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8월 20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정은이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 소식을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날 2016년 5월 열린 제7차 당대회에서 제시했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 수행 실적과 결함에 대해서 평가했다.
김정은은 “제7차 당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나타난 편향과 결함들을 전면적, 입체적,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고 당과 정부 앞에 나선 새로운 투쟁 단계의 전략적 과업을 토의·결정해야 한다”면서 내년 1월 제8차 당 대회 소집을 결정했다. 지난 5년간 북한 경제 정책 실패를 인정함과 동시에 새로운 경제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발언이었다.
이어 김정은은 “제8차 당대회에선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투쟁하는 대회, 일하는 대회, 당 사업을 전면적으로 총화하는 대회”가 김정은이 제시한 제8차 당대회 콘셉트다. 그리고 김정은은 제8차 당대회 소집 관련 전원회의 결정서를 낭독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8월 19일 조선노동당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 장면. 사진=연합뉴스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계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쳐드는 데 맞게 경제 사업을 개선하지 못해 계획됐던 국가 경제의 장성 목표들이 심히 미진되고 인민 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들이 빚어졌다. 본 전원회의는 사회주의 강국 건설에로 향한 지나온 5년간의 사업에서 이룩된 경험과 교훈들을 분석·총화하고 우리 혁명 발전과 조성된 정세의 새로운 요구에 기초해 올바른 투쟁 노선과 전략·전술적 방침들을 제시할 목적 아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를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
한 북한 소식통은 “김정은이 대내외 정세가 혹독하다는 점을 이번 전원회의에서 공식 언급했다”면서 “그간 북미 대화, 남북 대화 등 외교문제와 더불어 코로나19 확진, 홍수 피해 등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을 공식적으로 털어놓은 셈”이라고 분석했다. 소식통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소집이 결정된 제8차 당대회에선 지난 경제계획에 대한 피드백과 더불어 향후 북한이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아젠다와 관련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소식통은 내년 1월로 예정된 제8차 당대회에서 북한 지도부가 외교 노선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것이라고 점쳤다. 그는 “김정은 입장에선 지난 5년간 부진했던 경제 성과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이라면서 “그간 북한은 중국에 의존하는 형태로 경제발전을 추구해왔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지난 5년간 막상 중국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것이 있느냐면 또 그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 것”이라면서 “11월 미국 대선이 끝난 뒤 새로운 미국 행정부가 대북 외교 노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김정은 입장에서도 새로운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기 수월하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새로운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한다고 예정한 시점은 미 대선으로부터 두 달 뒤다. 북한 전문가들은 내년 1월이 ‘트럼프 2기’ 혹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외교 노선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시점이라는 데에 주목했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가 북한이 경제개발계획 수립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입장에선 내심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랄 수 있다”고 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 지도부는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과 적지 않은 교감을 해왔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좋은 친구’라고 표현해왔다. 김정은 역시 트럼프가 대북 제재의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제재 완화의 조건으로 비핵화보다 ‘디커플링 차이나’에 무게를 두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중국과 거리두기’에만 동의를 해도 대북제재를 일정부분 완화하는 ‘스몰딜’ 성사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이 전문가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적대적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은 뒤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면, 핵 보유 여부에 대해선 통 큰 합의를 할 여지가 있다는 기대심리가 피어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새로운 외교·경제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북한의 계산법은 상당히 복잡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 민주당은 공화당보다 중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한다”면서 “동시에 북핵문제에 있어서는 공화당보다 더욱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 제재가 가장 심화된 시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이라면서 “미국에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어떤 압박을 받는지 북한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또 “김정은은 내심 트럼프의 재선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면서 “미 대선까지 북한이 군사적인 도발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김정은의 마음이 트럼프로 쏠려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중국 거주 또 다른 북한 소식통도 “북한은 이번 미 대선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마음이 없을 것”이라면서 “상황을 관망하며 미 대선 결과에 따라 추후 경제 및 외교 정책을 새로 수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소식통은 “미국 대선이 끝나는 11월부터 1월까지 북한 지도부는 내부적으로 상당히 격렬한 ‘계획 수립’ 단계에 돌입한 뒤 제8차 당대회에서 북한 지도부의 새로운 목적지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이 스트레스를 이유로 잠시 위임통치에 들어갔다는 소식 역시 내년 선보일 새로운 국정 운영 계획에 힘을 모으기 위한 의도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북한 접경지대에서 근무했던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경제정책을 고민하는 시점에서 당분간 도발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이 관계자는 “미 대선이라는 중요한 국제정치 이벤트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북한이 도발을 한다면, 미 대선 표심에도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군사도발을 자제하는 양상을 띨 것”이라고 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8월 26일 미국 매체 ‘미국의 소리(VOA)’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김정은과 추가 정상회담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면서 ‘대북 관여정책’이 연장될 것으로 전망했다.
테리 선임연구원은 “바이든이 정권을 잡는다면, 비핵화 협상은 후퇴하거나 제자리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면서 “바이든은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려 동맹을 활용함은 물론 중국과의 공조까지 끌어내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이게 의외의 성과를 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지난 4년간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선보였던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바이든은 동맹국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 외교 방식의 대북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는 것이 테리 선임연구원의 분석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