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2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을 방문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인들과 애로사항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결론부터 말하면, 이낙연 대세론 입지는 탄탄하지 않다. 최근엔 ‘이재명 대망론’이 이낙연 대세론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8월 24∼28일까지 조사해 9월 1일 공개한 ‘8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결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이 대표는 한 달 전보다 1.0%포인트(p) 하락한 24.6%를 기록했다.
이 대표의 선호도는 4개월 연속 하락했다.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던 지난 4월 조사(40.2%)와 비교하면, 15.6%p나 빠졌다. 그사이 14.4%에 그쳤던 이 지사의 선호도는 3개월 연속 오르면서 23.3%까지 튀어 올랐다. 이 대표와 이 지사의 격차는 1.3%p로, 초박빙 구도로 좁혀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누가 대세론이고, 누가 대안론이냐”라는 말이 나온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낙연 대세론을 뒷받침한 ‘호남’과 약한 고리인 ‘영남’ 선호도의 추세다. 이번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 대표는 호남에서 5.8%p(47.7%→41.7%) 하락했다. 호남 유권자 10명 중 6명가량이 이낙연 대세론에 의문부호를 표시한 셈이다. 부산·울산·경남(PK)과 대구·경북(TK)에서도 각각 2.1%p(23.6%→21.5%)와 3.0%p(18.8%→15.8%) 떨어졌다.
이번 조사는 8·29 전당대회 이전 실시됐다. 이 대표 측에선 “컨벤션효과(정치적 이벤트 이후 지지도가 상승하는 현상)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지만, 전당대회 초반부터 ‘어대낙’이 불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컨벤션효과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당 대표 후 대선 도전’이라는 이른바 문재인 모델을 따른 이 대표의 앞날에 험난한 가시밭길이 깔릴 가능성이 큰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대표 지지도가 흔들릴 경우 ‘당내 그립(장악력) 약화→친문계 득세→청와대 하청업체 탈피 실패→여당 혁신 요지부동’ 등 악순환만 반복된다. 이낙연호 출범 이후에도 여권 안팎에선 그립이 센 이해찬 전 대표의 ‘막후 정치설’의 불씨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낙연호의 약한 구심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대표의 좁은 ‘운신의 폭’은 국회 상임위원회 재분배 과정에서 일부 드러났다. 이 대표는 당선 직후 수락연설에서 ‘대야 협치’를 강조했다. 이 대표 측 내부에서도 ‘야당 몫 7개 상임위를 돌려줄 수 있다’는 시그널이 흘러나왔다. 이 대표 측 한 의원은 “정치는 명분”이라며 “상임위원장 재배분은 협치 카드”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는 취임 후 인사차 방문한 이 대표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상임위 재배분’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를 물밑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당권파 친문계인 김태년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이 법제사법위원장을 고리로 대여 압박을 하자,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친문계 핵심 전재수 의원도 “이미 버스가 떠났다”고 일축했다. 김 위원장은 9월 1일 국회에서 취임차 방문한 이 대표에게 거여의 독주를 언급,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 것 같다”라는 취지로 비판했지만, 이 대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상임위원장 재배분 여부는 이 대표의 당내 위상이 낮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친문계 당 지도부인 김종민 최고위원은 9월 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법사위원장을 전·후반기 나눠서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플랜 B’를 제시했지만, 당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와 논의된 사안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 때 야당이 반발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발의키로 하면서 여야 협치는 사실상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그간 국민의힘에선 공수처를 놓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검찰을 만들자는 것이냐”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보수진영 일각에선 “이낙연표 협치마저 공수표냐”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관전 포인트는 이 대표가 택할 카드다. 정치권 한 분석가는 “여당 대표의 좁은 운신의 폭을 눈여겨보라”고 전했다. 이 대표의 그립이 약한 상황에선 당 내부적으로는 친문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 경우 ‘친문·친조국’인 열린민주당과의 합당 논의는 한층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 7월 초 당권 출마 후 “(열린민주당과) 빨리 통합을 이루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 측근들은 열린민주당과 사전 접촉을 통해 통합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친문계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이낙연 대세론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보고 ‘친문 통합’을 꾀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정기국회 개원 날 국회에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만나 “열린민주당 동지들이 변함없이 힘을 주고 아이디어도 많이 내달라”고 말했다. 이에 최 대표는 “(오늘 만남이) 더 큰 바다에서 만날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부산 친노·친문 등에 대한 의존도 역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8월 31일 배재정 전 민주당 의원을 정무비서관으로 발탁했다. 배 전 의원은 이 대표가 국무총리로 재직할 당시 17개월간 비서실장으로 보좌했다. 여권 안팎에선 청와대가 ‘배재정 카드’를 택하자, 당·청 소통 플랜을 명분으로 내세워 대선 상황 관리에 나섰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배 전 의원은 6월 11일 이 대표와 부산 친노·친문계 낙선자들 간 만남을 주선했다. 직후 이 대표가 차기 대선 포석으로 부산 친노·친문계 포섭에 나섰다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문제는 ‘매파(강경파) 행보’의 딜레마다. 초유의 부동산 대란 때 당·청 지지율을 끌어내린 것은 중도층과 30대의 이탈이었다. 앞서 이른바 ‘조국 정국’ 당시 땐 20대 학생층이 반문(반문재인)을 외쳤다. 젠더 갈등 국면에선 여성층이 떨어져 나갔다. 이념적으로는 ‘중도·무당’층, 세대로는 ‘2030’, 성별로는 ‘여성’ 등이 문재인 정부의 약한 고리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친문 통합 내지 집토끼(지지층) 잡기에 매몰될 경우 친문계의 데릴사위는 될 수 있을지언정, 국민 다수의 선택은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대표가 선을 긋고 각을 세우면 그나마 데릴사위 역할이라도 부여한 친문계에 버림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기승전·원팀’만 외친다면, 국민적 지지를 잃는다. 비주류 한계를 가진 이 대표는 9월 2일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당·정·청은 운명 공동체”라고 원팀을 강조했다. 이 대표가 달콤한 독배인 친문계를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 지점이 그립 약한 여당 대표의 딜레마라는 얘기다.
친문 굴레에 둘러싸인 이 대표 측은 ‘대선캠프급’ 비서실을 꾸리면서 내부 결속을 강화했다. 이 대표는 탕평 인사 기조 속에서도 친문계 핵심인 박광온 의원과 부산 친문계인 최인호 의원을 당 사무총장과 수석대변인으로 각각 임명했다. 정무실장에는 이례적으로 현역인 오영훈 의원을 인선했다. 메시지실장은 두 달 전까지 현역에서 뛰던 박래용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발탁, 체급을 높였다. 여당 한 전략가는 “이 대표는 ‘당권→4월 재보궐 선거→대선 승리’ 중 1차 관문을 통과했다”며 “다음 시험대는 2차 관문인 4월 재보선이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윤지상 언론인