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리그에서 충격적 대패 이후 리오넬 메시는 바르셀로나 구단에 이적 의사를 밝혔다. 메시의 이적은 구단에 큰 위기로 다가올 전망이다. 사진=연합뉴스
#메시도 나간다, 흔들리는 바르셀로나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던 메시와 바르셀로나. 성장 호르몬 결핍으로 축구선수로 자라나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던 메시를 알아보고 바르셀로나가 성장을 도운 스토리는 익히 알려져 있다. 이에 메시는 “바르셀로나를 떠난다면 행선지는 오직 뉴웰스 올드 보이스(바르셀로나 이전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소속팀)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하지만 이처럼 굳건한 사이에 금이 갔다. 성적 하락세가 이어지는 와중에 구단 수뇌부와도 이적으로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중이다. 20년 가까이 구단에 충성해오던 메시는 냉랭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메시와 친분이 있는 선수들을 매정하게 내친 것이 결정적’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지난 8월 막을 내린 2019-2020시즌 바르셀로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실패를 겪었다. 지난 2년간 내리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을 놓쳤다. 시즌 초반 선두를 달렸지만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는 8강에서 아틀레틱 빌바오에 덜미를 잡혔다. 4강 체제로 치러진 수페르코파(슈퍼컵)조차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가장 충격적 결과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나왔다. 영원한 우승 후보 바르셀로나의 행진은 8강에서 멈췄다. 게다가 경기 내용면에서 처참했다.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2-8 대패를 당한 것. 바르셀로나는 전반에만 4골을 허용하며 완전히 무너졌다. 결국 바르셀로나는 단 하나의 우승 트로피도 들지 못한 ‘무관’으로 시즌을 끝냈다. 이미 시즌 도중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감독이 경질됐고 후임 키케 세티엔 감독 역시 시즌이 끝난 후 잘려나갔다.
메시의 이적이 실현된다면 이는 바르셀로나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이 될 전망이다. 바르셀로나는 과거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인 루이스 피구를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에 빼앗긴 바 있다. 메시의 이적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피구는 동시대 최강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선수지만 메시는 펠레, 마라도나 등과 함께 역대 최고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13세에 입단해 33세까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은 메시는 30개가 넘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득점왕 수상만 15회가 넘는다. 메시의 이탈은 곧 바르셀로나의 위기가 된다.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수아레즈-네이마르-메시(왼쪽부터) 조합은 트레블 달성으로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사진=연합뉴스
#‘클럽 그 이상의 클럽’
바르셀로나는 지난 10년 이상 유럽 축구 정상을 다투는 구단으로 군림해왔다. 2008-2009시즌 펩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이후 유럽 역사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12년간 리그 우승만 8번을 차지하며 ‘왕조’를 구축했다. 리그 우승 공백은 1년을 넘기지 않았다. 코파 델 레이에선 6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기간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3회를 달성했다. 이전까지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은 단 2회로 유럽 경쟁자들에 비해 부족한 수준이었다. 또 2009년과 2015년에는 챔피언스리그와 함께 리그, 코파 델 레이를 동시에 석권하며 ‘트레블’을 이뤘다. 유럽 내 트레블을 경험한 구단은 7곳뿐이며 이 중 2회 트레블은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바르셀로나가 유이하다.
바르셀로나는 단순히 트로피만 들어 올렸던 구단이 아니다.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이후 ‘티키타카’로 불리는 점유율 축구를 내세워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스페인 국가대표팀도 메이저대회 3연패(유로 2008, 2010 남아공월드컵, 유로 2012)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점유율 축구는 곧 세계 축구에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다수의 클럽이 이 같은 축구를 모방하려 애썼고 국가대표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기간 바르셀로나는 끊임없이 세계적 선수들을 배출했다. 바르셀로나의 우승 행진에 큰 기여를 했던 카를레스 푸욜,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모두 구단 유스 출신 선수다. 이들에게 팀의 유니폼을 입히는 데 이적료 지출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르히오 부스케츠, 리오넬 메시 역시 구단에서 어린 시절부터 성장해온 선수다. ‘최고의 시스템에서 선수들을 길러내 기용한다’는 극찬이 이어졌다.
이는 바르셀로나가 전 세계 축구선수들에게 꿈의 클럽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네이마르, 루이스 수아레즈와 같은 특급 스타들은 물론 해외 유망주들도 메시와 같은 성장을 꿈꾸며 입단했다. 이승우, 백승호 등 대한민국 선수들도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2019-2020시즌 바르셀로나는 ‘무관’에 그치며 2명의 감독에게 작별을 고했다. 새 감독은 선수시절 팀의 챔피언스리그 첫 우승을 안겼던 로날드 쿠만(사진)이다. 사진=바르셀로나 페이스북
#서서히 무너져 내린 왕조
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한 2014-2015시즌, 바르셀로나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었다. 메시(M), 수아레즈(S), 네이마르(N)로 이어지는 일명 ‘MSN’ 라인은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무장해 나서는 대회마다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이었다. 공격력에 가려져 팀 내 사소한 문제들을 지나치게 됐다. 수비진은 자원이 충분치 못했고 미드필더는 점점 나이를 먹어갔다. 2017년 갑작스런 네이마르의 이적 이후 전력 약화는 가속화돼 갔다. 푸욜, 사비, 이니에스타, 메시가 성장한 유스 시스템 ‘라 마시아’에서 선수를 키워 쓰던 바르셀로나는 전력 보강을 위해 선수 영입에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다. 마치 세계 최고 선수들을 거금으로 끌어 모으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를 연상케 했다.
2017년 펠리페 쿠티뉴와 우스망 뎀벨레, 2019년 앙투안 그리즈만을 영입하는 데 들인 금액은 4억 300만 유로(약 5653억 원)다. 이들 공격자원 3명에 투입된 금액은 네이마르를 판매해 받은 금액(2억 2000만 유로)의 2배에 달한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소속으로 186경기에서 105골을 기록하며 메시와 함께 팀을 이끌었던 네이마르와 달리 이들 셋의 기록을 합쳐도 198경기 55골에 불과하다. 부상으로 팀을 이탈했던 기간도 적지 않다.
거액의 선수들을 잇달아 영입해 활용한 탓에 유스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적생들은 몸값을 해주지 못했고 구단은 기존 자원을 지속적으로 활용했다. 자연스레 주축 선수들은 노쇠화됐다. 2-8 참패 당시 바르셀로나 선발의 평균 연령(만 29.7세)은 상대 뮌헨(만 27.6세)보다 두 살 이상 많았다.
결국 2017년 네이마르가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한 이후 구단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연이어 충격적인 탈락을 반복했다. 2018년 8강에서 AS 로마를 만나 1차전 4-1 승리를 거뒀음에도 2차전 0-3 패배를 당하며 탈락했다. 이듬해 4강 리버풀과 1차전에서도 3-0 승리했지만 2차전 0-4 패배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더 이상 과거의 최강팀 바르셀로나가 아니었다.
바르셀로나는 루이스 피구와 히바우두가 떠난 2000년대 초반 위기를 맞은 바 있다. 2002-2003시즌에는 리그 6위로 밀리며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조차 놓쳤다. 이후 호나우지뉴, 메시의 시대를 거치며 반전을 이뤄냈지만 이들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구단의 문제점이 누적돼 바르셀로나는 험난한 리빌딩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아르투르, 이반 라키티치가 팀을 떠나는 것으로 확정됐다. 수아레즈, 아르투로 비달 등도 이적을 예고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메시와 이별은 결정타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전성기를 구가했던 바르셀로나가 위기를 맞은 현재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