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가 또 한 번 오심으로 홍역을 앓았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은 판정에 항의하다 국내 무대 첫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열혈 야구팬들 사이에는 언제부턴가 ‘요주의 심판 리스트’가 등장했다. 2014년에는 술 취한 관중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심판에게 달려드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KBO는 그해 후반기부터 일부 플레이에 한해 방송사 중계 화면을 확인한 뒤 판정을 번복할 수 있는 ‘심판 합의판정’ 제도를 도입했다. 3년 뒤인 2017년에는 아예 통합 리플레이 센터를 세워 본격적인 ‘비디오 판독’을 시작했다.
그래도 논란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비디오 판독 횟수는 제한돼 있고, 아직 판정 번복이 인정되지 않는 요소들도 남아 있어서다. 최근에는 5강 경쟁에 한창인 KIA 타이거즈가 치명적인 오심으로 피해를 봐 야구계가 시끄러웠다.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이 다음날 퇴장을 불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또 심판 자질 논란 부른 KIA전 오심 사태
지난 8월 22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IA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KIA가 3-1로 앞선 8회 말, 펜스 앞까지 날아온 키움 이정후의 타구를 KIA 중견수 김호령이 달려가 잡아냈다. 워낙 잡기 어려운 타구라 공이 글러브에 맞고 튕겨 나갈 위기도 있었지만, 김호령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끝까지 공을 놓치지 않아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이때 2루심이 이정후의 2루타를 선언했다. 경기 초반이었다면 비디오 판독으로 쉽게 판별할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KIA가 이미 비디오 판독 요청 기회를 소진한 뒤라는 게 문제였다. 졸지에 발 빠른 주자를 2루에 두게 된 KIA 투수 장현식은 결국 역전 3점 홈런을 맞았고, KIA는 3-4로 역전패했다. 윌리엄스 감독은 “리플레이로 오심 장면을 100번쯤 본 것 같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공교롭게도 다음날인 23일 경기에선 전날 오심을 범한 2루심이 심판 운영 원칙에 따라 주심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지어 8회 말 한 차례 또 판정 시비가 일었다. 8회 말 KIA 투수 김명찬의 폭투 때 키움 3루 주자 김웅빈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득점하려다 아웃 판정을 받았는데, 비디오 판독 결과 김명찬의 주루 방해라는 판정이 나와 세이프로 번복됐다. 계속 앞서던 KIA가 6-6 동점을 허용하는 점수였다.
윌리엄스 감독은 즉각 그라운드에 나와 항의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가 아니라 “비디오 판독 제한 시간인 3분을 넘겼다”는 게 요지였다. 3분을 넘기면 원심이 유지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심판진은 “판독센터와 소통해야 할 일이 있을 땐 3분을 넘겨도 괜찮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고 맞섰다. 오히려 윌리엄스 감독이 ‘비디오 판독 결과에 불복한 감독은 무조건 퇴장 조처된다’는 규정에 따라 시즌 첫 퇴장을 당했다. 자극받은 KIA 선수단은 9회 재역전해 승리를 가져갔지만, 이틀 연속 불거진 심판 관련 논란에 KIA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KBO 심판위원회는 해당 심판조 인원을 일부 교체하는 중징계를 내리고 논란의 심판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허운 KBO 심판위원장은 “그 심판조가 특정팀과 여러 차례 논란에 휘말려 비판을 들었다. 고심 끝에 위원장 직권으로 이 심판조의 심판위원 일부와 다른 조 심판위원을 맞바꿨다”며 “바깥에선 조원 교체를 징계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지만, 심판위원들에겐 2군 강등보다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처음이고, 판정 논란이 자주 벌어지던 시절에도 이런 일은 두세 차례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의 인기 상승과 중계 기술의 발달에 따라 심판은 수난시대를 겪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고되고 힘들 만큼 논란도 많은 심판의 삶
KBO는 1982년 3월 총 15명의 심판에게 처음으로 임명장을 수여했다. 9명의 전임 심판과 6명의 지방 주재 심판이었다. 야구와 관련된 다른 모든 직업이 그랬듯, 프로야구 출범 초기에는 상황이 무척 열악했다. 첫 심판들은 동대문구장 앞 의류점에서 자기 돈을 내고 유니폼을 맞췄다. 경기 때 사용하는 보호 장비도 당연히 자비로 구입했다. 일본 제품이 비싸 대만 제품을 사서 썼는데, 공에 맞으면 프로텍터가 바로 휘어질 정도로 품질이 좋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나마도 심판 한 조에 한 세트씩밖에 못 샀다. 장비 하나를 3~4명이 돌아가면서 사용했다. 고속도로도 열악하고 KTX도 없던 시절, 그 무거운 장비를 들고 버스에 올라 전국을 누볐다.
그럼에도 어딜 가나 욕을 먹었다. 지금은 은퇴한 한 베테랑 심판은 “대구 경기에서 관중에게 가래침을 맞은 적도 있다. 계속 욕을 하는 관중의 얼굴을 쳐다봤는데, 하필이면 내 뺨에 (가래침이) 정통으로 붙었다. 화가 나서 철망을 향해 마스크를 던졌다가 징계를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김응용 감독처럼 다혈질인 원로 감독들은 종종 심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또 다른 베테랑 감독과 실랑이를 벌이다 부상을 당한 심판도 나왔다.
심판들이 대부분 선수 출신이라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또 다른 베테랑 심판은 “야구장의 현역 코치와 선수들 중 학교 후배들이 많았다. 그래도 사석에서는 절대 만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항상 먼저 피했다. 식당도 야구인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골라서 갔다”고 했다. 행여 식사를 하다 구단 관계자들을 만나도 절대 합석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다른 이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다.
