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좌완 최대어로 꼽히는 강릉고 김진욱. 그는 전국대회 첫 우승을 뒤로 하고 프로 입단 준비에 돌입한다. 사진=연합뉴스
#3전 4기, 눈물겨운 우승기
드라마틱한 우승이었다. 김진욱과 강릉고는 지난해 청룡기와 봉황대기 결승에 올랐지만 거푸 준우승에 머물렀다. 2020년에도 불운은 반복되는 듯했다. 6월 황금사자기에서 결승에 올라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9회 아웃카운트 1개를 남겨두고 통한의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네 번째 결승전은 달랐다. 김진욱은 3회부터 구원 등판해 1실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그 사이 타선이 폭발하며 7-2 승리를 거뒀다. 첫 우승이었다. 에이스 김진욱은 최우수선수(MVP),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첫 우승 이후 시일이 흘렀지만 김진욱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지금도 우승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학교도, 나를 포함한 선수들이 모두 첫 우승이었다. 당연히 짜릿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회 결승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또 다시 미끄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객관적 전력에서 우위라는 평가를 받더라도 결승 무대, 단판 승부에는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앞서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는 점 또한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김진욱도 불안감은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결승 하루 전 ‘설마 또 준우승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면서도 “불안함이 크지는 않았다. 준우승조차 못하는 팀이 많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했다. 준우승도 충분히 좋은 성적이라고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경험을 해보니 우승이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이전 강릉고는 1승이 간절한 팀이었다. 전엔 동문 선배님들, 학교 선생님들도 1승만으로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셨다. 작년 준우승으로 우리 선수들 스스로도 그렇고 선배님들도 욕심이 조금씩 생겼던 것 같다. 황금사자기에서 3번째 준우승을 했을 때는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졌다고 나무라는 분은 절대 없었다. 부담 없이 대회에 나섰고 결국 좋은 결과를 얻었다. 우승 문턱에서 무너지며 선수들에게 생긴 오기가 좋게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대통령배 우승을 확정 짓고 선수들이 더그아웃을 뛰쳐나가는 순간. 김진욱은 “어려움 끝에 차지한 우승이라 더욱 짜릿했다”고 말했다. 사진=강릉고총동문회 제공
#전학으로 반전 맞은 성장
학생으로서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진욱은 2021 KBO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이 유력한 자원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특급 자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김진욱은 “처음에는 야구를 잘하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선수였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많은 선수들이 그렇듯, 초등학생 시절 김진욱은 ‘부자 야구팬’이었다. 매일 TV를 통해 아버지와 함께 KBO리그를 지켜보다 초등 3학년이 될 무렵 야구를 해보겠느냐는 아버지의 제안에 야구부 유니폼을 입었다.
야구 이외에는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집중해 왔다. 취미 생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게임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야구에 도움 되는 것만 하고 싶다”면서 “가끔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SF.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를 가장 재미있게 봤다며 웃었다. 그는 “2년 뒤 속편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가장 먼저 극장에 가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관람 외에는 유럽축구 무대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의 경기를 종종 본다고 했다.
그는 “강릉고 입단 이후 기량이 많이 늘었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경기도 지역에서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강원지역으로 전학 이후 강릉고 진학을 한 그의 성장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전학 전력 때문에 그는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의 전학은 ‘고교야구 명장’으로 불리는 최재호 감독의 스카우트 때문이었다. 김진욱은 “중학교 때 감독님 제안을 받고 전학을 결정했다”면서 “처음엔 감독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다.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우승 경험이 많은 감독님이신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전학을 두고 고민하던 김진욱의 마음을 흔든 것은 ‘출전 기회’였다. “감독님은 ‘강릉고에 진학하면 1학년 때부터 등판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다’고 설득하셨다. 입학 이후 감독님의 말씀이 현실로 이뤄졌다”면서 “1학년이 기회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가끔 그런 경우가 있지만 나는 그 정도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입학 이후 정말 25이닝 정도를 소화할 기회가 주어졌고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 운동 시설이 정말 좋다. 입학 이후 힘이나 구속을 점차 올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진욱은 키 184cm에 90kg으로 알려진 당당한 체구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그는 “몸집을 늘리려고 따로 노력은 하지 않았다. 사실 야구를 시작하던 어린 시절부터 살집이 있는 편이었다(웃음)”며 “키는 클수록 좋다고 생각해서 매일 빠지지 않고 줄넘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강릉고 투수 김진욱은 2021 KBO 신인드래프트 2차 1순위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사진=강릉고총동문회 제공
우승으로 마무리한 대통령배는 김진욱의 고교 시절 마지막 대회가 됐다. 최재호 감독이 프로 입단을 앞두고 몸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김진욱은 “나는 앞으로도 쭉 던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감독님께서 그런 뜻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게 맞는 것 같다. 2학년 후배들이 잘해주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김진욱은 고교 무대에서 최다 투구 이닝(91이닝), 최다 투구 수(1312개)를 기록한 투수였다. ‘혹사논란’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김진욱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작년에 많이 던졌는데 팔 상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다만 힘이 좀 부족하고 체력이 달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투구 내용이 좋았고 준우승 2회라는 결과도 얻었기에 기분은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2학년 때 많은 투구가 오히려 향후 선수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프로 선수가 되면 시즌을 치르면서 체력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그런 면에서 지난해 경험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올해 준비를 할 수 있게 감독님께서 배려해주시는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전했다.
김진욱은 오는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정규리그 최하위를 차지한 롯데에 2차 1순위 지명권이 있기 때문이다. 김진욱의 황금사자기 등판 경기에 성민규 롯데 단장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진욱은 “어느 팀이든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잘 준비해서 프로 무대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다. 보직 따지지 않고 주시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하겠다”는 각오를 남겼다.
롯데 입단이 실현된다면 같은 고교 출신 선배 박진형을 만난다. 그는 “박진형 선배를 만나본 적은 없다. 그래도 프로에 같은 학교 선배가 계시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마음의 위안이 많이 된다”며 “앞서 프로 무대를 밟은 선배들이 있다. 과거엔 강릉고 출신 선배들이 프로에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상황은 나에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로 무대에 있는 선배 중에서도 1년 전까지 함께 학교생활을 했던 홍종표(KIA 타이거즈)와는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는 “종표 형이 조언도 해준다. 가끔은 종표 형과 맞대결을 하는 상상을 하는데, 내가 이길 것 같다. 이전까지는 맞붙은 기억이 별로 없다. 청백전을 할 때도 상대로 만났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빨리 경기장에서 만나길 기대한다”며 웃었다.
꿈에도 그리던 우승을 하고 프로 상위 지명을 앞둔 김진욱.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한 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쉬움이 많다. 강릉고는 어느 학교보다 응원 열기가 뜨거운 팀이다. 지난 황금사자기나 우승을 차지한 이번 대통령배에 선수 가족들과 동문들이 오셨으면 더욱 재밌는 경기가 됐을 것이다. 올해 청소년야구대표팀 소집이나 신인드래프트 행사도 열리지 못할 것 같다. 특히 대표팀은 야구 잘하는 동기들과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기회인데 무산될 것 같아 안타깝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