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자만 있고 야수는 없다
올 시즌 롯데의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 말이 있다. “타자만 있고, 야수도 주자도 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롯데의 팀 타율(이하 5월 13일 기준)은 2할7푼5리로 2할9푼의 두산 다음으로 높다. 팀 홈런은 40개로 두산보다 1개가 많다. 홍성흔, 이대호, 카림 가르시아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을 다른 팀 투수들은 ‘미친 갈매기 타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수비로 고개를 돌리면 갈매기들은 미쳤다기보다 술에 취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책 33개로 이 부문 부동의 1위를 달리기 때문이다. 특히나 롯데의 실책은 팀 패배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경우가 많아 더 큰 문제로 꼽힌다.
박빙의 승부에서 주루사는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 올 시즌 롯데는 16번이나 찬물을 끼얹었다. 주루사 9개의 삼성에 비하면 거의 2배나 많다. 일부에선 “공격적인 주루를 펼치다 보니 주루사가 많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올 시즌 롯데는 공격적인 주루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올 시즌 롯데는 557번의 도루 기회에서 43번 도루를 시도해 34번을 성공했다. 도루성공률은 79.1%로 LG에 이어 2위지만, 도루 시도율 7.7%는 6위에 해당한다. 단타일 때 2루 주자가 홈까지 들어올 확률도 63.2%로 5위에 불과하다.
# 야구 잘 모르는 감독?
야구계 격언 가운데 “타격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지만 수비는 훈련으로 보강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런 관점이라면 로이스터 감독은 무능한 감독일지 모른다.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2008년 롯데는 팀 실책 92개로 이 부문 3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96개로 단독 1위를 차지했다. 올 시즌도 이 부문 1위다. 그렇다면 로이스터 감독은 실책을 줄이려고 어떤 노력을 했을까.
롯데를 잘 아는 한 야구해설가는 “자신이 아는 한”이란 단서를 달고는 강한 어조로 “노력한 게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다른 팀에 비해 뛰어난 야수가 없는데도 수비 훈련 시간이 너무 적다”고 비판했다.
수도권 팀의 어느 수비 코치도 “수비는 반복 훈련밖에 답이 없다”며 그 이유를 “타구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판단해 자동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코치는 “롯데 야수들의 실책 대부분이 훈련 부족에서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비 문제는 내·외야수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포수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롯데 포수 강민호의 별명은 ‘강몸쪽’이다. 철저히 타자 몸쪽 위주로 공 배합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민호의 몸쪽 사인이 로이스터 감독의 요구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로이스터 감독은 1970년 LA 다저스에 입단하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양키스를 거쳐 1989년 은퇴한 16년 프로경력의 메이저리거이자 2002년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을 포함해 마이너리그 코치, 감독까지 10년 가까이 지도자로 생활했다. 야구해설가들과 다른 팀 코치, 선수들이 뻔히 아는 내용을 그가 모를 리 있을까.
한 야구해설가는 로이스터 감독의 메이저리그 사령탑 경력이 1년에 지나지 않는 대신 마이너리그 감독 경험이 풍부한 점에 주목했다. 미국 마이너리그 연수 경험이 있는 이 해설가는 “마이너리그는 승패와 상관없이 선수 육성에 주력하기 때문에 마이너리그 감독의 역할은 ‘선수 관리’ 정도”라며 “그 때문에 로이스터 감독이 선수들의 기분은 잘 맞춰주지만 실전에서 제대로 된 용병술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선수들의 절대적 신임
시즌 전 사이판 롯데 스프링캠프를 방문한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골프장에서 롯데 선수들의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다. 홍성흔이 후배 이인구에게 “골프할 때처럼 실전에서도 똑같이 스윙하라”고 조언하자 이인구가 진지한 눈빛으로 야구와 골프의 메커니즘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캠프에서 코치도 아니고 선수들이 훈련이 끝나고 개인훈련 대신 골프를 치는 것도 생경했지만, 골프를 통해 선·후배가 진지하게 야구 관련 대화를 나누는 게 이 위원은 여간 신선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다수 야구전문가가 롯데의 훈련량이 적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위원은 스프링캠프에 다녀오고서 생각을 고쳤다. “롯데가 눈에 보이는 훈련량은 적어도, 시간 대비 효율성과 선수들 스스로 고민하는 야구는 8개 구단 중 최고”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로이스터 감독이 수비 펑고를 금지하고, 강민호에게 몸쪽 공만을 던지길 요구했다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롯데의 수비가 한창 불안할 때 선수들이 펑고 훈련을 자청했다. 이때 로이스터 감독은 특별 펑고 훈련을 눈감았다. 최근 강민호가 몸쪽 승부 일변도에서 바깥쪽 공을 적절히 섞는 새로운 공 배합을 시도했을 때도 로이스터 감독은 별말 하지 않았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그것이 로이스터 야구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선수들에게 길만 제시하고, 막상 길은 선수들 스스로 찾도록 한다는 것이다.
2008년 1월 8일 로이스터 감독은 감독취임 기자회견장에서 두 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선수 육성(Make Players Better)과 선수들의 편이 되는 감독(Players’ Manager)이 되겠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렇다면 로이스터 감독은 비전에 충실한 감독이다.
그가 팀을 맡은 이후 손아섭, 박종윤, 김주찬, 박기혁은 실력이 일취월장했고 조정훈, 장원준은 진정한 투수가 됐다. 여기다 롯데 선수들은 “로이스터 감독과 계속 야구를 함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승리가 필요하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로이스터 감독은 말한다. “베이브 루스가 아무리 위대해도 베이스볼보다 위대하진 않다”고. “감독이 신(神)이 될 때 야구는 게임이 아니라 종교가 된다”고. 로이스터 감독은 ‘틀린’ 감독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야구에서 보지 못한 ‘다른’ 감독이 아닐까.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