언젠가부터 심판을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도 심해졌다. 한 중견 심판은 “우리를 그라운드 관리인처럼 막 대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더라. 경기를 보다가 TV 영상으로 오심이 확인되면 즉시 KBO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구단도 있었다”고 한탄했다. 그러자 심판들도 권위를 지키기 위해 항의에 강하게 맞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한 구단 관계자는 “오심 문제가 불거지면서 선수들조차 심판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지나칠 정도로 ‘막나가는’ 선수도 늘었다. 심판들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더 강경 대응했다”고 귀띔했다.
물론 심판의 권위와 권한을 악용하는 이들도 가끔 있었다. 프로야구 TV 중계가 거의 없던 시절 얘기다. 오심이 나와도 다시 확인할 길이 없으니 일부 몰지각한 심판들은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살짝 ‘봐주기’도 했다. 감독들은 “심판판정에 항의하고 싶어도, 찍히면 오히려 그 다음에 팀에 불리한 판정을 할까봐 꾹 참을 때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오심으로 시작된 자질 논란, 어디까지 갈까
전통적으로 심판이 감독과 선수들에게 원성을 산 원인은 오심이 아닌 다른 데 있었다. 심판과 현장이 야구 선후배 관계로 얽힌 한국적 구조가 갈등을 불렀다. 많은 선수들은 “일부 심판이 야구 선배라는 점을 앞세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 프로팀 코치는 “선수들을 그라운드 안에서 먼저 후배로 대하려고 해 다들 기피하는 심판이 있었다. 판정에 불만이라도 드러내면 바로 다음에 감정적 판정이 돌아와서 애를 먹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에 따라 한 해 성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투수들은 특히 더 조심했다. 한국에서 1년간 뛴 한 외국인 투수는 “선수들이 심판들을 선배로 대하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가끔 마운드에서 혼잣말로 판정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면 심판들이 불쾌해했는데, 원래 한국 고유의 정서인지 궁금하다”며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심판 합의판정이 도입되면서 심판과 현장의 관계는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도입 전까지는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심판의 권위 하락과 권한 축소가 가장 큰 이유였고, 오심으로 돌발 변수가 생길 수 있는 야구의 묘미를 해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찬반의 목소리가 오가는 와중에도 치명적인 오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비디오를 활용한 판정 번복은 메이저리그(MLB)를 포함한 세계 야구의 흐름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각 구단 사장·단장들과 당시 9개 구단 감독들은 일사천리로 제도 변경을 추진했다.
처음엔 활용 폭이 적었다. 원래 합의판정 대상 플레이는 홈런에 대한 판정, 외야타구의 페어와 파울, 포스 또는 태그플레이에서의 아웃과 세이프, 야수(파울팁 포함)의 포구, 몸에 맞는 공까지 총 5개였다. 그러나 이 범위 밖에서도 오심이 많아지자 2016년부터 두 가지가 새로 포함됐다. 타자의 파울·헛스윙(타구가 타석에서 타자의 몸에 맞는 경우 포함)과 홈 플레이트에서 충돌 여부다.
횟수도 늘었다. 2015년까지는 최대 2회까지 신청 가능하되, 첫 번째 합의판정 신청 후 심판의 최초 판정이 번복되지 않으면 두 번째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 때문에 감독들이 경기 초반이거나 긴가민가한 상황에서는 합의판정 사용을 주저하곤 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는 판정 번복 여부와 관계없이 두 번의 기회를 모두 쓸 수 있게 됐다.
2017년엔 좀 더 획기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메이저리그 비디오 판독 방식과 동일하게 별도의 리플레이 센터에서 전문 판독관이 판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갖췄다. ‘심판 합의 판정’이라는 명칭도 공식적으로 ‘비디오 판독’으로 바꿨다.
이전에는 TV 중계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끊기거나 중계가 늦게 시작되면, 경기 중 애매한 판정이 나와도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TV 중계방송의 메인 화면, 중계와 별개로 제공되는 방송사 촬영 화면, 각 야구장 좌측·우측·정중앙에 별도로 설치한 카메라에서 송출되는 화면까지 그라운드 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 또 이전에는 합의 판정 요청을 받은 심판이 심판실로 급히 달려 들어가 TV 화면을 직접 보고 결정했다면, 이제는 해당 심판과 그 심판조의 팀장이 그라운드에서 인터컴 장비를 착용하고 판독센터에서 통보하는 결과를 받는다.
물론 올해의 오심 논란에서 알 수 있듯 그 후에도 심판 판정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횟수 제한에 따른 문제를 넘어 비디오 판독 오독 논란까지 나왔을 정도다. 하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지자 올해는 아예 KBO 홈페이지에 비디오 판독 영상을 공개해 일반인들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장치까지 생겼다.
영원히 심판의 역할로 남을 듯했던 스트라이크볼 판정도 마찬가지다. KBO는 지난달 퓨처스(2군) 리그에 처음으로 자동 스트라이크볼 판정 시스템, 일명 ‘로봇심판’을 도입했다. 2군 일부 구장에 로봇심판 전용 투구 트래킹 시스템을 설치했고, 일부 경기에서 시험 운영한 뒤 향후 활용 확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심판보다 기계를 더 믿게 된 시대. 한쪽은 “야구의 인간적인 맛을 잃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심판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한다. “그저 세계적인 흐름에 발을 맞춘 것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어느 쪽이 옳든 그르든, 야구 심판은 여전히 막중한 임무와 권한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 전문적이며 신중해야 하고, 더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자리다. 반대로 늘 불신의 눈초리와 거센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기에 더 외롭고 고된 직업이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눈’을 가졌기에 더 그렇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