관계가 되어 발병 또는 악화되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며 “양극성 조울증의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전적 요소, 신경생물학, 정신약물학, 내분비 기능, 두뇌 영상학 등의 영역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사회 환경적인 외부 요인보다는 환자가 지니고 있던 기질적·구조적·유전적 요인 등을 정신질환의 주요 병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던 애예요. 몸도 정신도 건강하다는 뜻 아닌가요? 원래 정신병 걸릴 애라니, 원래 그런 애라면 왜 데려갔어요? 건강하게 들어갔던 애가 군대에서 병을 얻었으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진=임준선 기자
순직 결정을 받아 아들의 명예를 회복할 길도 없다. 전역한 뒤 공익근무요원 신분일 때 사망한 임 일병은 군인 신분이 아니어서 순직 심사 대상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송파구청도 임 일병이 단 하루도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질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이 상황에서 임 일병의 가족은 비통한 마음을 호소할 곳 없다.
“정빈이가 자해했다고요? 그런 사실 없어요. 그랬다면 제가 알았겠죠. 그런 말들이 정말 더 힘들게 해요. 육군3사관학교에 입교했던 애예요. 몸도 정신도 건강하다는 뜻 아닌가요? 원래 정신병 걸릴 애라니, 사람 두 번 죽이는 말 아니고 뭔가요. 원래 그런 애라면 왜 데려갔어요? 걸러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국가를 믿고 어떻게든 아이를 군대에 보내려던 제가 원망스러워요. 건강하게 들어갔던 애가 군대에서 병을 얻었으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젠 국가에 대한 불신밖에 남질 않았어요.”
김상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임정빈 일병의 경우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망 당시 군인 신분이 아니라 순직 심사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지만, 진상규명을 원하는 유족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사건을 맡게 됐다”며 “제2의, 제3의 임정빈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월 18일 군 복무 중 생긴 심신장애로 인해 전역한 뒤 사망한 군인이 전사자 또는 순직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군인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1950년 군 창설 이래 비순직 처리된 사망군인은 3만 9000여 명에 달한다. ‘개인적 사유’에 의한 자해 사망인 경우가 상당하다. 이들은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었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인람)는 2018년부터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부대 내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 순직 처리로 이끄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19년 9월 13건의 의문사를 진상규명한 뒤 매월 성과를 내고 있다. 일요신문에서 진상규명된 사연을 연재한다. |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