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KBS2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에 출연 중인 배우 서성종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알려지면서 방송가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KBS 제공
국내에서 배우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방송사는 즉각 촬영을 중단하는 한편 배우들과 접촉한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의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다. 이들과 같은 현장에 있었던 배우 서이숙, 고아라, 예지원, 이재욱, 김희정, 오만석 등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음성 판정을 받았으나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자가 격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태프 중에는 허동원의 메이크업을 맡은 분장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방송 출연진의 첫 코로나19 확진이 나온 KBS 측은 지난 8월 24일부터 주요 드라마 제작을 전면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니시리즈인 ‘도도솔솔라라솔’ ‘바람 피면 죽는다’ ‘암행어사’와 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 일일드라마 ‘비밀의 남자’ 제작이 중단됐다.
이처럼 드라마 현장을 덮친 코로나19의 여파는 KBS뿐 아니라 타 방송사에도 미쳤다. ‘비밀의 숲 2’를 이어 오는 10월 10일부터 방영을 앞두고 있던 tvN 드라마 ‘스타트업’과 ‘낮과 밤’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촬영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JTBC 스튜디오 역시 오는 9월 16일 첫 방송을 앞둔 드라마 ‘사생활’과 ‘18어게인’ ‘경우의 수’ 등의 편성 예정 작품들에 대한 전면 중단 지침을 내렸다. 현재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센 수도권 지역에서 이뤄지는 촬영이 방송가 집단감염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KBS2는 ‘그놈이 그놈이다’에 이어 ‘도도솔솔라라솔’ ‘오! 삼광빌라’ 등의 촬영을 잠정 중단했다. 사진=KBS 제공
촬영이 밀리면서 제작발표회 등 외부 행사 일정도 잠정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KBS2 ‘도도솔솔라라솔’ ‘좀비탐정’과 OCN ‘미씽: 그들이 있었다’, tvN ‘청춘기록’의 제작발표회가 중단됐으며 현재까지 향후 일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초유의 사태를 두고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허탈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번 하반기 방영을 앞두고 있는 한 케이블 드라마 제작 관계자는 “2~3월 영화계나 가요계가 정면으로 타격을 입었을 때도 방송계는 비교적 큰 문제가 없었다. 특히 드라마 제작 현장 같은 경우는 제작사나 방송사가 사비를 들여서 열 감지 카메라도 설치하고 소독제나 마스크를 나눠 줄 정도로 방역에 철저했는데 이제 와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촬영 중단으로 계획됐던 스케줄이 전부 밀린다면 내년 상반기까지 조율된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방송가가 안일했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그는 “방역에 철저했다곤 해도 5월까지였고 확진자가 감소세로 접어들면서 우리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잘못이 있다”며 “불특정다수가 실내에서 붙어서 일하는 환경인데 일부 스태프만 마스크를 쓰고 출연진은 전혀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쉬는 시간마다 벗는 일이 잦았다. 이번 사태는 예상이 가능한 결과”라고 짚었다.
같은 스튜디오를 사용하거나 스태프들의 순환 근무가 이뤄지는 방송가의 특성상 한 명이 확진될 경우 집단감염으로 확산될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앞서 지난 3월 CJ ENM 소속 예능 PD의 확진으로 그와 같은 건물을 사용한 KBS와 TV조선의 예능팀이 단체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것 역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방송가는 지난 8월 19일을 기준으로 해서 약 2주간 상황을 지켜본 뒤 촬영 재개와 일정 조율을 다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촬영이 급하지 않은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종영이나 방영을 앞두고 있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마친 뒤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살펴 다음 일정을 진행한다는 것. 앞선 관계자는 “제때 잡지 못하면 다른 프로그램으로 촬영 중단 여파가 미칠 수 있다. 당분간 방역에 집중하며 정부 방침을 지켜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SBS의 ‘런닝맨’ ‘집사부일체’ 등 야외 예능 프로그램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당분간 촬영을 중단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 다른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도 야외 촬영과 실내 스튜디오 촬영을 막론하고 앞으로 상황을 지켜 본 뒤에 촬영 중단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 같은 촬영 중단은 장기전으로 갈 경우 방송사와 제작사가 입어야 할 손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문제가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야외 촬영의 경우 현장에 미리 지불한 계약금이 있기도 해서 일정 조율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고스란히 제작사가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태이니만큼 되도록 양측간 합의를 통해 조정하고 미뤄진 스케줄을 신속히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